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에 가려 스스로 이름을 빛내지 못해도 울진대게 또한 울진의 또 다른 매력이다. 살이 꽉 들어차 입으로 들어가는 순간 감탄을 금치 못하는 울진 대게처럼 울진은 자신의 매력을 다소곳이 숨기고 있는 부끄럼 잘 타는 새색시의 자태로 다가온다.
◆기억 하나 새벽포구의 매력 - 구산, 죽변항
바다는 지난 밤 쌓였던 먹물같은 피로를 내몰고 시린 숨결로 다가왔다. 새벽 포구의 바람은 옷깃 속을 파고든다. 포구의 가뭇한 불빛은 감은 눈을 억지스레 뜨는 어린아이의 모습처럼 정겹기만 하다. 위판장은 아직 사람이 없다.
사람이 없는 공터는 스산하기만 하다. 잠시 바다로 눈을 돌리고 포구의 형상을 카메라의 망막으로 옮겨오는 동안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느새 위판장 바닥에는 잡아온 고기들로 그득하다. 추석이 가까워서인지 위판장에 옮겨진 것들은 문어가 대부분이다. 전라도에서 홍어가 잔치는 물론 제사상에도 반드시 올려지는 어종인 것처럼 경상도 울진에서는 문어가 홍어이상의 대접을 받는다.
문어는 상상했던 것보다 몸집이 거대하다. 거의 어린 아이만한 크기를 한 문어는 어슬렁거리며 위판장 바닥을 기어 다닌다. 바다를 향해 슬그머니 도망치는 문어를 발견하고 재빠르게 다리를 잡고 올려 세운 아낙은 한동안 웃음을 머금었다.
후포는 특히 해돋이가 일품이다. 어떤 이는 해가 돋는 장관을 보며 '태양을 켜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햇살 부옇게 부채 살처럼 항구를 어루만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환하게 수 만촉의 전등을 켜놓은 것처럼 주변을 환하게 비춘다.
7번 국도를 따라 울진의 북단으로 올라가다보면 또 하나의 포구가 보인다. 죽변항이다. 어느덧 날은 환하게 밝았다. 죽변항에는 벌써부터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밤새도록 바다와 씨름하며 건져 올린 대게들이 어느새 일렬종대로 늘어서 있다.
다리가 두 어 개 쯤 떨어져서 상품구실을 못하고 제 동료들 틈에 끼지 못한 놈들은 서운한 눈빛으로 저만치 물러서 있다. 속이 꽉 차지 못하고 물만 잔뜩 든 물게는 그나마 취급도 못 받고 빨간 함지박속에서 거품만 뿜고 있다.
경매사는 눈어림만으로도 대게의 선도와 상품성을 짐작하고는 가격을 책정한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희망가격을 백묵으로 적어서 경매사에게 내 미는 어부들의 거친 손길에서 삶의 고단함과 엄숙함이 동시에 묻어 있다.
바다와 벗삼다 어느새 머리에 서리가 내린 이들은 경매를 끝내고 헛헛한 눈길로 바다를 처다 보다 다시금 바다로 향한다. 삶은 그렇게 반복된다.
◆기억 둘 고졸하고 단아한 천년 불사 불영사
신라 천년의 빛나는 영광들은 이제 가뭇없이 사라졌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소멸한 것은 아니다. 드라마로 인해 다시금 각광받는 선덕여왕의 동생 진덕여왕시대인 651년에 창건된 불영사는 천년도 넘는 시절 우리 조상들의 숨결이 곳곳에 배여 있는 천년 고찰이다.
잉잉대는 겨울 바람도 불영사가 있는 불영계곡을 넘어설 즈음 차츰 잦아들었다. 불영계속은 금강송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어 '축복받은 땅' 같은 기운을 내뿜는다. '금강송'이라 불리는 소나무는 금강산과 태백산간에서만 자란다는 한국 토종 소나무종이다. 소나무 원시림의 원형이라고 불릴 정도로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는 소광리 금강송 숲 속에 수령이 족히 2-3백년은 넘는 금강송 8만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솔 향이 금방이라도 묻어 나올듯한 숲속을 지나면 불영사가 고고한 자태를 드러낸다. 불영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다. 불영사를 에워싼 산들은 마치 그 모습이 서유기로 잘 알려진 천축국에 있는 산과 닮았다고 하여 천축산이라고 불린다.
