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런'이라는 말의 어원은 '뱅크런'(bank run)에서 비롯된 것이다. '뱅크런'이란 '은행으로 달려간다'(run on the bank)는 말이다. 은행으로 달려가는 이유는 늦게 가면 돈을 못받기 때문이다. 달리기 할 때 선착순으로 끊어버릴 때와 마찬가지로 실로 무서운 기세로 달려간다. 이는 은행체계의 특징에서 기인한다.
은행과 이들의 고객인 저축자는 채권·채무관계에 있다. 채권자인 저축자는 은행이 무엇을 운용하든지 관계없이 원금과 약정된 이자를 받으면 된다. 한편으로 채무자인 은행은 운용자산이 부실해지면 고객에게 전가하지 못하고 은행이 부담하고, 이자를 지급하고 이익이 많이 나면 은행이 갖는다.
즉 손익이 은행 주주에게 귀속되므로, 은행은 부실화될 수 있고 파산할 수 있다. 따라서 은행이 부실해지면 저축자가 은행으로 달려가는 혼란이 발생하며, 시스템문제도 발생한다. 예금자보호제도가 있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펀드는 그 구조가 은행과는 스펙트럼의 반대 끝에 있다. 펀드의 고객은 주주다. 그래서 우리는 뮤추얼펀드를 투자회사라고도 부르고, 투자자는 그 회사의 주주가 되는 것이다. 또한 개방형펀드는 해당 시장성 증권이 매일 시가평가되기 때문에 펀드의 기준가격과 순자산가치는 동일하다. 펀드는 그 구조가 너무 투명하다. 이런 구조 하에서는 지분을 가지고 있는 투자자가 먼저 달려가서 찾는다고 해서 이로울 것이 없다. 먼저 온 사람이나 나중에 온 사람 모두 그냥 본인의 지분 몫만을 받을 뿐이다.
빚쟁이 집에 가보면 채권자들이 먼저 자기 돈부터 달라고 빨리 달려오는 것처럼 채무자가 문제가 생기면 채권자는 빨리 달려가는 게 합리적이다. 하지만 펀드를 찾으러 가는 것은 주주들이 향후 투자에 따른 기대수익 전망이 밝지 않아서 지분을 줄이는 것일 따름이다. 이 상황에서 먼저 찾으러 간다고 해서 늦게 찾는 사람에 비해 유리한 점은 없다. 임의보행을 따르는 주식시장이 어떻게 갈지 누가 알겠는가! 따라서 이러한 움직임을 '펀드런'이라고 부르는 것은 맞지 않다.
이렇게 된 데는 필자의 책임도 있다. 2003년 'MMF와 펀드런'이라는 글을 쓰면서 이 용어를 사용했는데, 당시는 MMF를 장부가로 평가하고 괴리율도 컸기 때문에 기준가격과 순자산가치 간에 괴리가 크게 발생했다. 이로 인해 다른 사람보다 한발 앞서 펀드를 찾으려는 은행과 유사한 특징을 보였으며, 이는 '뱅크런'과 개념상 합치됐다.
하지만 시장성 유가증권을 보유하고 이를 시가평가하는 주식형펀드에서 '펀드런'이라는 용어는 잘못된 개념이다. 이렇게 엄밀하게 용어를 사용할 것을 주장하는 이유는 이 용어가 펀드의 본질에 대한 왜곡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과 펀드라는 너무나도 다른 두 금융기관을 동일 차원으로 취급할 수도 있다. '펀드런'은 펀드환매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펀드런'은 잘못된 용어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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