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홈런 경영 꿈꾸는 야구광 회장님들

머니투데이 배성민 기자 | 2010.01.21 12:15

[CEO&LIFE]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김수룡 한국도이치은행 회장

야구는 흔히 인생에 비유된다. 9회말 투아웃 이후에 역전홈런으로 승부가 뒤집히기도 하고 5회에 콜드게임(일정 점수차 이상 나면 경기를 중단하는 것)으로 경기가 종료되기도 한다. 운도 작용하지만 야구는 통계와 과학의 결정체다.

일본 야구를 '현미경 야구'로 부르는 것도, 김성근 SK와이번스 감독이 '야신'(야구의 신)이라는 애칭을 갖게 된 것도 야구에 과학을 접목해서다.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들은 숫자와 항상 씨름한다. 또 뒤질 때는 막판 대역전을 노리고, 경쟁사들을 월등히 앞설 때는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상대를 몰아붙인다. 과학을 신봉하면서도 때로는 감과 인화에 의존한다.

금융사 CEO 가운데 야구를 끔찍이 아끼는 이들이 있다.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과 김수룡 도이치은행그룹 회장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팬으로서, 선수로서 체험한 야구경영학을 펼치고 때때로 구장에 들른다.

◇'김응룡부터 로드리게스까지' 이팔성 회장의 야구론
이팔성 회장은 기업설명회(IR) 등으로 미국이나 일본에 들를 때면 찾는 곳이 있다. 뉴욕양키스나 요미우리자이언츠의 경기가 열리는 야구장이다. 이 회장이 지난해 5월 뉴욕을 방문했을 때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뉴욕양키스 구장이었다.

그는 너댓 시간의 여유가 생기자 주저없이 야구장을 택했다. 그는 비행기 탑승시간이 빠듯해 6회까지만 지켜본 것을 아쉬워했지만 뉴욕양키스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홈런 장면은 놓치지 않았다고 자랑했다.

그의 야구사랑에는 모교(고려대)와 첫 직장에 대한 애정이 녹아 있다. 이 회장이 1967년 대학졸업 후 들어간 곳은 우리은행의 전신인 한일은행. 그곳에서 수송동·남대문지점장, 영업부장 등을 거치며 대표적인 영업통으로 성장했다.

이 회장이 자신의 이력만큼이나 소중히 여기는 것은 한일은행의 야구 명성이다. 이제는 감독으로 더 익숙하지만 김영덕(전 OB·삼성·한화 감독) 김응룡(전 해태·삼성 감독) 강병철(전 롯데·한화 감독) 김인식(전 한화 감독) 선수가 강속구와 홈런으로 상대의 얼을 빼놓던 구단이 바로 한일은행이었다.

그는 야구의 매력을 이렇게 소개한다. "스타플레이어만큼 야구를 빛나게 하는 것은 팀워크인데 그건 은행이나 야구팀이나 똑같다. 감독이 중요한 것도 비슷하다." 자연스레 인화도 강조한다. 학력이나 조건을 갖춘 기획통 은행원과 시장을 돌며 상인들 전대의 돈을 유치하는 영업통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을 조율하는 것은 야구로 치면 감독인 관리자의 몫이라는 게 이 회장의 철학이다.

이 회장은 자율론도 거론한다. 빡빡한 스케줄에 따라 맹훈련을 하는 이보다 스스로 장·단점을 파악해 경기에 나서는 이들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는 것. 그가 최근 "국내 1위를 넘어 글로벌 금융그룹으로 성장하려면 하루 빨리 민영화를 달성해 경영상 제약을 벗고 자율경영의 기반을 조성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한 "시장 재편 후 우리의 노력과 선택에 따라 글로벌 수준의 금융그룹으로 도약할 수도 있고, 소리없이 2류로 전락하거나 경쟁자의 먹잇감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은 야구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이 회장은 주자가 1명도 없을 때는 홈런을 쳐도 1점에 그치지만 주자 만루일 때는 단타를 쳐도 2점이 들어오는 차이를 설파한다. 물론 그의 머리 속에는 역전 만루홈런에 대한 희열이 존재한다. 40여년 동안 선수(은행원)와 감독(금융지주 회장)의 삶을 우리금융의 민영화와 글로벌 금융그룹 도약으로 마무리짓고 싶은 것이다.


◇노신사의 강속구..김수룡 한국도이치 회장
↑ 김수룡 회장이 지난 2008년 5월 목동어린이 연식야구장 개장 기념 경기에서 시구하는 모습. <사진제공=김양경 전 일구회 회장>

이 회장이 야구팬이라면 김수룡 한국도이치은행그룹 회장(59)은 아직도 유니폼을 입는 선수다. 회갑을 눈앞에 둔 나이지만 공을 던지고 배트를 휘두른다. 사회인야구팀이지만 그는 도이치은행팀의 에이스이자 중심 타자다. 그의 경기모습을 지켜본 야구원로 김양경씨(전 프로야구 심판)는 아직도 그의 공이 시속 120∼130㎞에 육박한다고 전했다.

본래 김 회장은 야구명문 부산상고(현재 개성고) 출신이다. 한일은행의 전성기 주축선수였던 김응룡·강병철 등이 뛴 그 학교다. 미군기지 앞에서 살며 일찌감치 글러브를 잡은 데다 180㎝를 넘는 장신인 신입생 김수룡이 나타나자 야구부에서는 단연 주목했다. 체육특기생이 아니었지만 강속구 구사능력을 지닌 그는 2학년 때 팀의 주축투수로 활약했다.

하지만 그와 마운드의 인연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야구만큼이나 영어도 잘한 그에 대한 부모님의 기대가 작용한 것이다.

그는 글러브 대신 책을 택해 동아대 경영학과, 미국 펜실베니아대학 와튼 경영대학원을 거쳐 국제금융계에서 활약했다. 외환은행 근무를 시작으로 JP모간 체이스은행(서울), 케미칼투자증권(홍콩) 같은 국제적인 명성의 금융회사에서 활약한 것이다. 홍콩·뉴욕 같은 낯선 곳에서 외로움을 많이 겪은 그는 힘들 때는 야구선수 생활을 곱씹어봤다고 회고한다.

전국대회나 지역예선에서 며칠을 연투해야 하는 날이 팍팍한 외국생활과 비슷했던 것이다. 뽀얗게 먼지가 이는 마운드와 운동장에서 땀으로 범벅이 돼 숨을 헐떡거리던 선수생활을 생각하면 현재의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그는 97년 외환위기 이후에는 폭넓은 해외 인맥을 바탕으로 국내경제 회생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98∼99년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원회) 위원장 자문관으로서 경력이 바로 그것이다. 김 회장은 외국인 투자 유치와 경제자유구역 발전에도 힘을 보탰다. 투자전문가 김 회장은 야구와 관련된 직함도 맡고 있다. 2008년 한국연식야구연맹 창설을 후원하며 연맹 회장을 맡은 것이다.

운동선수 출신으로 사회적인 성공을 일궈낸 김 회장은 야구는 겨울에 하긴 어렵다는 또다른 고정관념에도 도전하고 있다. 겨울 연식야구축제가 오는 25일부터 사흘간 잠실체육관에서 열리는 것. 연맹은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아름다운 예절을 배우고 사랑과 배려를 체험한다'고 소개한다. 운이 좋다면 야구인이자 성공한 금융인 김 회장의 빠른 시구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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