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몰라서 무서울 뿐…"

머니투데이 류철호 기자, 김성현 기자 | 2010.03.23 07:58

[법조계 고수를 찾아서]법무법인 광장 이미현 변호사

"잘못된 과세나 비현실적인 세금정책은 견실한 기업을 멍들게 할 뿐 아니라 나라도 망하게 합니다.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에는 세금으로 인한 심각한 국제 분쟁도 일어날 수 있어 조세전문 변호사들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추세지요."

법무법인 '광장'의 이미현(49·사시 26회) 변호사는 금융·조세 분야를 다루는 변호사들 사이에서도 대가(大家)로 통한다. 광장에서 몇 안 되는 여성 구성원변호사(파트너·로펌 수익을 배당받는 주주 변호사)이기도 하다. 그는 세법 규정과 정책 변화의 흐름을 예측해 리스크를 줄이고 효과적인 '택스 플래닝(Tax planing)'을 하는 것이 조세전문 변호사들의 존재 이유라고 말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금은 달갑지 않은 손님이지만 피해갈 수는 없는 존재다. 이 변호사는 법과 정책에 대한 이해를 통해 미리 알고 잘 대처한다면 세금도 그리 무서워할 대상은 아니라고 조언한다.

'금융'과 '조세'를 넘나드는 해결사

그는 원래 금융 분야의 베테랑 변호사였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자산유동화법이 도입되자마자 국내 처음으로 2400억 원대 규모의 자산유동화거래를 성사시켰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금융학을 전공하고 미국 로펌에서 파이낸싱 업무를 한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자산관리공사의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에 매각하는 계약을 성사시켜 국내 첫 외국매각 사례를 기록한데 이어 성업공사가 관리하던 5500억원 규모(원금 기준)의 부실채권(NPL)을 해외에 매각, 금융기관 부실채권 매각 모델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조세·관세 분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이다. 외환위기 당시 한국에 투자한 수많은 외국투자자들이 한국경제가 점차 회복세로 접어들자 조세피난처인 말레이시아의 연방직할령 라부안 역외금융센터를 이용해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고 빠져나가던 때였다. 조세회피행위가 속출하던 2006년 정부가 법인세법을 개정, 라부안을 조세회피지역으로 고시한 것이 계기가 됐다.

세계 보험업계를 호령했던 AIG가 운영하는 다국적펀드가 개정 법인세법의 첫 적용 사례가 됐다. 세계 각국의 투자자가 참여한 이 펀드는 라부안을 경유해 한국에 투자를 했다가 세법이 개정되면서 한국과 미국 간에 맺어진 조세조약 상의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AIG 측이 외교 경로를 통해 문제를 삼겠다고 나서면서 법인세법 개정문제는 국제 분쟁으로 번질 위기에 처했다. 이 변호사는 국세청과 수시로 접촉해 외국법인 원천징수특례제도의 실무를 정립하고 조세조약상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투자자를 분류해 나갔다.

결국 3년여의 노력 끝에 국내 최초로 외국계펀드의 주식양도차익에 대해 경정청구가 받아들여졌다. 국내에서 조세피난처 과세특례 개정 규정이 적용된 첫 사례였다. 외국 투자자들은 갑작스런 법인세법 개정으로 징수된 세금을 환급받게 됐지만 이 사건은 외국계 투자자들의 '먹튀'를 차단하는 긍정적인 효과도 거두게 된 셈이다.


"외국 투자자들이 한국을 투자 위험국으로 분류하는 이유는 조세 법률과 정책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외국인 투자를 활성화하는 것은 국익과도 직결되는 사안 인만큼 합리적인 과세기준이 마련돼야 합니다."

이 같은 경험을 축적한 광장 조세·관세팀은 씨티은행의 한미은행 인수합병 건과 GS홈쇼핑 인수합병 건 등 수많은 국내·외 기업들을 상대로 왕성한 자문활동을 벌이고 있다.

조세 분야는 "법률·회계·세무·행정 아우른 포털 법률서비스"

이 변호사는 조세전문 변호사는 팔방미인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세무·회계 분야에 대한 폭넓은 지식은 물론 재무행정법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학습과 연구로 무장해야 한다. 광장 조세·관세팀에서 활동 중인 변호사 대부분은 공인회계사 자격을 갖고 있으며 행정고시 출신도 상당수 포진해 있다.

국제조세 분야 새로운 '블루오션'

기업들의 해외진출이 증가하면서 국제조세 분야는 법률시장의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각광받고 있다. 나라마다 다른 조세관련 법률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해외진출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실제 외화벌이를 위해 해외로 나가지만 진출 국가의 조세·관세 법률이나 정책에 제대로 대비하지 않아 낭패를 보는 경우가 다반사다.

"해외진출 기업의 성공 여부는 조세대응전략을 얼마나 치밀하게 세우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기업 운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세금이고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면 법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죠."

이 변호사는 "적을 알아야 이긴다는 말처럼 유동적인 조세정책에 철저하고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치열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생소한 분야인 '택스 플래닝'을 정착시켜 해외진출 기업이나 외국 투자자들에게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해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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