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조 퇴직연금시장...'선점'경쟁이 '출혈'로

머니투데이 박성희 기자 | 2010.02.17 07:53

'고액 퇴직자=소형 법인' 증권업계 역마진 감수

막대한 손실에도 증권사들이 퇴직연금 사업 유치를 위해 고금리 출혈 경쟁을 벌이는 건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큰 퇴직연금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다.

올해 말이면 그동안 퇴직보험·신탁에 주어졌던 세제혜택이 사라지고 기업들이 퇴직연금 도입을 서두르면서 올해 퇴직연금은 100조원대 시장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해 12월 말 현재 퇴직연금 시장에서 은행과 보험(생명보험과 손해보험 합계)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48.5%, 39.7%인 반면 증권업계는 11.8%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후발주자인 증권사들은 은행이나 보험사와 경쟁하기 위해 1년 만기 원리금보장상품을 중심으로 예금금리보다 높은 이자를 내세우며 고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현재 시중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최고 5%에 불과하지만 개인퇴직계좌(IRA) 특판 금리로 연 8% 이상을 제시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증권사들이 원리금보장상품으로 주로 활용하는 것은 주가연계증권(ELS)이다. 코스피200지수에 연동해 안정적인 구조로 ELS를 발행하지만 역마진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A 증권사 관계자는 "제시한 금리만큼 나오지 않으면 증권사가 손실을 온전히 끌어안게 된다"며 "손익 측면에선 분명 '마이너스'지만 다른 증권사와의 경쟁에 대응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토로했다.

B 증권사 관계자는 "앞으로 퇴직연금시장의 성장 잠재력을 생각하면 초기 비용으로는 저렴한 편"이라며 "KT 퇴직자 1명이 유치하는 자금은 2~3억원 정도로 이는 20~30명 직원을 보유한 일반 법인을 유치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법인 영업에 들이는 비용과 노력을 감안하면 훨씬 효과가 크다는 설명이다.

일부에선 증권사가 제시한 고금리 속에 수수료 수입이 숨어있다는 점을 꼬집었다.


C 증권사 관계자는 "개인퇴직계좌(IRA) 투자금의 0.55% 정도를 운용 수수료로 떼기 때문에 증권사 입장에서 아주 밑지는 장사는 아니다"라며 "일회성 예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퇴직연금이라는 '제도'에 가입하는 것이어서 한 번 고객은 적어도 10년 이상의 수익을 확보하는 셈"이라고 귀띔했다.

증권사의 고금리 경쟁은 특정 대기업 종사자에게만 해당돼 형평성에 위배된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연 8%를 웃도는 원리금보장상품은 KT 퇴직자에게만 적용된 '특판' 상품으로, 동양종금증권을 제외한 대부분의 증권사들은 일반 IRA 가입자에게 그보다 1.5~2%포인트 낮은 금리를 제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예금금리보다 유리한 조건인 줄 알고 증권사를 방문했다가 실제 받을 수 있는 금리는 5% 안팎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실망해 돌아가는 이들도 적지 않다.

증권사들의 '제살깎이식' 경쟁이 과하다는 비판이 이어지면서 업계에선 자체적으로 금리를 낮추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동양종금증권은 현재 연 7.5%인 금리를 다음주부터 7.2%로 내리기로 했고, 삼성증권은 당분간 IRA 관련 상품에 대해 금리를 확정하지 않기로 했다.

또 퇴직연금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증권사들이 근시안적으로 고금리 원리금보장상품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퇴직연금시장의 질적 향상을 위해 실적배당 상품의 비중이 높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 해 12월 말 현재 전체 적립금 가운데 85.3%(11조9849억원)가 원리금보장상품이다.

업계 관계자는 "전체 퇴직연금 시장 내 IRA 비중은 5%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직장 이동이 빈번해지고 단기 근속자가 증가해 IRA 비중도 늘 것"이라며 "증권사들이 투자 상품이 아닌 원리금보장상품 금리로 경쟁해서는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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