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고 정인영회장 "오뚝이의 꿈, 흑룡강서 부활"

헤이허=박종진 기자 | 2010.02.09 12:00
중국 최북단 흑하시에서 눈 덮인 흑룡강(아무르강)을 따라 달리자 산길 모퉁이에서 '만도'(MANDO)간판을 만났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120만평의 우아니우호수(臥牛湖)가 한눈에 들어오는 언덕에 올 해 신축한 만도 흑하 동계연구센터가 있었다.

만도는 우아니우호수를 30년간 임대해 각종 첨단 부품의 혹한기 테스트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영하 45도까지 곤두박질쳐 70cm 이상의 얼음이 어는 호수 위를 수 십대의 테스트 차량이 질주한다. 현재 65명의 연구원이 1500m 길이의 눈길 트랙을 비롯해 8개의 주행시험장에서 테스트 작업 중이다.

2004년 초 처음 만든 이 테스트장에 종합연구센터를 대대적으로 신축해 지난 4일 완공했다.

연구센터 입구에 들어서자 고 정인영 명예회장의 흉상이 입장객을 맞았다. 그는 일찍이 중국시장의 가능성을 보고 92년 한중수교가 맺어지기 전부터 수시로 중국을 넘나들었다.
↑지난 4일 만도 흑하 동계연구센터에서 고 정인영 회장의 흉상 제막식이 열렸다. 사진은 왼쪽부터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 부인 홍인화 여사, 황인용 만도 중앙연구소장.

정 명예회장은 89년 중풍, 97년 IMF 외환위기 사태때 부도 등 숱한 시련에도 '오뚝이'라는 별명답게 중국시장 확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94년 흑룡강성 하얼빈시에서 한라중공업이 연간 1000대의 굴삭기를 현지 생산키로 한 것을 시작으로 북경 랑방에 브레이크 합작회사 설립, 96년 중장비 공장 준공식 등 곳곳에 투자를 이어갔다.

흑하 연구센터 사무실 여기저기도 정 명예회장의 친필액자 '학여역수행주'(學如逆水行舟, 학문은 물길을 거슬러 배를 모는 것과 같아 나아가지 않으면 후퇴한다는 뜻)가 걸렸다.

창업주의 정신은 고스란히 얼음판 시험장에 서렸다. 18개의 각종 최신 제동·조향·현가 장치 기술 및 첨단 운전자보조시스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올해 순수 국내기술로는 첫 선을 보일 자동주차시스템(SPAS)과 적응순항 제어시스템(SCC)이 눈에 띄었다.

자동주차시스템은 버튼만 누르면 10개의 초음파 센서가 빈 공간을 감지해 알아서 핸들을 돌렸다. 운전자는 그저 브레이크 조절과 기어변속만 하면 된다. 국내 실정에 맞게 평행주차뿐만 아니라 수직주차도 가능케 했다. 주차에 자신 없어 쩔쩔매는 일은 옛날 얘기가 될 듯 하다.

적응순항시스템은 일정 속도를 유지하게 해주는 크루즈 컨트롤 기능에서 한발 나아가 레이더로 전방 차량을 감지해 차간거리를 맞춰준다. 속도에 따라 앞차와의 간격도 자동조절 되는데 3단계로 그 정도를 설정할 수 있다. 앞차가 멈추면 따라서 서고 출발하면 같이 나간다.


이 밖에 차세대 첨단 기능 시험도 진행됐다. 보행자 보호시스템(APPS)을 작동한 채 질주하다가 앞에 사람 모양의 마네킹을 등장시키니 순식간에 경보음과 경적을 잇따라 울리고 저절로 차를 세웠다. 레이저센서와 카메라 감지센서를 이용했다.

충돌경감시스템(CDM)은 외국업체들이 레이저만 사용하는 것과 달리 카메라를 동시에 이용해 차량 앞에서만 제동장치를 작동시키는 테스트를 하고 있었다. 실험해보니 레이저에만 의존하면 바닥에 작은 철판에도 차에 브레이크를 거는 오류를 일으켰다.

‘꿈의 차’인 자율주행차(스스로 가는 차) 시험도 물론 이뤄지고 있다. 지금은 앞차와 GPS 교신을 통해 선두 차의 궤적을 따라가는 수준이다. 실제 타보니 꼬불꼬불한 눈길을 차가 저절로 핸들을 꺾고 교통표지판까지 인식해 속도도 스스로 맞췄다.

연구원들의 자부심도 대단했다. 한 연구원은 “실험을 하다 보면 차가 눈 속에 처박히는 등 사고가날 때도 한 두 번이 아니지만 외국 선진 부품업체에 의존하던 기술 하나하나를 우리 손으로 개발하고 따라잡는다는 생각에 신이 난다”고 말했다.

식사시간이 되자 연구센터 1층 식당 원형테이블은 연구원들로 가득 찼다. 중국인 연구원은 물론 IT강국 인도에 있는 만도 인도 소프트웨어 연구센터에서 파견 온 인도직원들도 있었다. 입맛에 맞춰 음식도 따로 나오는데 한국음식은 북경에서 공수해온다고 한다.

위장막에 가려진 반가운 손님도 만났다. 6월말 출시를 앞둔 쌍용차의 희망 ‘C200’이 이곳에서 내구성 테스트를 받고 있었다. 크기를 좀 더 키우고 앞뒤 디자인을 일부 바꿨다.

차항병 연구센터 소장은 “흑하 동계 테스트장은 스웨덴 시험장과 함께 만도의 주력 혹한기 시험장소”라며 “중국 로컬브랜드 매출이 늘어나는 만큼 중국시장 개척의 핵심기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인근에는 세계적 부품사 델파이와 TRW의 테스트장도 있다. 정 명예회장은 80년 신군부에 당시 주력이던 현대양행 창원공장(현 두산중공업의 모태)을 강탈당하고 재기를 다짐하며 남은 사업부문 이름을 만도(MAN DO, '사람은 할 수 있다'는 뜻)로 바꿨다. 올해 만도는 세계 최고 부품사들과 경쟁해 그 이름값을 하겠다는 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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