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금융으로 금융수출국 만들 겁니다"

더벨 김현동 기자 | 2010.02.18 13:32

작년 13억불 선박금융 주선 産銀 정지원 대리

더벨|이 기사는 02월16일(18:52)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선박금융 시장은 남성의 세계다. 화주(貨主)와 선사, 조선사가 모두 남성 위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보수적인 한국의 금융회사에서 여성이 선박금융을 주선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성공하는 여성이라면 특출나게 영업 수완이 뛰어난 경우다. 또는 회식 자리에서 과감하게 폭탄주를 돌리는 '남성적' 스타일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이 여자. 정지원 산업은행 국제금융실 선박항공기금융1팀 대리(30·사진). 지점 근무를 포함해 6년차 은행원에 불과한 그가 선박금융 시장에서 주목받는 여성 뱅커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선박금융 경력은 3년에 불과하다. 하지만 전문직군으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다른 투자은행(IB)처럼 수 백 퍼센트의 성과급은 받지 못하지만 IB만큼 열심히 일해요. 마켓 플레이어로 대등한 대우를 받아요"라며 자신감이 넘쳤다.

이런 자신감은 작년 금융위기 때 빛을 발했다. 작년 글로벌 신용경색으로 시중은행들이 선박금융을 외면할 때, 산업은행은 약 16억달러의 선박금융을 주선했다. 정 대리는 이 가운데 13억달러를 해냈다.

특히 4억8200만달러의 한국가스공사 LNG선 3척 리파이낸스는 최악의 시점에서 이뤄낸 쾌거였다.

"작년 1월부터 딜을 준비했어요. 이때가 금융위기의 정점이었는데, 기간물 조달이 안 되면서 시중은행들은 모두 포기했던 딜이에요. 선박금융에 북 빌딩(book building)을 도입해서 기업금융 은행들을 끌어들이고, 선순위대출로만 이뤄지던 선박금융 시장에 선순위와 후순위로 나눠 구조를 짰어요. 과거에는 선사들이 금융사를 찾아왔었는데, 작년에는 선사들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설득했어요. 성공보수도 모두 나중에 받고요. 무모하다고 할 정도였어요."

전통적인 선박금융은 아니지만, 작년4월 일본 미즈호은행과의 대출스왑 1억5000만달러 역시 정 대리가 짜낸 아이디어였다.

정 대리는 "대출스왑과 가스공사 LNG선 리파이낸스는 작년 말 선박펀드 'Let's Together 펀드'의 파일럿 테스트 개념이었다"면서 "이런 성과를 통해 금융위기 해결의 물꼬를 텄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혼자서 13억달러의 실적을 일궈낸 주역이지만, 산업은행 기업금융 시스템의 힘이 있었기에 그 같은 실적이 가능했음을 잘 알고 있다.


"산업은행 기업금융 조직은'찍새'라고 할 수 있는 기업금융실, '딱새'인 선박금융팀 외에도 부실처리 전담반인 기업구조조정실이 있어요. 시중은행은 이런 시스템이 없어요. 산업은행이 체계적으로 기업금융을 할 수 있는 건 이런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에요."

선박금융 시장에서 뱅커의 역할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엿보였다. '비올 때 우산을 뺏는' 금융이 아니라, 공생할 수 모델을 찾아야 한다는 것.

"일부에서는 은행을 빗대서'tourist bank'라고 해요. 하지만 산업은행도 작년에 어려웠어요. 무조건 퍼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나름 금융과 산업의 상생에 일조했다고 생각해요."

선박금융 시장에 대한 고민은 산업은행 민영화와도 연결돼 있었다.

"우리나라가 세계 1위 조선강국이라서 선박금융은 금융수출국이 되기 위한 발판이자 기회라고 생각해요. 산업은행이 민영화되더라도 선박금융은 은행과 기업이 모두 이익이 나는 딜이라서 영향이 없을 거예요. 수수료(fee) 비즈니스나 자문 비즈니스도 확대할 수 있어요."

남자들이 주도하는 선박금융 시장에서 생존비법을 묻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온다.

"흔히 성공한 여자들의 성공 비결을 물어보면, 여자로서 섬세하고 꼼꼼한 성격을 말하는데요. 제 주위에는 꼼꼼한 남자 은행원들이 천명이나 있어요. 그런 건 없어요."

하지만 열정과 노력없이 성공이 가능했을까.

"남편이 조선사에 근무하는데 선박금융 스터디를 할까 생각했어요. 입행 당시 '신입행원과의 대화'에서 제가 '산업은행은 강·태·공'이라고 했는데, 이상하게 산업은행이 자꾸 저를 낚아요."

작년 산업은행 선박항공기금융1팀은 16억2830만달러(금융계약서 서명일 기준)의 주선 실적을 기록했다. 2007년 아시아 선박금융 주선실적 1위였던 우리은행의 실적이 7억4857만달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작년 산업은행의 역할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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