사실 천축이라는 말자체가 인도를 의미하니 인도의 산과 닮았다는 것보다 부처님의 공덕이 숨어 있는 곳이라는 뜻으로 해석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불영사의 중심에는 불영지라고 불리는 자그마한 연못이 있다. 지금처럼 얼음이 얼지 않은 때에는 산의 서편에 있는 바위모습이 그대로 투영된다. 바위의 모습은 영락없이 부처님이 서서 설법을 하고 제자들이 앉아서 열심히 경청하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그 바위의 그림자가 항상 연못안에 비추어 불영사(佛影寺)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부처님의 그림자가 비추는 영험한 절이다 보니 절의 모습 또한 고졸하면서도 정갈하다. 원래 불영사는 구룡사였다고 한다. 불영지에 아홉 마리에 용이 살고 있었다. 의상대사는 용들에게 부처님이 계실 절을 세울 것이니 다른 곳으로 이주해 줄 것을 요구했다.
여덟 마리의 용은 의상대사의 설법에 감복하여 이주하였지만 한 마리의 용만이 끈질기게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이에 의상대사는 화(火)자를 써서 연못에 던지니 뜨거운 기운에 못 견뎌 용은 자리를 떴다고 한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는 대청은 고색이 창연하다. 몇 번이나 소실과 중수를 거쳤지만 본연의 아름다움만은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다.
◆기억 셋 쫀득하고 향긋한 여운이 남는 울진대게
먹을 거리의 기억은 입과 머리를 거쳐 가슴에 남는다. 그런 점에서 울진 대게는 힘이 세다. 한번 입맛을 들이고 나면 여간해서 잊지 못할 기억의 잔상으로 남기 때문이다. 예전에 울진대게는 임금님의 수랏상에 오르던 음식이었다.
임금은 대게의 맛에 반해 코와 입에 대게 부스러기가 묻어 있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음식을 입에 넣었다. 맛있게 먹는 것은 좋으나 용안을 더럽히는 지도 모를 정도로 탐식하게 만드는 모습이 그리 보기 좋지 않았던지 한동안 대게는 진상물품에서 제외되었다고 한다.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조차 맛을 들이면 범부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대게의 맛은 일품이다.
대게는 몸체가 크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 아니다. 몸통에서 뻗어 나간 다리의 모양이 마치 대나무처럼 곧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게는 황금색에서 홍색까지 여러 가지 색깔이지만 진짜 대게는 황금색이 짙은 '참대게' 또는 '박달게'를 일컫는다. 대게하면 사람들이 영덕을 떠올리지만 이는 영덕이 교통의 요지였던 덕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실 울진과 영덕이 그리 멀리 떨어진 곳도 아니고 거의 같은 바다에서 대게를 잡아들이니 울진대게나 영덕대게나 따지고 보면 지명다툼을 할만한 이유도 별로 없다. 대게는 찜을 해서 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
뜨거운 대게를 잡고 다리 가운데를 가위로 살짝 흠집 내어 죽 잡아당기면 쫄깃한 속살이 그대로 드러난다. 입안에 넣고 씹으면 씹을 사이도 없이 그대로 빨려 들어간다. 쫀득하면서도 고소하고 뒷맛까지 개운하다.
여기에 소주 한잔을 털어 넣으면 한 겨울의 복판에서 꽃 내음을 맡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울진의 밤은 사위어 가고 울진의 바다는 조용히 잠들 준비를 시작했다.
◆연계 휴양지
▶응봉산 자락의 자연용출온천 '덕구온천'
한 걸음 한 걸음, 응봉산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따라가면 퐁퐁퐁 온기를 안고 입김을 내뿜은 용천수가 있다. 동해안 최고의 수질을 자랑하는 온정골, 덕구온천의 원탕에서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원탕의 앞에는 족욕을 할 수 있는 족탕도 마련돼 있다. 덕구온천을 찾는 사람들이 응봉산 등산까지 마다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등산코스는 덕구온천관광호텔에서 출발하면 왕복 4km 정도(2시간 소요)인데 형제폭포, 옥류대, 선녀탕 등의 진기한 풍광을 만날 수 있는 코스이다. 새벽에 등산을 하게 되면 신선샘 부근에서 동해의 일출도 감상할 수 있다. (문의 054)782-0677 www.duckku.co.kr)
▶'2010 국제울진대게축제'
대게하면 흔히 영덕을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로 대게가 영덕보다 더 많이 잡히고 더 헐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울진이다. '대게의 본 고장'을 자부하는 울진에서는 오는 26일부터 28일까지 3일간 '2010 국제울진대게축제'가 열린다.
예년보다 한 달 이상 축제기간을 앞당긴 것은 대게가 가장 많이 나는 시기로 축제 일정을 조정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울진군 후포항과 한마음광장(왕돌초 광장) 일원에서 벌어지며 울진대게와 붉은 대게 무료시식, 울진대게 원조마을 탐방, 대게잡이 및 선상일출 참관 등의 다채로운 행사가 벌어진다. (문의 : 울진군청 해양수산과 054)789-6852, http://ujcrab.ulji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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