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질문할 게 '세종시'밖에 없나요"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 2010.02.10 17:41
"세종시 답변만 준비하면 됐다."

10일 국무총리실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4일 정치 분야를 시작으로 이날까지 진행된 외교 통일 안보 경제 교육 분야 대정부질문 일정을 마치면서였다. 분야는 많았지만 굳이 가릴 것 없이 "오직 세종시 문제만 대비하면 돼 '편했다'"는 얘기였다.

총리실만이 아니었다. 세종시와 관련된 국토해양부와 기획재정부 교육과학기술부 등 상당수 정부 부처 공무원들이 같은 얘기를 했다. 국정감사와 더불어 대정부질문을 준비하는 시기는 공무원들이 '죽어나가는' 때라고 한다. 이런 대정부질문을 이번에 처음 준비해봤다는 한 서기관은 "이런 식이라면 매일 하라고 해도 할 만 하겠다"고 말했다.

닷새 동안 진행된 대정부질문에 나선 60여 명의 국회의원 가운데 '세종시'를 말하지 않은 의원은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여야는 물론 친이(친이명박) 친박(친박근혜) 등 여권 내 계파끼리도 정운찬 국무총리를 앞에 두고 충돌전을 벌였다. 시장에선 유럽발 일본발 경제위기론이 고개를 들고 있지만 세종시 앞에선 그저 먼 나라 얘기였다.

한쪽에선 정 총리가 전략을 잘 짰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정 총리는 대정부질문 첫날 "자기 정치집단의 보스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세종시 찬반 입장이 달라져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 나오자마자 단숨에 '세종시 블랙홀' 정국이 국회를 에워쌌다. "어차피 터질 문제라면 먼저 터트려 주도권을 잡는 게 낫다"는 얘기였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입법부 수장이 대정부질문 폐지론을 꺼내는 일도 있었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의원들의 출석률도 낮은데 온통 정쟁으로 얼룩질 바엔 차라리 대정부질문을 없애자"고 말했다.

사실 언론도 의원들을 비판할 입장은 못 됐다. 머리기사를 장식하는 내용은 늘 세종시였다. 대정부질문을 취재하는 기자들의 귀도 "세종시"라는 말에만 움찔했다. '강도론'을 빌미로 청와대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싸움' 붙인 데도 '세종시'만 묻는 언론의 역할이 적잖았다.

세종시는 물론 중요하다. "그까짓 거"라며 술자리 안주거리로 삼을 만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세종시가 다른 현안을 몽땅 '먹어치울' 만한 문제인지는 따져봐야 할 듯하다. 굳이 "세계와 경쟁하고 있는 지금 우리끼리 싸울 시간이 없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을 꺼낼 필요도 없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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