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은행 규제만 하면 걸음마 못뗄것"

머니투데이 김만배 기자, 배혜림 기자 | 2010.04.20 08:12

[법조계 고수를 찾아서]김앤장 법률사무소 임진석 변호사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전 세계 경제를 강타하면서 투자은행 규제를 두고 논란이 뜨겁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 대출 파생상품의 부실로 158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투자은행인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하고, 메릴린치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에 500억 달러에 팔렸다. 세계최대 보험회사 에이아이지(AIG)도 굴욕적인 정부지원을 받았다.

대형 투자회사들이 유동성 부족으로 줄줄이 파산하자 G20은 단기성과에 집착한 투자에 제동을 걸고 있다. 우리나라 금융감독기관 역시 금융위기를 반면교사 삼아 투자은행에 대한 보수적인 기조를 유지해왔다.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임진석(46·사진) 금융 전문 변호사는 우리 금융감독기관이 투자은행을 강도 높게 규제해 온 덕분에 미국 발 금융위기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인 우리 투자은행의 운영을 국제적 흐름에 맞춰 규제 일변도로 몰고 간다면 성장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는 파생상품 운영이 너무 움츠러들어 있습니다. 과거 외국이 투자은행에 지나치게 관대했다면 우리나라는 지나치게 규제가 많았던 것이죠. 금융위기 이후 외국에서는 규제를 강화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변호사, 거래소에 가다임 변호사는 사법고시에 3등으로 합격한 수재다. 세계화가 공통의 화두였던 당시 그는 국제금융에 남다른 흥미를 느꼈다. 법원과 검찰 대신 로펌행을 택한 이유다. 임 변호사는 김앤장 변호사로 법조계에 입문, 현재 파이낸스팀에서 금융규제 파트를 이끌고 있다.

그는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에 선 국내 최초의 변호사라는 비공인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외국증권회사인 L사의 허수주문에 징계처분이 내려지자 거래소를 직접 찾았고 법정변론을 방불케 하는 반박으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당시는 피감독 금융회사가 부당한 징계처분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쉽지 않은 때였다. 그는 해외 사례까지 연구해 '허수주문이 L사 계열사들의 고유한 자산운용 방식'이라는 논리를 폈고, 결국 징계가 철회되는 성과를 거뒀다.

임 변호사는 금융규제를 둘러싸고 감독기관과 금융회사들이 발전적 논쟁을 벌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임 변호사에 따르면 미국의 금융회사는 감독기관을 상대로 소송을 내는 사례가 많지만 우리는 감히 감독기관을 상대로 소송을 낼 생각을 하지 못한다.

미국에는 감독기관이 피감독 회사와의 송사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법원의 판단을 받아 판례로 축적해주는 분위기가 정착돼 있다. 이에 비해 우리 금융회사들은 감독기관의 과거 선례에 갇혀 새로운 케이스를 만들어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는 "금융회사의 문제제기가 감독기관에 대드는 모습으로 비춰져서는 안 된다"며 "양측의 이견이 법원의 판단을 받아 정리되는 관행을 만들어한다"고 말했다.

◇'사모펀드의 공모·상장' 최초 사례 만들어임 변호사는 맥쿼리코리아 인프라스트럭처 펀드(MKIF)의 한국과 영국 동시상장을 성공시켜 '사모펀드의 공모·상장'이라는 최초의 사례를 만들었다. 과거 인프라펀드는 사모펀드로만 운용돼 기관 또는 거액투자자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하지만 MKIF의 상장으로 개인 또는 소액투자자에게도 인프라펀드 투자의 길이 열리게 됐다.


당시 금융감독기관은 기관과 개인 간 마찰이 생길 가능성을 두려워했는데, 이 두려움을 깰 수 있도록 감독기관을 설득시킨 주인공이 바로 임 변호사였다.

"어느 법에도 사모펀드의 공모·상장을 금지하는 조항은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안 해봤기 때문에 생긴 우려였죠." 임 변호사는 "개인투자자를 보호하고 운용사의 권익을 보다 제한하는 방향으로 정관 및 계약서를 변경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고 설명했다.

국제금융기관이 국내 금융시장에서 최초로 발행한 원화채권인 '아리랑본드'도 그의 작품이다. 우리 기업들이 미국 뉴욕이나 일본 도쿄에서 현지 통화로 '양키본드' 혹은 '사무라이본드'를 발행할 때 임 변호사는 해외 기관이 국내에 들어와 원화본드를 만들어 나가는 첫 사례를 만들었다. 그는 "아리랑본드 발행은 기존의 유로본드 발행 계약서의 모든 조항을 한국 상법이나 증권거래법에 따라 따져본 의미 있는 작업 이었다"고 기억했다.

◇"후배에게 사랑받는 '형' 되고 싶어"김앤장 파이낸스팀은 75명의 전문 변호사로 구성된 국내 최대 규모, 최강 군단이다. 김앤장은 1등 로펌으로서 새로운 업무영역을 개척하고 업계의 표준을 세워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는 "국내 로펌이 처리한 적 없는 새로운 사건, 또는 해외에 선례가 있다 해도 우리 법제도에 맞춰 수용해야 하는 사건을 주로 담당해왔다"며 "고도의 전문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갖춘 인재들의 팀플레이는 김앤장 만의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소속 변호사들이 상사와 부하의 관계가 아닌 형과 동생 같은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도 김앤장이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는 비결이다. 임 변호사는 "서로 아끼고 생각해주지 않으면 일이 고되게 느껴진다. 후배 변호사들로부터 사랑받는 형이 되고 싶다"고 말하며 웃었다.

임 변호사는 격무 속에서도 불우 청소년 2명을 후원하고 있다. 한 명은 언론을 통해, 나머지 한 명은 교사의 후원 요청으로 결연을 맺고 봉사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특히 딸과 나이가 같다는 후견 청소년에게는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비지니스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다 보니 몸으로 봉사활동을 실천하지 못해 아쉽다"며 "은퇴하면 그동안 받은 은혜를 가난한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한 봉사로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감독기관 권위 높여야임 변호사는 동북아 금융허브를 지향하는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이를 위해 금융감독기관의 권위가 보다 더 인정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감독기관의 권위는 어디서 나올까요. 권위는 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시장 참여자에게 믿음을 주는 일관된 정책에서 나옵니다. 시장 참여자가 감독기관의 메시지를 따르지 않을 때는 법령에 따른 일관된 처분이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감독기관이 예측 가능한 정책을 내놓아야 금융의 안정성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임 변호사는 또 감독기관이 서비스에 집중하다보면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소비자 전화상담은 소비자보호원에서 해야지 금융감독기관이 주된 업무로서 할 일이 아니다"라며 "감독기관은 존경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한 마디를 잊지 않았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베스트 클릭

  1. 1 김호중 콘서트 취소하려니 수수료 10만원…"양심있냐" 팬들 분노
  2. 2 이 순대 한접시에 1만원?…두번은 찾지 않을 여행지 '한국' [남기자의 체헐리즘]
  3. 3 11만1600원→44만6500원…미국 소녀도 개미도 '감동의 눈물'
  4. 4 [영상] 가슴에 손 '확' 성추행당하는 엄마…지켜본 딸은 울었다
  5. 5 '100억 자산가' 부모 죽이고 거짓 눈물…영화 공공의적 '그놈'[뉴스속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