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뚝뚝한 사모님' 녹인 장미꽃과 향기메일

머니투데이 김지민 기자 | 2010.03.22 09:25

[지방은행 잘 나가는 이유]<4>부산은행 마린시티지점

편집자주 | 지방은행이 잘 나가고 있다. 지방은 서울과 수도권을 제외한 곳으로 대한민국 국민 절반이 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는 패배의식이 남아 있다. 국내 대형 시중은행들이 국민 모두를 상대로 영업하지만, 지방은행들은 해당 지역에서만 영업할 수 있다. 고객이 절반 이하인 셈이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지방은행들은 괄목상대할만한 실적을 올리고 있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라고 비유될 수 있을 정도로 절대적 열세 속에서 치열한 영업으로 이기고 있는 지방은행의 영업현장. 그 뜨거운 현장을 찾아 잘 나가는 이유를 7회에 걸쳐 소개한다.

"부산의 도곡동, 마린시티를 뚫어라."

2005년 12월. 부산은행 마린시티 지점에 떨어진 특명이다. 부산 해운대구 수영만에 위치한 마린시티는 40층 이상의 주상복합아파트 4000여 가구가 밀집돼 있는 부산의 신흥 부촌.

부산은행은 부산에만 약 220여 개의 지점이 있는 지역 토착은행이지만 이 지역에서만큼은 시중은행들과 경쟁하기 쉽지 않았다. 기존 시중은행들이 영업망을 형성해 놓은 상태여서 다른 은행의 고객을 빼앗아 올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부산의 랜드마크에 지역 최고은행이 없어서야 되겠느냐며 추진한 마린시티 탈환 작전. 절체절명의 자존심 회복의 칼자루는 박경희 지점장(현 해운대지점 지점장)에게 주어졌다. 은행 내 여성지점장 가운데 최연소(만 39세)로 자리에 올랐던 인물답게 임무는 완벽히 수행해냈다.

마린시티지점은 지난해 은행 영업평가에서 1위를 차지했다. 개점한지 3년 만에 부산은행 최고로 솟아오른 것. 비결은 공격적이면서도 감성적인 마케팅 전략에 있었다.

↑부산 마린시티지점은 인근 주상복합촌에 위치해있다.
◇"고향같은 은행으로 승부하자"="마린시티지점 주변에는 제1금융권만 14곳이 있다.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까지 합할 경우 수십 곳의 금융기관이 똬리를 틀고 있는 말 그대로 격전지다.

초고층 주상복합이 즐비한 이곳에서 아파트 한 가구당 거래되는 매매가는 최소 20억원. 부유층이 밀집해 있어 시중은행들은 프라이빗 뱅킹(PB)영업을 중심으로 한 마케팅 전략에 사활을 걸었다.

PB영업의 역사가 길지 않은 부산은행으로서는 마린시티가 개척지나 다름없었다. 총 8명의 지점 직원 가운데 PB가 달랑 1명뿐이었다. 영업점을 방문한 고객들은 외국계 은행이나 시중은행과의 차이점을 들먹이며 불평 아닌 불평을 쏟아냈고 실적은 쌓이기는커녕 1년 동안 하위권을 맴돌았다.

"부산시민이라고 해서 부산은행을 무조건 사랑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게 박 지점장의 판단이었다. 이렇게 냉정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그는 부산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전략을 짰다. '지역은행으로서의 부산은행 강점을 부각시키며 부산시민에게 적극적으로 대시한다'는 것.

"부산 어디를 가도 부산은행은 고객이 필요한 곳에 꼭 하나씩 있다"며 부산시민들이 편안하게 고향처럼 접근할 수 있다는 감성을 자극한다는 전략은 대성공이었다.

◇"발로 뛰는 게 다가 아니다"='피 눈물.' 박 지점장은 마린시티지점 개점 당시를 이 한단어로 표현했다. 하루를 일 년처럼 뛰었지만 고객의 마음을 여는 데는 무려 일 년의 시간이 걸렸다. 직원들에게는 그 때의 일 년이 10년처럼 느껴졌다.


개점 초반에는 좌충우돌 그 자체였다. 아파트 정문조차 들어가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 때 직원들이 깨달은 것은 '마음을 문을 먼저 열어야 지갑도 연다'는 것. "지금은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당시에는 실적을 올려야 한다는 다급함이 앞서 생각지 못했다"는 박 지점장의 고백이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직원들은 '일대일 마케팅'만이 살길이라는 묘안을 찾아냈다. 그 일안으로 사모님들이 거래하는 동네 부동산을 공략했다. 이틀에 한 번 꼴로 부동산에 들러 자연스럽게 부동산을 오가는 이들과 안면을 트고 지냈다.

이런 방식으로 마린시티지점과 거래를 하게 되는 경우가 적잖이 생겼고 거래를 하고 있는 고객이 또 다른 고객을 소개시켜주는 연쇄효과가 저절로 발생했다. 인간적으로 고객과 유대를 쌓아가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감성+공격 마케팅'이 성과를 거든 것이다.

지역 여건상 주택담보대출과 개인 예금 유치가 영업이익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2006년 개점 당시 325억원에 불과했던 수신총액은 4년 만에 435% 증가해 1404억을 달성했다. 여신총액도 2006년 260억에서 590%증가한 1536억원을 기록했다.

↑부산은행 마린시티지점 직원들.(사진: 부산은행 제공)
◇"불평하는 고객이 보배"='사모님을 뵙고 은행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10년이나 되는 듯 길게만 느껴졌습니다. 이 부끄러운 마음을 교훈 삼아 정말 정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박 지점장이 은행 거래를 권유하다가 면박을 준 고객에게 쓴 편지내용의 일부다. 그는 여성지점장 특유의 감성을 영업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겉치레가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편지로 고객을 감동시켜 실제 거래로 성사시킨 사례가 적지 않았다.

아파트 부녀회와 연계해 김장 담그기 이벤트를 실시하고 700세대 아파트 현관 문고리에 장미꽃을 걸어두는 등 여성층을 공략한 집중 마케팅도 고객의 얼어붙은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요인이었다.

마린시티지점의 오늘을 있게 해 준 직원들은 환경에 철저히 적응했다. 직원들은 '여기 오는 고객들 모두에게는 맞춤 응대가 아니면 안 된다'는 점을 머리가 아닌 가슴속에 심었다. 오히려 "불평하는 고객들이 은행에겐 보배 같은 존재"라고 말하며 고객의 불편을 건의사항으로 받아들이고 개선책을 찾아가는 노력도 곁들였다.

박 지점장은 "새벽 4시에 나와 아파트 문고리에 대출 전단지를 꽂으며 땀을 흘린 직원들이 없었다면 오늘날 마린시티지점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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