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테스]금융사 경영진 보상규제에 대한 소고

신보성 한국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 2010.01.12 09:50
뉴턴은 1687년 발간된 ‘프린키피아’를 통해 근대 물리학의 근간을 다진다. 이후 20세기 들어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이 등장할 때까지 200년 넘게 그의 이론은 난공불락이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다.

이처럼 역사에 남을 업적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다’는 말로 선배 과학자들에게 공을 돌린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현자 솔로몬의 고백에도, 앞선 세대가 이루어 놓은 지식에 자신이 더할 것이라곤 먼지 한 점 없음을 고백하는 처절함이 담겨 있다.

인류가 이루어낸 성과는 이전 세대뿐 아니라 동시대 사람들에게도 빚지고 있다.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공로로 노벨상을 수상한 제임스 왓슨이지만, 화학에 문외한이던 그에게 염기쌍과 관련한 결정적 조언을 제공한 제리 도나휴가 없었더라면, 로잘린드 프랭클린이 촬영한 눈부신 DNA X-선 사진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저 껄렁하게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자복한 그가 노벨상 시상대에 오를 가능성은 크지 않았을 것이다. 사정이 이럴진대, 시상대에 올랐다는 이유 하나로 모든 공을 혼자 이루었다고 감히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여러 사람이 한데 어우러져 일하는 기업도 사정은 매한가지다. 미국 기업 경영진에 대한 보상은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일반직원 임금의 50배를 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1980년대 중반부터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하여, 이미 2000년대 초반에 300배를 훌쩍 넘어 버렸다.

기업의 성과가 경영진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데, 일반직원과의 보상 격차가 이렇게 벌어지는 게 정당화될 수 있을까. 기업의 전략방향을 결정, 실행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게 CEO라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마침 최근의 금융위기를 계기로,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금융회사 경영진들에 대한 과도한 보상에 메스가 가해질 모양이다. 영국은 일정금액을 초과하는 성과급에 대해 한시적으로 높은 세금을 부담하기로 결정했으며, 프랑스도 동조할 태세다. 미국은 한 발짝 물러나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회사에 대해서만 보상규제를 부과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에 비판적인 눈길을 보내고 있다. 경영진에 대한 보상을 결정하는 것은 기업의 주주이며, 따라서 제3자가 이래라 저래라 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금융회사의 경우는 사정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주주한테만 마냥 맡겨둘 수 없다는 것이다.

일반기업과는 달리, 한 금융회사의 파산은 쉽게 다른 금융회사로 옮겨 붙는 경향이 강하다. 뿐만 아니라 금융회사 파산은 해당 금융회사에서 차입한 수많은 중소기업들까지 파산시키고, 그 결과 금융위기는 자칫 실물경제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이렇다보니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금융회사의 파산은 가능한 한 피하려고 갖은 지원책을 동원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문제는 금융회사에 대한 지원조치들로 인해 금융회사가 실제 파산에 이르는 확률이 크게 낮아진다는 것이다.

이제 금융회사 주주들은 경영실패에 따른 책임을 자신이 온전히 부담할 필요가 없으며, 사회에 전가시킬 수 있게 되었다. 당연히 금융회사 주주들은 일반 기업의 주주에 비해 보다 공격적인 경영을 선호하게 되며, 그 결과 경영진과 일부 스타 직원들에게 과도한 보상을 제공하려는 강한 유인을 갖게 되는 것이다.

지난 2005년 타계한 경영학의 구루 피터 드러커는 경영진에 대한 보상이 일반직원 임금의 20배를 넘어설 경우, 나중에 그에 상응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현재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금융위기는 만연한 승자독식 현상 때문에 치르고 있는 대가의 일부인지도 모른다.

지난주 우리나라 정부와 감독당국은 금융회사 경영진과 일부 직원에 대한 보상규제를 내용으로 하는 ‘보상원칙 모범규준’을 발표하였다. 보상수준 자체를 규제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엄격한 보상체계 정립과 정보공시를 요구하고 있어 보상수준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외국에 비해 한참 낮은 보상을 받고 있는 국내 금융회사 경영진 입장에서는 새해 벽두부터 우울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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