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미문의 위기를 겪으며 국제 금융의 패러다임은 급격히 변화하고 있었다. 국제적인 규제 논의가 이뤄졌고, 실제 우리도 규제를 강화했다. 진 위원장은 그러나 "논의 자체가 너무 규제 한쪽으로 가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곤 했다.
고민의 방점은 위기 뒤 우리나라 금융이 뭘 먹고 살지에 찍혔다. 금융 산업이 나아갈 길에 대한 해답을 찾자는 것. 규제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거였다. 위기 극복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를 땜질하는데 급급하면 '실기(失機)'할 수 있다는 게 진 위원장의 우려였다. 금융 산업을 성장 동력으로 육성할 기회를 잃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진 위원장은 "미래를 위한 정책의 가닥을 잡아보라"고 지시했다. 단 금융위원회가 전면에 나서지 말 것을 주문했다. 자유롭고 생산적인 토론이 반감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지난 7일 나온 '금융선진화를 위한 비전 및 정책과제'의 발표 주체는 금융 관련 3대 연구기관이었다. 금융연구원, 자본시장연구원, 보험연구원이 합동 연구에 나선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권역별 시각의 한계를 벗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번 '비전'에는 7개월 간 박사 30명이 달라붙었다. 보도 자료가 62쪽, 요약본만 265쪽에 달할 정도의 방대한 보고서다. 원 자료는 2000여 쪽으로 향후 한 권의 책으로 발간될 예정이다. 당국 관계자는 "이 같은 비전을 담은 금융 산업 종합보고서가 나온 것은 외환위기 이후 13년 만"이라고 의미를 뒀다.
진 위원장은 특히 연구 용역을 발주하며 시각을 시장 수요자 쪽으로 접근해 줄 것을 주문했다. 그간 정부 대책이나 연구 자료가 공급자 위주였다는 반성이 작용했다. 가계대출 적정관리, 서민금융체계 개선, 금융소비자보호 강화 방안 등은 그 산물이다.
이번 제안은 한국 금융의 싱크탱크인 3개 연구원이 내놨지만, 실제론 금융당국, 크게는 진 위원장의 고민이 담겨 있다. 진 위원장은 "그동안 여러 경로를 거쳐 논의됐던 내용들이 다 들어가 식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지만, 던져진 담론들이 주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진동수 판 '금융 선진화 종합 비전'이 어떻게 정책으로 구현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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