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공부하듯 창업하라

머니위크 이정흔 기자 | 2010.04.25 09:45

[머니위크]전문직 출신의 창업 성공 비결

군인, 기자, 금융계, 고위 공무원, 대기업 임원. 은퇴 창업을 하면 실패하기 딱 좋다는 대표적인 직업들이다. 그렇다고 가벼운 우스갯소리로 넘기기엔 실제로도 이들의 창업 성공 사례를 찾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은퇴 전에는 ‘한자리’씩 차지하며 떵떵거리던 이들이 은퇴와 동시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바보’가 되고 만다. 도대체 왜?

각각 군인, 기자 출신으로 창업에 뛰어들어 꽤 안정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는 두사람을 만났다. 전문직종 출신들에게 은퇴 창업 성공이 유독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지, 이들은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 기반을 다졌는지 들어보았다.

육군 대위 출신의 소민영 사장(57)은 2000년부터 10년째 오리구이전문점 ‘가나안덕’을 운영 중이다. 오리구이전문 프랜차이즈 ‘가나안덕’의 창업주로, 현재 수도권 9개 매장 가운데 소 사장이 운영하는 1호점의 경우 월 매출만 1억원에 달한다.

지난 2006년 경향신문 기자로 은퇴한 최효찬 소장(47)은 현재 1인기업 ‘자녀경영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기자 시절 <5백년 명문가의 자녀 교육>등의 책으로 이름을 알린 후, 현재 저술활동과 강의 활동에 매진하며 사무실 하나 없는 1인 기업을 차근차근 키워나가고 있다.

Q. 은퇴 후 창업 준비 기간은?

-소민영 :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1988년 대위로 전역한 다음 대구 매일신문에서 기자 생활을 잠시 했다. 외환위기 때 지역 언론사를 창업했다가 2년 만에 파산하고 먹고 살 길이 없어 오리농장을 시작했다. 오리농장을 운영하면서부터 오리구이전문점을 창업하기까지 약 2~3년 정도 준비 한 셈이다.

완전히 빈털터리가 됐을 때 다시 일어서야 했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크지 않았다. 여기저기 자본금을 끌어 모아 12평짜리 허름한 창고를 빌려 식당으로 개조해서 영업을 시작했다. 당시 창고를 빌리는 데만 200만원 정도가 들었는데, 돈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최효찬 : 처음부터 기자 생활은 딱 20년으로 계획하고 있었다. 때문에 기자로 일을 하면서부터 ‘포스트 기자’를 천천히 준비해 왔다고 할 수 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따느라, 저녁에 술자리에도 되도록이면 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사실 은퇴하고 무엇을 해야겠다는 방향은 쉽게 서지 않았다. 그런데 <테러리즘과 미디어>라는 책을 출간하고 작가 활동에서 새로운 비전을 찾았다. 베스트셀러가 된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등 틈틈이 책을 써서 출간하고, 출판업계에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지면서 지난 2006년 기자 생활 16년만에 계획보다 일찍 은퇴해서 바로 창업을 했다.

Q. 전문직종 출신으로 창업 과정을 겪으면서 특히 어려웠던 점은?

-소 : 창업 당시 자금이 넉넉하거나, 조금 더 여유가 있었다면 무조건 크게 시작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 당시 열악한 상황이 나로서는 전화위복이 됐다. 대기업 임원이나 전문직 출신의 경우 지인들을 시선이나 체면을 의식하기 때문에 적당한 규모에서 시작하지 못한다. 1억원으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을 3억원으로 규모를 부풀리고, 또 5억원으로 늘려가다 보니 위험부담이 점점 커진다. 더욱이 30년 동안을 한조직 내에서만 생활해오며 익숙해진 이들에게 낯선 창업 환경에서 큰 위험부담을 짊어지고 성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요즘에는 가끔 성공 창업 강의를 나가기도 하는데, 젊은 창업자들과 비교해 소위 ‘전문직’이나 ‘배운층’은 배우려는 자세가 약하다. 누구보다 공부를 많이 하고 자신의 전문 지식에 대한 자부심이 크기 때문인 것 같다. 요즘에는 이런 분들에게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고3때 공부 열심히 했듯이 창업할 때도 적어도 1년은 그와 같은 노력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말을 빠뜨리지 않는다.


