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이야기]'미분양 떠넘기기' 유감

머니투데이 문성일 건설부동산부장 | 2009.12.31 08:53
1990년대 초 건설부 장관을 역임한 A씨는 재임 당시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되면서 1개월 만에 물러났다. 문제가 된 부동산은 서울 강남 테헤란로 소재 상업용지. 공교롭게도 그가 고위 공직자로 재임할 때 취득한 것이어서 "공직자가 투기를 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지금은 강남에서도 최고의 '노른자위'이지만 취득 당시만해도 별로 인기가 없어 미분양 상태로 남아 있었다. 결국 공직에 있다는 이유로 울며 겨자먹기로 매입하게 됐다는 게 그의 해명이었다.

이유야 어찌됐든 몇 년도 채 지나지 않아 그 땅은 '금싸라기'로 바뀌었고 A씨는 땅부자가 됐다. 그는 2000년대 초 그 땅에 10층이 넘는 번듯한 건물을 지은 후 지인들을 불러 사무실 개소식까지 열었다. 현재 이 건물의 재산가치는 100억원이 훨씬 넘는다.

모 그룹사 중역인 B씨는 2000년 초 회사가 분양 중인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최고급 주상복합아파트를 계약했다. 분양 당시 외환위기로 부동산시장이 붕괴된 상황이어서 대량 미분양 사태가 발생했고 회사 간부들이 이들 물량을 떠안은 것이다. 분양가격이 3.3㎡당 1300만원선이던 이 주상복합아파트는 현재 3.3㎡당 5000만원에 달하는 국내 대표단지가 됐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론 부동산 재테크에 성공한 사례들이다.

요즘에는 이런 일이 있다. 중견업체 W사에 다니는 C과장의 어머니는 시중 모 은행으로부터 압류조치와 함께 신용불량자가 될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2년 전 아들 회사를 믿고 신규분양 계약을 한 게 화근이었다.

어머니는 "계약서만 작성해주면 입주 전에 회사에서 처리해줄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아들의 말만 듣고 도장을 찍어줬다. C과장의 회사가 표면적으로 미계약분을 줄이기 위해 직원들은 물론 가족들까지 동원한 것이다.


올 초 C과장 어머니는 해약을 했지만 문제는 이후에 발생했다. 은행의 중도금 대출 처리가 해결되지 않은 것이다. 중도금 대출이 몇 차례 이뤄진 상태여서 은행은 C과장 어머니에게 대출이자 납입을 종용했고 급기야 법적조치 통보를 했다. 다급해진 어머니는 아들에게 상황을 얘기했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전국 곳곳에 미분양 아파트를 보유한 건설사마다 물량처리를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이중 직원이나 가족들의 명의를 빌려 계약을 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중견기업일수록 더욱 심하다. 굳이 직원들까지 계약하게 하는 이유는 은행의 중도금 대출을 통해 공사비를 충당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회사가 이같은 계약을 책임지지 않아 계약한 직원들이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 본사가 지방인 D사 퇴직 직원들의 경우 회사가 계약을 처리해주지 않아 집단소송을 준비 중이다. 이 와중에 이 회사의 오너 일가는 지난해까지 매년 적게는 수 억원에서 많게는 수십 억원에 달하는 배당금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수치상으로는 전국의 미분양 물량이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방식의 계약이 적어도 수천 건 이상 된다는 점에서 단순히 수치만으로 상황을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양적인 공급 확대도 중요하지만 불필요한 피해를 양산하지 않고 정상적인 방법으로 유통되는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관행적으로 이뤄지는 '직원들에 대한 미분양 떠넘기기'도 정리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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