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 한국 정치에 길을 묻다

최희갑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 | 2010.01.21 09:49
수일간 유례없이 펼쳐졌던 한파는 ‘지구온난화’라는 고정관념을 뒤흔들어 놓았다. 급기야 일부에서는 미니빙하기(mini ice age) 가설까지 들춰내며 시민들의 호기심에 부응하였다. 하지만 대세는 다시 ‘지구온난화’로 굳어지는 듯하다.

‘나비 효과’라는 이름을 처음 만들어내며 장기적인 일기예보에 근본적 한계가 있음을 밝힌 미국의 기상학자 로렌츠(Edward Lorenz)는 이런 우리의 고지식함에 대해 무엇이라 얘기할까? 로렌츠의 결론은 사실 3체 문제의 일반적 결론이기도 하다. 3개 이상의 너무 많은 변수가 상호작용하면 초기 조건에서의 사소한 차이가 최종결과에 매우 큰 차이를 낳으며 예측 불가능한 상황으로 빠져든다는 것이 그것이다.

너무 많은 변수가 상호작용하는 체계는 복잡해 보이기에 복잡계라 부른다. 기후보다 더 복잡한 것은 68억 인구가 상호작용하는 세계경제요, 5000만 가까운 인구가 상호작용하는 한국경제이다. 복잡한 경제에서 충돌하는 경제적 이해관계를 어떻게 조율해야 하는가? 인류가 지금까지 찾아낸 해법은 대체로 3가지이다. 시장, 권위, 그리고 자발적 합의와 전통이다. 그러기에 경제학과 정치학이 공존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권위는 정부 또는 정치로 바꾸어 읽어도 된다.

데이비드 이스턴은 ‘정치란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고 설파한 바 있다. 조금 생경한 개념 분류일 것이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시장경제와 중앙집권적 계획경제를 대비시키고 있음을 떠올려 보자. 교과서는 중앙집권적 계획경제를 설명할 때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잊지 않고 예시한다. 이런 연유로 우리 사회에서 권위나 자발적 합의에 대한 체질적 거부감이 생겨난 것이다.

공산주의 체제가 인류에게 안긴 가장 큰 악영향 중의 하나는 시장에 대한 독선, 즉 시장만능주의를 낳았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권위나 자발적 합의 또는 전통에 의한 문제해결 방식은 언제부터인가 버려져야 할 유산으로 치부되어왔다. 한국 사회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권위나 자발적 합의를 강조하는 사람에게 색깔을 덧칠까지 한다. 급기야 노벨 경제학상의 한자리를 차지했고 권위라는 마술을 다루는 정치학이 대학 캠퍼스에서 실종되는 일까지 생겨나버렸다.


그러나 시장과 권위 그리고 자발적 합의는 각기 제 몫이 있다. 시장은 효율성 문제를 잘 다룬다. 하지만 공평성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한다. 권위와 자발적 합의가 그 자리를 채워주어야 한다. 정보가 부족하고 서로의 속마음을 숨긴다면 시장과 권위는 구체적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 서로를 잘 알고 또 그러기에 응징도 가능한 이해 당사자 간의 합의나 사회적 전통이 그 자리를 메꾸어야 한다. 기업의 내부는 권위와 자발적 합의로 가득 차 있고, 금모으기 운동은 자발적 합의의 결정체였다.

경술국치 100년 한국경제가 당면한 도전은 무엇인가? 부국으로의 도약이라는 도전이 아직 남아 있다. 선거철을 넘어 평상시에도 정국을 뒤흔들며 갈등을 낳고 있는 지역 간 계층 간 경제적 격차도 중대한 도전이다. 이들 도전은 시장만으로 뛰어넘을 수 없다. 권위와 자발적 합의가 앞으로의 100년을 결정할 것이다. 그래서 권위를 보여주고 자발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한국 정치에 길을 묻는다.

지방의 시민들을 경제적 동물이나 선거의 제물로 그려내고 서로를 마키아벨리스트, 제왕, 엉뚱한 사람으로 스스럼없이 부르고 있는 한국정치에 답을 구한다. 100년의 여정을 앞두고 있는 우리 시민에게 길과 답을 보여줄 수 있냐고. 시장은 못한다. 어쩌면 우리의 가장 큰 도전은 정치 그 자체라 하겠다. 100년 전에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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