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정 판결이 내려진지 불과 4개월 만에 특별사면을 실시해야 한다는 점에서 고질적인 '유전무죄 무전유죄' 논란 재연이 불가피하다. 게다가 대상자가 다름 아닌 재벌 총수의 대표 격인 '이건희'라는 점에서 더더욱 압박감을 느낄 수 밖 에 없다. 예상대로 시민사회 단체와 야당들은 사면 발표 후 '법치 훼손'과 '사면권 남발'이라며 이 대통령을 겨냥해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국가이익'을 방패로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그것도 단독 특별사면, 복권이라는 정공법을 선택했다. 건국 이후 60여 년 동안 특정 1인에 대한 단독사면이 불과 5번째이고 경제인에 대한 단독사면은 이 전 회장이 처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 결정이다.
이와 관련, 이번 사면을 이 대통령의 실용주의 정신이 작용한 결과로 보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 전 회장을) 사면해도 비판을 받고, 안 해도 비판을 받는 다면 일시적으로 비난을 받더라도 국가에 이익이 되는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게 이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이 전 회장 사면에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라는 뚜렷한 명분이 있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2018년 동계 올림픽 후보도시 선정이 임박하면서 평창의 유치성공을 위해 국제 스포츠계에 영향력이 큰 이 전 회장의 사면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사면 안을 처리하면서 "평창이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이 전 회장의 IOC 위원 활동이 꼭 필요하다는 강력한 청원이 있어 국가적 관점에서 사면을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제 심기일전해 세계 스포츠계에서 국가를 위해 기여하고 글로벌 경제위기에 한국이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은혜 청와대 대변인은 "평창 올림픽 유치와 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해 노력해 달라는 이 대통령의 발언은 오늘 사면된 이 전 회장과 삼성그룹에 대한 당부"라고 못 박았다. 사면으로 제기될 비판은 대통령 자신이 받을 테니 국익으로 확실하게 보답하라는 압박이다.
하지만 이런 이 대통령도 사면 결단까지는 많은 고심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정무라인을 중심으로 청와대 내부에서 사면 신중론이 강하게 제기됐었다. 세종시와 4대강 문제로 헌정사상 초유의 준예산 편성이 준비되는 등 정국이 혼란한데 이 전 회장을 사면할 경우 만만치 않은 파장이 초래될 것이라는 게 신중론자들의 주장이었다. 어렵게 쌓아온 '친(親)서민' 노선이 한방에 무너질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전 회장 사면을 둘러싸고 찬성과 반대 의견이 맞섰는데 대통령께서 평창 올림픽 유치를 국민과 함께 지원한다는 취지에서 어려운 결정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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