[기자수첩]대마불옥(大馬不獄)

머니투데이 안정준 기자 | 2010.04.20 07:07
월가에 대한 미 국민의 반감이 결국 '월가'를 법정에 세운다.

'대마불사' 논리에 이어 임원진에 대한 거액의 보너스, 그리고 골드만삭스의 사기 혐의를 거치면서 응축된 국민 반감은 이미 임계점에 이른 상태다.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골드만삭스 제소와 정치권의 은행 규제 강화 드라이브가 동시에 추진되는 것도 월가에 대한 국민 정서가 바탕이 됐기에 가능하다는 평가다. 이번 사태로 골드만삭스뿐만 아니라 월가 전체가 법의 심판을 받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실제로 월가가 법정에 서는 광경이 연출될 경우, 이를 '국민 여론의 승리'로 규정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극적 효과는 있을지언정 그렇지는 못할 듯 보인다. 여론 반감은 나날이 커지고 있지만 국민은 여전히 무지하기 때문이다.

월가가 운용하는 금융상품은 지나치게 복잡하고 어렵다. 심지어 SEC도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SEC는 이번 골드만삭스 사태의 핵심 금융상품인 '합성 부채담보부증권(synthetic CDO)'을 CDO로 규정했다. 합성 CDO는 금융사가 실제로 보유하지 않은 모기지 증권의 향후 가치에 투자하는 상품인 반면 일반 CDO는 실제 모기지 증권을 기반으로 운용된다. SEC조차 혼동하는 '월가의 언어'를 국민도 모른다는 사실을 월가, 금융당국, 정치권이 모를 리 없다.


상대방이 도대체 어떤 사기를 당했는지 조차 모를 때 가장 쉬운 방법은 책임전가다. 골드만삭스가 기존의 행동 매뉴얼대로 움직이고 있는 이유다. 이번 사태에 대한 성명 첫 부분에서 골드만삭스는 "모든 투자 책임은 투자자에게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금융위기 당시 월가가 파생상품 거래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주장한 논리와 같다.

미 정치권과 금융당국, 언론도 '해 오던대로' 움직인다. 금융당국은 월가를 법정에 세우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으며 정치권은 향후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법안을 강화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미 언론은 월가의 탐욕을 준엄하게 꾸짖는다. 모두 제 역할에 충실히 움직이고 있어 어느 누구도 이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되풀이되는 '데쟈뷰'이다.

응축된 국민 반감을 바탕으로 월가는 결국 법정에 설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실제 법의 심판을 받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복잡한 월가의 언어로 법망을 빠져나갈 기회를 노릴 것이며 미 경제의 심장부인 월가가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사법기관은 적당한 수준의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모두가 해 오던대로 할 때 다치는 건 결국 무지한 국민뿐이다.

베스트 클릭

  1. 1 "몸값 124조? 우리가 사줄게"…'반도체 제왕', 어쩌다 인수 매물이 됐나
  2. 2 "연예인 아니세요?" 묻더니…노홍철이 장거리 비행서 겪은 황당한 일
  3. 3 [단독]울산 연금 92만원 받는데 진도는 43만원…지역별 불균형 심해
  4. 4 점점 사라지는 가을?…"동남아 온 듯" 더운 9월, 내년에도 푹푹 찐다
  5. 5 "주가 미지근? 지금 사두면 올라요"…증권가 '콕' 집은 종목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