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틴전시 플랜으로 채권단 압박한 삼성생명

더벨 김용관 기자, 이재영 기자 | 2010.04.19 10:48

②주관사 선정부터 증권신고서 제출까지...숨가빴던 5개월

더벨|이 기사는 04월16일(10:45)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차근차근 상장 준비를 하던 삼성생명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지난해 12월17일. 대한생명이 시장 예상을 한 달 이상 앞당겨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하면서다. 삼성생명은 이전까지 대한생명이 오는 5월께 상장할 것이라는 자문사 의견을 토대로 그에 뒤지지 않는 공모 일정을 준비해 왔다.

삼성생명은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정보 수준을 통제 가능한 최대치로 올리고 상장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설립 이후 내재가치에 대한 평가가 공식적으로는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아 대한생명만큼 극적으로 준비 기간을 단축시킬 순 없었다.

업계 관계자는 "약 40여명으로 구성된 삼성생명 상장 TF에 대한 엄격한 관리를 통해 최대한 준비 기간을 단축시켰지만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다"며 "삼성생명은 상장 관련 정보가 누출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예상을 뛰어넘는 보안 체제를 가동했다"고 지적했다.

결국 삼성생명은 특별 주주총회로 액면분할이 확정된 직후인 지난 1월22일에야 한국거래소에 예비심사를 청구했다. 심사에는 7주 정도가 걸렸다.

지난 3월11일 예비심사를 통과한 삼성생명은 곧바로 증권신고서 준비에 들어갔다. 공모희망가 밴드 등 가치산정(밸류에이션) 과정에서 조율할 점들이 남아 내부적으로 3월25일을 증권신고서 제출의 디데이(D-day)로 삼았다.

삼성생명은 증권신고서 제출 디데이를 앞두고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구주 매출 대상인 삼성차 채권단이 당초 예상과 달리 완강한 입장을 고집한 것이다.

삼성차 채권단은 구주 매출 시 제출하는 위임장에 들어가는 문구를 두고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이를 재판에 인용할 수 없도록 비밀유지조항도 요구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진행 중인 재판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2심이 진행 중인 삼성차 소송의 핵심 쟁점은 지연이자다. 1심에선 이를 6%로 판단해 원금 1조6338억원에 연체이자 686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지만 삼성생명과 채권단 모두 이에 불복한 상태다. 채권단은 이번 상장에서 공모가에 대해 협의한 부분이 소송에 반영되면 공모가에 따라 지연이자가 크게 줄어들 소지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3월 결산법인인 삼성생명은 3월31일까지 증권신고서를 제출하지 못하면 상장 일정을 두 달 이상 미뤄야 한다. 3월 결산 내용을 반영해 연간실적보고서로 상장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2주간의 해외 기업설명회(IR) 일정 등 상장 계획이 모두 틀어져 삼성생명으로선 골치 아픈 상황에 빠지게 된다.

삼성생명은 협상을 지속하는 한편 조용히 '컨틴전시 플랜'을 마련했다. 채권단의 구주 매출 없이도 상장이 가능하게끔 신주 발행을 포함하는 또 다른 상장 계획을 준비한 것이다.

삼성생명은 협상 과정에서 이 같은 사실을 은근히 흘리며 채권단을 압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세계의 500만주 구주 매출 참여도 이 플랜의 일환인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해석하고 있다.

특히 CJ제일제당의 구주 매출 참여에 대해서는 진위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3월11일까지만 해도 "지금으로서는 삼성생명 지분을 처분할 생각이 없다"던 CJ제일제당이 삼성생명과 채권단의 협상이 고착 상태에 빠진 3월25일 돌연 500만주 구주 매출 공시를 낸 것이다. 2주 만에 손바닥 뒤집듯 말 바꾸기를 한 것.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삼성그룹 고위층이 나서 CJ제일제당의 그룹 수뇌부를 설득, 구주 매출 참여 약속을 받아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당초 CJ그룹은 과거 그룹 분리 과정에서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를 매각했을 때 너무 싼 가격에 팔았다고 해서 실무자가 문책을 받는 등 지분 매각에 난색을 표해왔다.

삼성생명은 오는 22~23일 수요 예측을 거쳐 내달 3~4일 일반 공모 청약을 받는다. 상장 예정일은 내달 12일이다. 9만~11만5000원(공모 희망가밴드)에 4443만여주를 모집해 총 4조~5조1103억원을 조달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주관사단의 미숙한 일처리로 인해 중간중간 문제가 있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딜을 마무리 단계까지 끌고 왔다"며 "마지막 단계인 목표 공모가를 얻기 위해 최대 변수로 꼽히는 외국인 투자자 모집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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