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대학의 21세기 문제와 20세기 해법

최희갑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 | 2010.04.15 10:40
변화와 개혁이 시대의 아이콘이 된 우리나라에서 대학도 예외는 아니다. 대학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이사장과 총장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변화와 개혁을 내세운다. 언론들 역시 대학마다 내세우는 변화와 개혁의 사소한 모습도 놓치지 않는다. 변화의 경쟁인지, 홍보의 경쟁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개혁의 최대 수혜자여야 할 대학생들의 고민은 더욱 더 깊어가고, 대학이 내놓아야 할 연구성과의 내용에 있어서 큰 변화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전에 없던 대학생들의 거부의 몸짓이나 연구를 할 수 없는 자신의 삶을 개탄하며 안타까운 길을 걸어간 교수의 비극만이 메아리를 울리고 있다. 교육과 연구는 어디로 실종되었을까.

대학에서 발생한 최근의 불행한 사태를 야기한 원인은 다양하지만 공통점 중의 하나는 대학의 1970~80년대식 '기업 베끼기'에 있다는 것이다. 철강, 자동차, 반도체, 그리고 휴대폰을 일구어낸 우리 기업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대학의 조직이나 대학이 제공하는 제품(?)이 2000년대 한국이 안고 있는 고질적 문제점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는 데 있다. 더 나아가 21세기 문제를 20세기 해법으로 접근하는 것이 더 큰 문제를 낳고 있다.

얼마전부터 우리나라 휴대폰시장에서 애플의 '아이폰'이 판매되면서 휴대폰시장의 강자들이 적지 않은 곤욕을 치르고 있다. 국내업체들이 전열을 재정비하고 반격에 나서고 있지만 미래를 낙관할 수 없음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 휴대폰시장의 문제가 기술수준에 있다면 기술개발에 맹진하면 되겠으나 그렇지 못함이 작금의 현실이다. '아이패드'의 많은 고부가 부품이 한국산 부품으로 채워져 있다. 많은 사람이 잡스의 창의성을 칭송하나 그것 역시 설명이 미흡하다. 애플은 잡스가 모든 일을 다하는 1인 기업이 아니라 무수한 사람이 모여있는 조직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기업이 파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조직이라고 설파한다. 한마디로 잡스는 창의성 넘치는 조직을 팔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한국 기업의 21세기 문제가 놓여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휴대폰시장의 격변은 한국 기업들이 21세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조직체임을 부분적으로 보여준다. 생존을 위협하는 제품전쟁에서조차 밀리는 한국 기업들의 20세기 해법이 대학과 한국 사회가 고민하는 21세기 문제에 부적합함은 바로 이 때문이다. 단적으로 양적 지표를 중시하는 최근 대학의 모습은 우리 기업이 외환위기 이후 송두리째 폐기한 전형적 20세기식 문제해결법이다.


대학이 사회에 내놓는 제품 역시 21세기 한국 경제의 고질적 문제들을 그대로 담고 있다. 한국 경제의 취약성이 서비스산업에 있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서비스는 그 형태를 규율할 수 없다는데 근본적 어려움이 있다.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다룸에 있어서는 접근방식이 달라야 한다. 한국 서비스산업 정체의 핵심 원인은 규제에 있다. 교육과 연구를 개선하려는 선의가 오히려 교육과 연구를 더욱 황폐화시키고 온갖 윤리문제를 야기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의 미래는 서비스산업, 지식산업 그리고 대학의 21세기 문제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 서비스와 지식산업의 어려움은 바로 그 서비스를 생산하는 당사자의 열정이 빠진다면 백약이 무효라는 데 있다. 당사자만이 그 품질을 아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다루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다루는 대학문제는 이전과 전혀 다른 차원의 21세기 문제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구태의연한 20세기적 해법을 서두르기보다 아더왕과 기사가 앉았던 원탁의 지혜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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