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 스스로 포기한 '1등 프리미엄'

더벨 이재영 기자 | 2010.04.02 11:39

P/EV 동양·대한생명 수준 불과...공모 환경 녹록치 않아

더벨|이 기사는 04월01일(11:18)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삼성생명보험이 스스로 '1등 프리미엄'을 포기했다. 공모희망가를 계산하며 앞서 상장한 동양생명보험·대한생명보험의 가치 평가(밸류에이션)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업계 1위인 삼성생명이 상장하면 생명보험사 전체가 재평가 받을 것이란 전망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삼성생명은 31일 오후 한국거래소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했다. 공모희망가 밴드는 9만~11만5000원으로 당초 예상됐던 주당 10만~12만원보다 다소 낮은 수준이다. 4443만여주를 구주 매출해 3조9993억~5조1103억원을 조달한다. 구주 매출에는 신세계(500만주)·CJ제일제당(500만주)·삼성차 채권단(3443만여주)이 참여한다.

일반적으로 생명보험사의 가치는 내재가치(EV;Embedded Value)를 기준으로 평가한다. 내재가치는 계약 후 장기간 현금이 들어오는 보험사의 특징을 반영해 미래의 현금을 현재의 가치로 할인, 현 자산에 더한 것이다.

삼성생명의 지난해 말 기준 내재가치는 16조6824억원(할인율 11% 가정)이다. 공모희망가에 따른 예상 시가총액은 18조~23조원. 내재가치 대비 시가총액 비율(P/EV)은 1.08~1.38배로 계산된다.

이는 앞서 상장한 타 생보사와 비슷한 수준이다. 상장 당시 동양생명의 P/EV는 1.37배, 대한생명은 1.03배였다. 현재 시장에서 평가받고 있는 생보사의 밸류에이션을 그대로 따라간 것이다.

자산 규모 130조원의 삼성생명이 자산 규모 1조원의 동양생명과 비슷한 평가를 받도록 스스로 캡(뚜껑)을 씌운 셈이다. 확정 공모가를 11만원 정도로 받아야 자산 규모 4조5000억원의 삼성화재보험(1.24배)과 비슷한 수준이다.

당초 업계에서는 삼성생명이 타 생보사에 비해 20% 이상 프리미엄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부동의 업계 1위인데다 자산 규모도 손해보험사까지 통틀어 단연 최대이기 때문에 P/EV가 1.2~1.6배에 이를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삼성생명은 대표주관사인 한국투자증권과 공모희망가를 정하는 단계에서 이 같은 프리미엄을 자의에 의해 반영하지 않았다.


삼성생명이 이렇게 몸을 사리는 것은 대내외적으로 공모 환경이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1일 상장한 일본 다이이치생명의 밸류에이션이 삼성생명에 상당한 영향을 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일본 2위 생보사인 다이이치생명의 IPO 규모는 1조8000억엔(약 22조원)에 달했지만 공모가가 14만엔(약 170만원)으로 P/EV는 0.8배정도였다.

다이이치생명 상장이 삼성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은 낮다. 해외 투자자들은 보통 '일본'과 '일본 외 아시아'로 자금을 구분하는데다 공모에 1달 정도 시차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한국 생명보험업이 일본보다 월등한 프리미엄을 줄 정도로 매력적이진 않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삼성생명을 포함한 대형 생보사들의 시장 점유율은 2006년 이후 계속 떨어지고 있는 추세"라며 "생보사간 과당 경쟁으로 인한 역마진까지 우려되는 상황에서 후한 공모가를 받기는 힘들다고 삼성생명은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생명의 '교훈'도 삼성생명을 위축시켰다. 대한생명의 해외 마케팅 실패를 통해 한국 생보업에 대한 해외 투자자의 시선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파악한 것이다. 삼성생명은 국내 배정 물량(20%)을 대한생명(11%)에 비해 두 배로 늘려 잡았다. 국내 배정분이 늘어나면 그만큼 해외 투자자에 의한 공모가 영향이 줄어든다.

삼성생명으로썬 주관사 개별 PT까지 실시하며 고심 끝에 뽑아낸 공모희망가다. 하지만 침체되고 있는 주식시장 상황과 맞물려 호응이 크진 않다. 일각에서는 최종 공모가로 밴드 아래쪽인 9만원이하에서 결정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현 상황에서 삼성생명은 생명보험업의 밸류에이션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는커녕 수급에 부담만 줄 가능성이 크다"며 "상장 후 주가 흐름도 쉽게 예상할 수 없는 만큼 최대한 보수적으로 접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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