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금호타이어 '난파 보고서'

머니투데이 유승호 부국장대우 산업부장 | 2010.02.18 17:08

'전투 이기고 전쟁 진' 금호타이어

매출 2조원 규모의 금호타이어가 난파선이 됐다. 스스로의 힘으로 타이어 만들 고무조차 살 수 없는 신세가 됐다. 회사 주인은 백기를 들었다. 은행들에게 살려 달라(워크아웃) 요청했지만 노조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금호타이어는 ‘그룹 리스크’때문에 망했다고 할 수 없다. 금호그룹이 대우건설 등 무리한 인수.합병(M&A)으로 무너졌지만 금호타이어는 자체 패망 원인을 안고 있었다. 오히려 금호타이어의 실패가 그룹에 설상가상의 어려움을 얹어줬다고 할 수 있다.

금호타이어의 지난해 성적표를 보면 처참하다. 매출액 1조9428억 원, 영업손실 1992억원, 당기순손실 6146억원. 경쟁사 한국타이어는 지난해 매출 2조 8119억, 영업이익 3484억을 기록, 매출이 6.3%, 순이익이 36.8% 늘었다. 경기 침체로 실적이 나빴다고 변명할 수 없다.

금호타이어의 기술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업계에는 기술력이 최강이라는 평가도 있다. 민항기용 타이어도 국내 최초로 개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생산이 화근이 됐다는 분석이다. 공장장 출신이 경영책임을 맡자 “좋은 제품만 만들면 이긴다”는 신념으로 생산 확장에 나서 외상 판매(매출채권)를 감당하기 힘들게 늘려놨다고 한다.

좀 거창한 예이지만, 독일군의 2차대전 패전을 떠올리게 한다. 독일의 탱크(킹타이거 전차)는 당시 1대1 전투에서 최강이었다. 그러나 한 달에 10대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반면 소련군은 한 달에 1400대 생산이 가능한 T34 탱크를 쏟아내 물량공세를 퍼부었다. 혹자는 독일의 ‘기술 근본주의자’들이 전쟁에 이기기 위해 탱크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그저 ‘더 좋은 탱크’를 만들어내는 데만 몰입했다고 평가한다. ‘기술 따로 시장 따로’는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금호타이어와 한국타이어의 노조는 너무도 대비된다. 금호타이어는 민노총 소속이고 한국타이어는 한국노총 소속이다. 지난해 6000억이 넘은 적자를 낸 금호타이어의 강성노조는 지난해에만 69일 파업을 주도한 반면 사상최대 매출을 낸 한국타이어는 지난 3년간 파업을 한 적이 없다.

두 회사의 임금을 비교해보면 혀가 절로 차진다. 금호타이어의 생산직 평균임금은 5927만원. 지난해 69일 파업으로 전년(7135만원)보다 1200여 만원이나 줄었지만 경쟁사인 한국타이어(4240만원), 넥센타이어(4089만원)보다 여전히 2000만원 가까이 높다. 2008년에는 1억원 이상을 받는 고소득 직원들도 전체의 4%인 209명이나 됐다. 노조 또한 전투(매년 두 자릿수 임금인상 달성)에서 이겼지만 회사는 난파됐다.

금호타이어는 원재료 부족으로 인한 가동중단 사태를 눈앞에 두고 있고, 노조는 임금삭감 등에 반대하며 전면적 투쟁을 선포하고 상경 집회에 돌입했다. 노조는 경영부실 책임을 떠넘기지 말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외부의 시선은 싸늘하다. 오히려 만기도래한 전자 채권 결제를 받지 못하고 있는 200여개 협력업체들만 괴롭다.

이럴 때 차라리 노조가 백기에 반성문 써서 내건다면 오히려 동정표를 받지 않을까. 이미 평가는 그들 몫이 아니다. 그 회사를 살리기 위해 위험을 무릎 쓰고 새 돈을 투자하는 사람들, 그리고 잠재적 투자자들이 모인 시장에게 넘어갔다. <금호타이어 실패 보고서>는 경영학 개론에 등장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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