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이사(移徙) 권하는 사회

이용만 한성대 부동산학과 교수 | 2010.03.18 12:10
매년 3, 4월과 9, 10월이 되면 전세가격이 다른 달에 비해 많이 오르는 현상이 되풀이된다. 봄·가을 이사철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전세계약은 보통 2년 단위로 이뤄지기 때문에 집주인은 전세계약을 새로 할 때마다 그동안 반영하지 못한 전세가격 상승분을 한꺼번에 반영한다. 이런 이유로 전세계약을 새로 하는 가구가 많으면 많을수록 전세가격 상승률은 높게 나타난다. 매년 3, 4월과 9, 10월에 전세가격 상승률이 높아지는 이유는 바로 이와 같이 봄·가을 이사철에 전세계약을 새로 하는 가구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봄·가을에 이사를 많이 하는 이유는 주로 결혼이 봄·가을에 이뤄지기 때문이다. 여기에다가 덥지도, 춥지도 않아 이사하기 좋은 계절이라는 점도 봄·가을 이사철이 생긴 이유 중 하나인 것 같다.

이런 봄·가을 이사철이 변하고 있다. 여전히 봄·가을에 결혼을 많이 하기는 하지만 예전 같지 않다. 요즘 신세대들에게 있어서 결혼식이란 하나의 이벤트성 행사이기 때문에 '좋은 날'이라는 의미가 기성세대와는 다르다. 크리스마스 전날이나 평일 저녁에도 결혼식이 열리는 판이니 계절에 크게 구애될 리가 없다. 이사하는데 추위나 더위도 이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포장이사업이 발달하면서 날씨에 구속되는 일이 줄어든 것이다.

이런 변화를 반영하여 전세가격 변동의 계절성도 바뀌고 있다. 3, 4월과 9, 10월의 전세가격 변동률이 낮아지는 것이다. 4월과 10월의 전세가격 변동률은 이제 다른 달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다.

그 대신 언제부턴가 2월에 전세가격이 크게 뛰는 현상이 새롭게 나타났다. 이른바 학군수요에 의한 전세가격의 계절적 변동이다.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기 전에 전학을 하는 가구가 늘어나면서 전세가격이 뛰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런 현상은 물론 이전에도 있었지만 2000년대 들어 두드러지고 있다. 고교평준화가 수도권으로 확대 적용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학군수요란 좋은 학교를 찾아 이사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학군이 광역화된 요즘은 기피하는 학교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사를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고교평준화라는 미명 하에 학생들이 기피하는 학교라 하더라도 학생들을 강제로 배정하다보니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강제로 배정된 학교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 이사밖에 없다고 하니 사회가 이사를 강권하는 셈이다.

여기에다 긴 통학거리 때문에 이사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자기가 원하는 학교에 배정된 것이라면 그래도 행복한 이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긴 통학거리에다 기피하는 학교라면 이는 최악의 조합이다.

더욱 기막힌 것은 이 제도가 학부모와 학생들로 하여금 도박을 하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자기가 원하는 학교는 모두 원하기 때문에 배정될 확률이 낮다. 이런 학교를 1순위로 신청하였다가 떨어졌을 경우에는 모두 기피하는 학교에 배정될 확률이 높아진다. 위험을 무릅쓰고 원하는 학교를 1순위로 쓸 것인지, 아니면 안전하게 선호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학교를 1순위로 쓸 것인지를 두고 학생과 학부모는 도박하는 심정으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어느 나라, 어느 사회나 교육문제는 주택시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교평준화라는 미명에도 불구하고 교육문제가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절대적인 것 같다. 매년 2월마다 전세가격의 변동률이 높아지는 현상은 이런 사회적 구조의 한 단면일 뿐이다. 교육문제로 사회가 이사를 강권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적어도 기피학교에 대한 퇴출시스템은 갖추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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