-최 : 당장 명함을 건넸을 때 사람들의 반응부터 달라진다. 우선, 카드발급부터 ‘경향신문 최효찬 기자’였을 때는 몰랐는데 ‘자녀경영연구소 최효찬 소장’이 되면서부터 어려워졌다. 늘 ‘갑’의 입장에 있다가 은퇴와 동시에 ‘을’로 변하는데 돈으로도 해결이 안 되는 문제다. 이런 변화를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위축되고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처음에는 사무실부터 큰 걸 하나 마련했는데, 그 사무실이 이 같은 상황을 보상해 주지는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요즘엔 사무실 없이 집이나 대학 도서관을 주로 이용한다.

특히 군인이나 기자, 은행원 등 실물 경제의 흐름 속에서 부딪치는 게 아니라 고위 정책을 다루거나 안정된 조직 분위기에 있던 사람들은 세상 물정을 잘 모른다. 기자도 취재를 하며 이것저것 많은 정보를 접한다고 하지만, 당장 창업을 위해 사업자등록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조차 까막눈이다. 전문직일수록 이런 경향이 심하다. 나의 경우는 은퇴 전부터 책을 출판하며 이 업계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를 쌓아 오며 업계의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었다. 전혀 새로운 업종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하고 분위기를 익히는 시간이 필요한데, 당장 조급증 때문에 섣불리 창업에 뛰어들어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Q. 불리함을 극복하고 창업에 성공한 비결을 꼽는다면?

-소 : 예전의 자신을 다 버려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 대부분은 상황에 떠밀려 창업을 고려하게 되지만, 대기업 임원이나 인정 받던 사람일수록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창업이 달갑지 않다.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나를 버리는 것이 더욱 어려워진다. 나는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을 주로 예로 든다. 병아리가 껍질을 두들겨 신호를 주면, 어미 닭이 한번 쪼아줘야 알을 깨고 나온다. 혼자서만 고집 부린다고 절대 되지 않는다. ‘껍질을 깨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멘토가 필요하다.

일단 자신을 버리기만 하면, 새로운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 역시 마찬가지의 과정을 겪었다. 특히 나는 사업실패를 겪으며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진 경험이 있기 때문에 우선 먹고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강했다. 남의 오리농장을 빌려 운영하면서 오리를 납품하기 위해 들른 식당마다 유심히 살펴 본 것이 도움이 됐다. 장사가 잘 되는 식당과 안 되는 식당의 원인을 분석해 수첩에 꼼꼼히 적었다. 창문에 먼지가 많다. 화분에 식물이 죽어 있다 등등 세세한 것 하나하나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최 : 은퇴 전부터 창업을 준비해 왔기 때문에 인지도가 어느 정도 쌓이고, 성공에 대한 확신이 있기 전에는 은퇴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주변에서도 좋은 아이템 하나, 혹은 그 가능성만 믿고 무작정 은퇴했다가 곤혹스러운 경우를 많이 본다. 그래서 나는 확신을 갖기 전까지는 비굴하더라도 조직에 몸담고 있는 것이 현명하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가족을 내편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아내에게 성과를 보여주려고 애썼다. 다행히책 몇권이 유명세를 타며 아내의 믿음을 살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성공에 대한 확신이 늘어난 것 같고, 은퇴를 해야 할 시기도 결정할 수 있었다. 기자로 생활할 때 아내가 과외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은퇴를 하면서 안정적인 수익원을 아내 쪽으로 옮길 것을 제안했다. 아내가 나를 믿어 주었기 때문에 조급증을 내지 않고 차근차근 경영을 해 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Q. 마지막으로 은퇴를 앞둔 전문직종 예비 창업자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은?

-소 :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전문직종이기 때문에 창업에 실패하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의 조직 생활, 혹은 한 분야에 너무 익숙해져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실패의 근본 원인이다. 전문직이 문제가 아니라, 창업에 대하는 자세가 문제다. 어떤 분야, 어떤 업종에 뛰어들더라도 딱 1년간만 미친 듯이 공부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매달리면 절대 실패할 수 없다.

-최 : 책을 늘 옆에 두라고 말해주고 싶다. 상황이 달라지고 처지가 달라지다 보니, 주변 사람들을 만나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이럴 때 나를 위로해주고, 내 앞날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것이 책이다. 괜히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빨리 회복하려는 것보다는 스스로 내면의 힘을 기르는 게 필요하다. 창업시장에서 성공하려면 예민하게 촉각을 세우고 움직여야 한다지만, 은퇴 창업에서는 ‘둔감함’도 꼭 필요한 덕목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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