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스티브 잡스와 함께 한 여행

머니투데이 정희경 부국장대우 통합뉴스룸 부장 | 2010.02.05 07:56
얼마 전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아들과 딸이 각각 고등학교와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어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대 졸업식 연설을 챙겨 갔다. 돌연 잡스를 선택한 데는 거창한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때마침 '아이폰' 열기가 나타나고 있는 데다 아이들에게서 '아이팟터치 조르기'도 당하고 있어서였다.

숙소로 가는 길에 너스레를 떨며 "심심하면 읽어보라"고 연설문을 건네자 아이들은 예상대로 달가워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분량은 고작 A4용지 4쪽이었으나 모처럼 책상에서 벗어나는 마당에 웬 과제물이냐는 투였다. 아마도 나 역시 그런 처지였다면 반응이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정작 잡스의 연설을 곱씹어 읽은 것은 나였다. 연설이 이뤄진 2005년에도 접한 내용이었는데 이번에는 새롭게 다가왔다. 몇 차례 망설임 끝에 아들에게 사준 '아이팟'이 '편의성이 조금 뛰어난 MP4이거나 게임기 아니냐'는 선입관을 깨버린 때문이다. 무선랜이 설치된 공간에선 e메일이나 주변 상가정보를 신속히 확인할 수 있었고 '유저 인터페이스' 역시 기대 이상이었다.

연설을 읽을수록 애플 제품의 인기가 잡스의 '남다른' 인생에 뿌리를 둔 것으로 이해됐다.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곧바로 가난한 가정에 입양된 '불우한 환경', 3학기를 청강생으로 전전하다 대학을 중퇴하고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나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세계적인 기업을 일궈낸 '도전과 성공', 최장 6개월의 시한부 췌장암 판정을 받고 죽음의 문턱에 갔다가 수술을 통해 기적적으로 회복한 '죽음과 삶'이 '아이팟' '아이폰'과 오버랩됐다.

그가 연설 말미에 던진 '늘 갈구하고, 언제나 바보처럼 우직하게 살아라'(Stay Hungry. Stay Foolish)는 말은 다음달 출시 예정인 '아이패드'에 대한 기대감도 키웠다. 늘 부족함을 느끼면서 또 새로운 지식에 목말라하면서 꿈과 희망을 키워나가는 우직함이 제조업체가 아닌 사용자 눈으로 접근하고, 간과하기 쉬운 제품의 뒤태까지 공들여 디자인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갓 공개된 '아이패드'가 이전 '아이'(i) 시리즈의 명성을 이어갈지는 불투명하다. 새 제품을 계기로 애플의 폐쇄주의적 성향, 잡스의 독선 등이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하지만 잡스에 대한 새로운 조명도 이뤄지는 상태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인터넷 시대에 각광받고 있는 '집단지성' 대신 한 사람의 엘리트가 중요할 수도 있다는 '엘리티즘의 경제학'을 다루기도 했다.


한국판 애플, 아니 애플을 능가하는 한국의 IT기업이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브랜드 인지도나 시장점유율에 안주하지 않으면서 창의적인 인재를 끊임없이 발굴, 육성한다면 말이다. 삼성전자가 한때 넘본다는 생각조차 어려웠던 소니를 제쳤듯이 불가능은 없다.

관건은 잡스나 애플이 나올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일이다. 젊은이들이 일찌감치 꿈을 접고 안정적인 '신의 직장'만 찾는 분위기가 확산된다면, 대기업들이 될 성 싶은 벤처의 싹을 자르거나 아예 벤처가 단기적인 수익에만 매달린다면 한국판 애플은 기대하기 어렵다.

토요타의 리콜 사태로 일본 기업들의 리더십과 창의력이 상실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흘려들어서는 안된다. 일본 젊은이들이 무기력증에 빠진 반면 중국의 경우 무수한 도전이 이뤄지고 있어 20∼30년 후 일본과 중국의 미래가 180도 달라질 것이라는 예상 역시 반면교사 감이다.

나는 우직하게 새로운 것을 갈구하고 있는가. 내 아들과 딸에게 그런 도전을 일깨워주고 있는가. 나에게 잡스와 여행은 이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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