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이·친박 '배수진' = 지난 7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재경 대구·경북 신년교례회에서 "원안이 배제된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수정안으로 당론을 만들어도 반대하겠다"고 했다. 타협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은 발언이었다.
지난해만 해도 박 전 대표는 "나를 설득하기 전에 충청도민을 설득하라"며 '돌아설' 가능성을 열어뒀다. 적어도 친이계에선 그렇게 해석했다. 친이계와 정부가 세종시 특별위원회, 민관합동위원회를 만들고 주말마다 충청도행 버스에 오른 것도 이런 '기대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발언으로 박 전 대표 스스로 '돌아설' 길목을 막아버렸다. 수정안 내용과 관계없이 '무조건 반대'하겠다는 사실상의 '선전포고'다.
돌아설 수 없는 건 이명박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말 생방송에서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국가와 미래를 위해" 결단을 내렸다고도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퇴각은 곧 '레임덕'의 시작이다.
이 대통령은 정공법을 택했다. 이 대통령은 8일 한나라당 지도부와의 청와대 조찬회동에서 "세종시 문제는 의연하고 당당하게 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당에도 "정부가 고심해서 안을 만들고 있으니 수정안이 나오면 충청도민에게 잘 설명해 달라"고 당부했다. 정치권 논쟁에 힘을 낭비하기 보단 충청민심을 설득하겠다는 뜻이다.
결전을 앞둔 친이·친박 의원들 사이엔 긴장감이 팽팽하다. 박 전 대표의 대변인격인 이정현 의원은 "박 전 대표의 이번 발언은 일관된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라며 "국민들과의 약속을 지키냐 안지키냐 는 정치적 신뢰가 걸려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친이계 정태근 의원은 이에 대해 "논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귀를 닫고 자신의 입장만을 고집하는 것은 지도자의 정치가 아니다"라며 "'당론이 변경돼도 반대'라는 것은 당 존립과 직결되는 해당(害黨)적 태도"라고 비판했다.
앞서 김형오 국회의장은 세종시법 개정안이 제출되더라도 2월 국회에서 직권상정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충분한 대화와 토론이 필요하다는 이유다. 하지만 4월 국회로 넘어가더라도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등 야당과 60명에 달하는 한나라당 내 친박계 의원을 설득하지 못하면 사실상 수정법안 통과는 불가능하다.
◇ 충청권 민심 향배는 =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 충청권 내 수정안 반대 목소리는 여전히 높다. 친이계에서도 쉽지 않다는 고백이 나온다. 친이계 한 의원은 "충청권 주민들의 정서적 반감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라고 말했다.
결국 기댈 것은 수정안의 '위력'이다. 또 다른 친이계 의원은 "지금 언론에 흘러나오는 내용 이상이 수정안에 담겨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 등 대기업이 이전하는 수정안에 호의적인 여론이 생겨나는 상황에서 '결정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부에선 수정안에 찬성하는 충청민심이 절반을 넘어서면 어느 정도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충청권을 대표하는 인사들도 강하게 반대하지만 않는다면 더 탄력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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