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더내고 덜 받는 젊은층엔 '궁민연금'

머니투데이 신수영 기자 | 2010.03.10 21:51

[세대전쟁-3]韓 2050년 세계 최고령국...현세대 부담 늘려야

#2040년 3월. 나희망(30, 남)씨는 대학 졸업 후 2년간 실업자로 지내다 지난달 한 중소기업에 취직했다. 부푼 가슴으로 받아든 첫 월급명세서. 초봉 200만 원 가운데 연금보험료로 20만 원이 공제됐다. 재정 고갈을 우려한 정부가 보험료율을 20%로 올린 탓이다. 회사가 보험료 절반을 부담하지만 월급의 10%를 연금으로 뗀 것은 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나씨의 아버지 나정년씨(67세)는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젊은 시절 자신이 200만 원을 벌 때 냈던 9만 원(소득의 9%)과 비교해 보험료가 너무 올랐기 때문이다. 마땅한 저축이 없는 아버지 나씨는 매달 퇴직 전 소득의 40% 만큼 들어오는 국민연금이 구세주다. 아들이 자신과 같은 혜택을 누릴 수 없다고 생각하니 살짝 미안한 마음도 든다.

미래세대가 짊어질 국민연금 부담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대로라면 오는 2044년에는 걷는 보험료보다 지급할 연금이 많아지고 2060년에는 아예 재정이 바닥날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의 국민연금 제도가 '덜 내고 더 받는' 구조로 돼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 세대는 자신이 낸 보험료 보다 더 많은 액수(평균 소득자 기준 약 2배)를 연금으로 받는다. 은퇴 후 받는 돈의 절반은 아들과 딸 세대의 부담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경제성장률이 높고 소득이 빠르게 늘어나던 과거에는 이런 구조가 나쁘지 않았다. 다수인 젊은 세대가 소수인 고령자를 부양하는데 쓰일 보험료를 감당할 수 있었다.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는 나라다. 선진국은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전체의 14%를 넘는 '고령사회'가 되는데 50~100년이 걸렸지만 우리는 불과 18년이 걸릴 전망이다.

2026년에는 노인이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고 2050년에는 전 국민의 38.2%가 65세 이상 노인인 세계 최고령국이 될 것이란 관측이다.

하지만 이들을 부양할 젊은 세대는 줄어들고 있다. 신생아 출산율은 세계 꼴찌다. 2050년에는 일하는 사람 4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연금을 둘러싼 세대 간 갈등, 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미 정부가 국민연금 급여 수준을 낮추고 보험료율은 올림에 따라 아들딸들은 전 세대보다 연금을 더 내고 덜 받게 된 상황이다.

국민연금 도입 당시 70%였던 소득대체율(퇴직 전 소득과 연금 간 비율)이 50%로 낮아졌고 보험료율은 소득의 3%에서 9%로 올라갔다. 20년 뒤에는 수급 시작 연령도 65세로 5살 더 많아진다. 그나마 2047년 고갈될 국민연금이 이런 조치들로 고갈 시기가 2060년으로 늦춰졌다.

문형표 한국개발원구원(KDI) 박사는 "현재의 소득대체율을 더 낮추면 연금의 의미가 사라지는 만큼 보험료를 올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보험료를 빨리 올리면 후세대의 부담이 그만큼 줄 것"이라며 "소득의 13~14%까지는 올려야 맞다"고 지적했다. 이렇지 않을 경우 훗날 20%, 30%까지 보험료율을 부담할 수도 있다는 것.

우리보다 앞서 이런 문제에 직면한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은 연금 지급 시기를 늦추거나 급여를 낮추는 방법으로 해결에 나섰다. 미국이 2000년 이후 2027년까지 연금 수급 시작 연령을 65세에서 67세로 올리기로 했고 일본은 2013년부터 60세가 아닌 65세부터 후생연금을 지급한다.

스페인 등은 급여수준이 노령화와 경제성장에 따라 변동되는 안정화 장치를 도입했다. 재원을 미리 쌓지 않고 해매다 필요한 만큼 걷거나(부과방식) 정년연장과 퇴직자 재취직 등으로 은퇴시기를 늦추는 방법도 동원됐다.

정부는 연금 재정고갈이 사회문제로 부각됨에 따라 지난 2003년부터 5년에 한번 재정추계를 통해 앞으로의 재정규모를 예측하고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오는 2013년 재정추계를 통해 향후 대책을 마련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김순옥 국민연금연구원 박사는 "급속한 인구 고령화로 우리 사회가 부담할 복지비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 닥쳐올 문제에 대해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베스트 클릭

  1. 1 야산에 묻은 돈가방, 3억 와르르…'ATM 털이범' 9일 만에 잡은 비결[베테랑]
  2. 2 70대 친모 성폭행한 아들…유원지서 외조카 성폭행 시도도
  3. 3 "녹아내린 계좌, 살아났다"…반도체주 급등에 안도의 한숨[서학픽]
  4. 4 홍콩배우 서소강 식도암 별세…장례 중 30세 연하 아내도 사망
  5. 5 '학폭 피해' 곽튜브, 이나은 옹호 발언 논란…"깊이 생각 못해" 결국 사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