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뉴욕에서 돌아온 1주일

머니투데이 김준형 증권부장 | 2010.01.14 16:21
뉴욕 특파원 생활을 마치고 지난 한주를 처음으로 서울에서 보냈다.
15년전쯤 처음 미국을 경험했을 때만해도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은 '시골'로의 귀향 같았다.
세계 최선진국 생활에 대한 아쉬움과 시스템에 대한 부러움, 그리고 질 좋은 첨단 가전제품을 이삿짐에 바리바리 싸 들고 들어오는게 보통이었다.

이제는 세상 많이 바뀌었다.
냉전붕괴 이후 단일 초강대국으로 지위를 강고히 했을지 모르지만, 밖으로의 오만에 취해 있는 동안 안에서는 적어도 보통 미국인들의 삶은 오히려 쇠락해졌다는게
피부로 느껴진다.
질 낮은 공공서비스, 속 터지게 만드는 'I don't care(나 몰라라)'식 사회 시스템에 쌓여온 피로감으로 인해 한국으로의 귀향은 '선진국'으로 돌아오는 안도감 그 자체였다.

그래도 여전히 미국이 한 수 위라고 느낀 게 없지는 않다. 눈 치우기이다.

어떤 이들은 귀국 환영 '서설(瑞雪)'이라고 너스레 인사 덕담을 건네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파트 단지내에 수북히 쌓인 눈에 푹푹 빠지며 출근하다보니 70센티미터 쌓인 눈을 처리하느라 삽질에 허리가 우지끈했던 뉴욕의 악몽이 떠오르지 않을수 없었다.

그런데 간선 도로조차도 쌓인 눈을 치우는 걸 완전히 포기한 듯한 모습이 신기해보였다. ('미쿡에서는~' 이런 소리 하면 왕따되기 딱 좋지만) 뉴욕 같은 대도시 뿐 아니라 어지간한 시골동네에서도 눈 하나는 기가 막히게 치운다. 눈이 미쳐 쌓이기도 전에 제설차가 도로를 누비고 다니고, 동네 주민들도 경트럭 앞에 제설장비를 매달고 바람처럼 나타난다. 전국민적 준비태세다.


'이래서 아직은 우리보다 미국이 선진국인가'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언론이나 사석에서도 선진국 사례를 들며 제설 장비를 대폭 늘리는 등 투자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그러나 한번 더 머리를 돌려보면 이건 선후진국의 문제와는 좀 다른 차원이라는 생각이 든다. 뉴욕 같은 곳이야 워낙 눈이 많이 오니 제설 훈련이 완벽하게 이뤄지고, 여기 쏟아붓는 돈도 천문학적이다.

하지만 서울시가 100년에 한번 올까말까한 폭설에 충분히 대응할만큼 제설장비를 갖추는데 막대한 예산을 써부어야할 이유는 없을 듯하다.
물론 기후변화로 기상 이변이 잦아지고 있다니 대비는 해야 할 것이다. 경보체제를 강화하고 재난발생시 피해복구 시스템도 보완은 해나가는게 필요하지만 '정도'의 문제이다.

얼마전 이명박 대통령이 지방자치단체들의 호화 새 청사를 두고 화를 버럭 냈다. 이해가 간다. 수백억 수천억원짜리 새 건물이 아무리 에너지 효율이 높아도 전체 에너지 소비량이 많아진다면, 또 수십년 에너지를 절약해봤자 절약분이 건설비를 감당할 수 없다면 본말이 한참 전도된 일이다.

한강 낙동강 같은 큰 강 본류가 넘쳐서 피해를 입었다는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이에 대비한다고 모든 강바닥을 몇 미터씩 긁어내는 것은 어떤가. 몇 미터되는 보를 쌓고 그 위에 효도관광 버스를 달리게 하는 것도 그리 급해 보이진 않는다.

아직 '사회적응'이 채 안돼 그런지, 소 잃을까봐 소 값보다 몇 배 비싼 최첨단 외양간 짓는 일들이 여기 저기 널려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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