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국의 골드만"...총성없는 전쟁

머니투데이 원정호 기자 | 2010.02.04 07:01

[자본시장법 시행 1년 1-①]한국 IB의 현주소

기업공개(IPO)와 인수합병(M&A)이 줄을 잇고 있다.
투자은행(IB)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이른바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향한 증권사들의 선점 전쟁으로 한국 금융시장이 뜨거워지고 있다.

특히 자본시장통합법(자본시장법) 시행 1년을 맞아 기업인수목적회사(스팩:SPAC) 헤지펀드 등 새로운 사업기회가 열리면서 영토 확장을 위한 시장의 움직임이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를 계기로 IB업계의 성장 엔진이 탄력을 잃었던 게 사실이다. 금융위기의 원흉으로 IB가 지목되면서 국내 금융회사들의 IB를 향한 꿈은 첫걸음도 내딛지 못한 채 유탄을 맞았고 한껏 몸을 낮출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금융시장이 회복되고, 연간 10조원 이상의 IPO시장이 열리면서 증권사들이 '한국형 IB의 꿈'을 향한 날개짓을 다시 시작했다.

◇올해 IB 큰장 선다··· IPO시장만 10조

삼성생명과 대한생명 포스코건설 등 대형 IPO가 올해 줄을 이으면서 IPO시장규모가 10조원 이상으로 사상 최대에 이를 전망이다. 여기에다 우리금융 민영화 등 금융그룹간 합병, 구조조정 수요, 스팩 설립이 본격화되면서 M&A 시장도 만개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새롭게 도입된 스팩(SPAC)제도는 IPO시장 확대에 크게 기여할 전망이다. 미국의 경우 지난 2008년 IPO시장에서 스팩이 차지하는 비중이 40%에 달했다.

외국기업의 국내 증시 상장도 러시를 이루면서 IB업계의 새로운 수익원이 되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올해 10~15곳 정도의 외국기업이 국내 증시에 상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미 차이나킹하이웨이, 차이나하오란 등 중국 업체 2곳은 상장을 눈앞에 두고 있고 각각 중국과 미국 기업 1곳의 상장 심사가 진행중이다.

◇ 대형화 국제화, IB업계의 키워드

지난 1일 대우증권 캐피탈마켓본부장에 삼성증권 출신의 김현영 상무가 부임하자 삼성증권 IB본부는 난과 카드를 보내 영전을 축하했다. 증권업계 라이벌인 두 증권사의 이런 온기 넘치는 교류는 한두해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IB왕국을 꿈꾸는 대형증권사의 전략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대형사들은 좁은 국내 IB시장을 키우기 위해선 '적과의 동침'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다.

대우증권과 삼성증권은 작년말 사상 처음 IPO(인천공항공사) 주관을 함께 맡으며 호흡을 맞췄고 홍콩 등 해외진출에서 업무 제휴 등 공동 보조를 취하고 있다. IB업무는 높은 위험이 뒤따르는 고수익사업이란 업무 특성상 대형화가 유리하다. 그러나 국내 대형 3대 증권사의 총자산규모는 글로벌 3대 IB의 100분의 1 수준에도 못미치는 실정이다. 핵심경쟁력인 자본력과 인력 등이 선진금융회사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때문에 국내업계간 전략적 제휴 등을 통한 리스크 분담, 다양한 사업 기회 발굴 등이 시대적 요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김현영 상무는 "국내 대형사들이 공동 협력해 외국계 증권사가 싹쓸이 하다시피하는 국내기업의 해외 IPO, 해외시장에서 외화채권발행 등에서 당당히 경쟁하겠다"고 말했다.

해외 진출을 통한 국제화도 IB업계의 공통된 키워드다.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IB의 과점이 무너짐에 따라 진입장벽이 낮아졌고, 신흥IB 플레이어로서 사업기회가 넓어졌다.
한국투자증권은 베트남 합작증권사 설립, 중국 투자자문사 설립 및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신한금융투자는 베트남과 일본 IB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중견 증권사의 IB본부는 차별화를 통해 '신IB시대'의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파생상품 등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고 틈새시장을 공략해 '특화형 IB'로 입지를 굳히겠다는 전략이다.

최근 삼성생명 상장 공동 주관을 맡고 대우인터내셔널 매각 자문을 맡으며 두각을 나타낸 신한금융투자는 중국기업 IPO와 외화표시채권 발행 등 기존 차별화된 영역에서 경쟁 우위 전략을 고수한다는 전략이다.

솔로몬투자증권은 올해 전력 가스 용폐수 등 유틸리티기업의 M&A 자문과 사모펀드(PEF)를 통한 직접 투자에 주력할 계획이다. 또한 M&A 인수금융 후순위 대출 중개와 중견기업의 M&A 자문에 특화할 계획이다.

IBK투자증권은 모기업인 IBK기업은행과 손잡고 우량 중소기업을 위한 전문 IB로 성장한다는 전략이다.

◇업계 "자율보다 규제앞서" 지적

자본시장법 시행으로 대형 IB의 육성을 위한 필요조건은 어느정도 충족된 상태다. 다양한 상품이 시장에 뿌리내리고 금융투자업간 겸업이 단계적으로 허용되면서 사업기회도 넓어졌다.

그러나 대형IB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우선 증권사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수수료율 저하 등 악순환이 계속되는 점이 시장 활성화의 걸림돌로 꼽히고 있다. 국내 증권회사수는 지난 2006년 53개에서 작년말 기준 61개로 늘어났다.

한 증권사 IB담당 임원은 "증권사가 난립하고 IB부문에 과잉 투자되면서 최소한의 이익 창출이 안된다"면서 "수익성을 되찾기 위한 대형화가 요원하다"고 지적했다.

많은 기대 속에 시작한 자통법이지만, 세계 금융위기라는 최악의 시점에 출범한 탓에 '자율'보다 '규제'가 앞선 점도 업계의 불만이다.
인수합병 절차 간소화 등 업계의 M&A 활성화 유인책을 마련해 대형 IB의 출현을 촉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성권 신한금융투자 IB기업금융부장은 "'이행상충에 따른 미공개정보 공유 금지' 규정이 비교적 엄격히 적용되고 있다"면서 "IB고유업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 법과 현실간 괴리가 생기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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