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나라로 눈을 돌려보자. 우리나라 최고 기업은 누가 뭐래도 삼성전자다. 삼성전자가 시가총액 1위 기업에 등극한 것은 1988년이다. 이후 성과는 실로 눈부시다. 이를 반영하듯 지난 20년간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100배 가까이 늘었다. 그 결과 삼성전자는 상위 10대 기업(금융기관 및 민영화된 공기업은 제외) 전체 시가총액의 절반을 차지한다. 가히 삼성전자는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삼성전자 하나만 바라보고 있어도 정말 괜찮은 것인가. 잘 나가는 기업의 발목을 잡자는 얘기가 결코 아니다. 과도한 경제력 집중을 우려해서 하는 말이다. 삼성전자를 포함한 상위 10대 기업의 시가총액은 11~30대 기업 시가총액의 14배에 달한다. 경제력이 이처럼 집중된 나라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다. 이쯤되면 소수 몇몇 기업에 국운을 걸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더 염려스러운 것은 경제력 집중이 경제활력 저하와 함께 진행된다는 점이다.
시가총액 상위 10대 기업의 면면을 보라. 금융기관과 민영화된 공기업을 제외하면 모두 오래 전부터 익히 알고 있던 소위 재벌 관련 기업이다. 상위 20대 기업으로 범위를 넓히더라도 재벌가와 무관한 기업은 NHN 하나뿐이다. 1000억원 이상 자산을 가진 젊은 부호 40명 가운데 자수성가형 최고경영자(CEO)는 3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재벌가 자녀라는 통계 역시 신생기업의 진입과 성장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증거다.
미국은 정반대다. 시가총액 상위 10대 기업 가운데 30년 전에도 10대 기업이었던 곳은 4개에 불과하다. 나머지 6개 기업은 30년 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거나 10위권 한참 밖에 있던 기업들이다.
우리 경제가 활력을 잃은 데는 창업과 성장을 가로막는 과도한 규제나 대기업의 불공정한 거래관행이 한몫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금융부문에도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금융의 두 축은 은행과 자본시장인데, 이중 은행의 역할이 지나칠 경우에는 국가경제의 활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왜 그런가.
은행은 현금흐름이 안정적인 기업이나 담보가 충분한 기업에만 대출을 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다고 은행을 탓할 필요는 없다. 원래 은행은 안전한 곳에 자금을 공급하는 곳이며,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 문제는 위험회피적인 은행의 속성으로 신생기업이나 이익변동성이 큰 벤처기업이 성장에 필요한 돈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은행에 의한 자금공급이 지배적인 곳에서는 기존 기업을 중심으로 경제구조가 고착화되고 경제활력도 저하되는 것이다.
실제로 주요 국가의 금융구조와 경제활력 간의 관계를 살펴본 결과 은행보다는 자본시장이 발달한 나라일수록 기업 간 순위바뀜이 활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자본시장이 제 역할을 담당하는 나라에서는 신생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데 소요되는 기간이 짧고, 경제력 집중도 완화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경제가 늙고 있다. 늙어가는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면 새로운 기술과 비즈니스모델로 무장한 당찬 새내기들이 활발히 진입해서 성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모험자본 공급을 통해 자본시장의 저변을 넓힐 대형 증권사의 출현이 절실하다. 정부 소유 금융그룹의 매각을 앞두고 세간의 관심이 온통 메가뱅크 출현에만 쏠리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