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광장의 김상곤(42) 변호사는 M&A를 매력적인 기업성장의 수단이라고 표현한다. 굳이 이를 강조하지 않더라도 이미 시장은 기업인수합병을 단순한 몸집 부풀리기가 아닌 고도의 경영 전략으로 활용하고 있다.
건설 사업에 진출하는 기업이 건설사를 설립하는 대신 건설사를 인수해 스스로 시장경쟁자를 줄이는 효과를 얻듯, M&A는 기업의 환경과 성장동력을 재편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최적의 M&A 조건을 찾아내 거래가 성사되도록 조언하는 것은 변호사의 몫이다.
◇M&A의 '새로운 길' 개척=김 변호사는 M&A에서 기업 경영의 새로운 길을 본다고 한다. 그는 경쟁자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흥미로운 거래를 다수 성사시켰다. 제일화재와 한화손해보험의 합병은 우리나라 최초의 손해보험사간 합병으로 꼽힌다. SK텔레콤이 신주인수 방식으로 하나카드에 지분을 투자한 것은 국내 통신사와 신용카드사 사이의 첫 전략적 제휴였다.
2003년 LG화학과 호남석유화학의 현대석유화학 공동인수는 김 변호사가 꼽는 가장 기억에 남는 M&A 거래다. 당시 LG화학을 자문한 그는 인수한 기업을 상당기간 공동경영한 뒤 다시 이를 분할하고 주식 교환을 통해 각자의 100% 자회사를 만들었다.
이후 이들 자회사와 모회사들이 다시 교차 합병하는 새로운 방식의 M&A 딜을 도입했다. 그야말로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방법이었다. 그는 "새로운 길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생각을 많이 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비결 아닌 비결을 말한다.
M&A 분야에서 '딜소싱'(기업발굴)은 가장 중요한 화두다. 자금 여력과 인수 의지가 높을수록 인수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변호사에게 M&A란 딜소싱뿐 아니라 적정한 가치 산정, 인수 전략, 통합방안 기획 등 기업 경영에 필요한 거의 모든 지식과 경험이 총동원되는 '경영의 종합예술'이다.
그는 "인수대상 기업이 성장해 인수회사의 성장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뿌듯해 진다"고 말한다. M&A 고수다운 발언이다.
김 변호사의 M&A 자문 경력은 17년. 1994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직후부터 로펌에서 기업 인수합병 전문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거래 자체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척박했던 국내 M&A 시장에서 특유의 끈기로 버텨냈다.
외환위기 직전 그가 성사시킨 P&G의 쌍용제지 인수는 외국기업의 국내 기업 인수를 의미하는 첫 대형 크로스 보더 M&A가 됐다. 이후 LG그룹의 지주회사 전환을 필두로 SK, CJ, 휴맥스, 풍산, 풀무원 등 회사 분할작업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LG의 지주회사 전환 작업은 국내 최초로 현금 대신 신주를 발행해 주는 교환공개매수였습니다. 법원의 인가를 받아야 하고 공개매수 절차도 까다로워 쉽지 않은 작업이었죠. 하지만 전환이 끝난 뒤 법원의 현물출자 인가 기록을 수천만 원에 사겠다는 기업까지 등장할 정도로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혹독한 교육으로 '프로의 세계' 알게 되다=김 변호사의 딜 실력은 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는 로펌에 발을 들여놓은 직후 선배에게서 '프로란 무엇인가'에 대해 혹독한 교육을 받았다.
그가 처음 쓴 의견서는 '주류도매상이 전체 소주 구입량의 50% 이상을 해당 지역의 소주 업체에서 구매하도록 한다'는 주세법의 자도주 규정이 소주 업체들의 전국 사업진출에 걸림돌이 된다고 보고 이 규정이 위헌이라는 주장을 끌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힘들여 쓴 의견서를 본 선배의 반응은 이랬다. "네가 고객이라면 돈 주고 이런 의견서를 받고 싶겠냐?" 자존심이 확 구겨졌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프로의 세계를 확실히 알게 해 준 짧지만 인상 깊은 꾸지람이었다.
후배들에게는 행여 마음의 상처가 될까봐 선배처럼 모욕적인 언사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술자리에서 "내가 그렇게 혼났다"고 얘기하며 프로의 세계를 가르친다.
성실함과 열정 또한 김 변호사를 고수로 만든 원동력이다. 김 변호사의 마지막 실사는 11년 전이었지만 그에게 실사는 아직도 지긋지긋 기억이자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있다.
1999년 제일은행 매각을 자문했을 때는 모처럼 가족과 해외 여행을 가기로 한 날이 실사 리포트를 제출해야 하는 날이었다. 밤을 꼬박 새워 만든 리포트를 아침 7시에 제출하고 3시간 후 비행기에 탑승, 겨우 여행길에 오를 수 있었다.
◇올해 대형 M&A 힘들 것…효성-하이닉스 인수 불발 안타까워=김 변호사는 향후 M&A 시장이 갈수록 커질 것으로 전망했지만 올해도 대형 M&A가 성사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경영 환경이 불확실한 가운데 기업의 명운을 걸고 대형 M&A에 참여한다는 의사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최근 효성의 하이닉스 인수가 불발된 것을 안타까운 딜로 꼽았다. 첨단기술을 가진 회사를 국내 기업이 인수할 수 있도록 했는데도 대통령의 사돈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특혜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역차별이자 '기업 발목잡기'라는 것이다.
M&A를 계획하는 기업에는 철저한 검토와 준비를 당부했다. 경쟁이 과열돼 '무조건 먹고 보자'라는 마음으로 덤비면 뒷감당이 힘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인수 주체가 M&A 이후 인수대상의 경영에 안정적인 비전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M&A의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김 변호사는 최근 서울대 로스쿨이 창간하는 법률 간행물 서울대 로 리뷰의 초대 필진으로 섭외됐다. M&A 실무 비법을 담은 책도 낼 예정이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생각해야 한다는 지론을 펴고 있는 그는 "주위의 관심이 커지면 더 완벽해져야겠다는 생각으로 노력한다"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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