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 공채 1기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머니투데이 도병욱 기자 | 2010.03.11 11:42

은행전환 뒤 처음 입행한 부장들의 이색 행원記

보수적이다. 모범생 같다. 다가가기 힘들다. 딱딱할 것 같다.

흔히 은행원들에게는 이런 수식이 뒤따른다. 한국에 은행이 생긴지 10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은행원들에 대한 인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만큼 은행원의 성격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쟤들, 은행원 맞아?"라는 소리를 듣던 이들이 있었다. 하나은행 공채 1기로 뽑힌 30여명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하나은행이 은행업을 시작한 1991년에 입행했다. 하나은행이 은행업을 위해 뽑은 첫 인물들이며, 이들이 입사한 뒤 1달 만에 하나은행이 출범했다.

남다른 시기에 입사한 만큼 이들의 활약상도 남달랐다. 당시 업계에서 이들을 '별종'으로 부를 정도였다. 기존 은행원과는 다른 방식으로 영업전선에 뛰어들었기 때문.

하나은행의 한 임원은 "다른 은행을 다니다 하나은행에 합류했는데 1기 행원을 보고 기존 은행원과 너무 달라 깜짝 놀랐었다"며 "독종 같은데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나 싶을 정도로 아이디어도 독특했다"고 평가했다.

아직도 하나은행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 중 하나는 바로 반상회 영업이다. 지점 주변 아파트에 열리는 반상회를 꼬박꼬박 참가해 하나은행을 홍보하고 하나은행이 내놓은 상품을 소개한 것이다.

반상회가 주로 밤에 열리기 때문에 야근은 당연지사. 하나은행 1기 중 한 명인 길기현 WM본부 부장은 "밤 10시까지 영업을 할 때도 있었고, 주말에도 저녁까지 일 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그 때는 이렇게 일 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는데, 내가 만든 회사라는 생각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점 주변 재래시장 상인을 위해 수레에 현금을 넣고 다니면서 은행 업무를 대행하기도 했다. 현재 하나은행에 다니는 1기 직원은 "다른 은행원들이 은행원 체면 떨어지게 뭐 하는 거냐고 놀리기도 했다"며 "지하철역 같은 곳에서 회사를 홍보하거나 상품 설명서를 들고 소개하는 것도 하나은행만의 문화였다"고 회상했다.

최근에는 이러한 문화가 은행권 전체에 확산되고 있지만, 당시는 자금 공급이 부족해 '은행 문턱이 높았다'는 시절이었다. 은행 입장에서 고객에게 아쉬운 부분이 없었고, 가만히 있어도 대출을 원하는 고객들이 찾아오던 때다.

은행권에서 별종 취급을 받을 정도로 하나은행 1기들이 적극적으로 영업전선에 뛰어들었던 것은 '하나은행'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서였다. 투자금융회사에서 갓 은행으로 전환한 상황에서 길게는 1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는 기존 은행들과 경쟁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이형석 대기업영업1본부 RM부장은 "기존 회사가 있었지만, 은행으로의 전환은 새 회사를 세우는 것과 비슷했다"며 "그 때는 새로운 은행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일했고, 이 은행은 우리가 만든 은행이라는 생각이 강했다"고 말했다.

결국 100여 명의 직원과 1조원의 수신기반을 가지고 은행업에 뛰어들었던 하나은행은 20년도 안 된 역사를 통해 국내 빅4로 불릴 정도로 성장했다. 아울러 당시 아무도 이름을 모르던 은행에 입사했던 1기들은 현재 하나은행의 부장급으로 성장했다.

하나은행 출범 초기에 입행한 한 직원은 "1기 선배들은 다른 기수와는 무언가 달랐다"며 "하나은행에 대한 로열티가 가장 강한 이들이 바로 하나은행 1기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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