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100억달러 지원받은 두바이는 지금…

아부다비·두바이(UAE)=장시복 기자  | 2009.12.22 06:58

곳곳 사업중단·임대 간판..아부다비행 도로만 '북적'

편집자주 | #지난 15일. 두바이의 중심도로인 셰이크자이드 로드를 따라 길게 빼곡히 늘어선 초고층 빌딩들의 '간판'은 하나같았다. 바로 'To Let'(임대)이라는 문구와 함께 상담 전화번호가 대문짝만하게 걸린 것. 오후 6시쯤 날이 어두워졌지만 사무실의 불빛은 켜지지 않았다. 남은 사업들이 완공되면 2011년 쯤 공실률이 50%에 육박할 것이란 전망도 흘러나온다. #같은 날 저녁. 축구장 50개 크기의 세계 최대규모 쇼핑몰인 두바이몰. 롤렉스·에르메스 등 화려한 명품숍이 즐비했지만 정작 손님들의 발길은 뜸했다. 이슬람권임에도 크리스마스 트리를 꾸미며 연말 분위기를 한껏 띄우려 했지만 외국 쇼핑객 대신 전통의상 칸두라·아바야를 입은 에미라티(UAE 국민)들만 간간이 눈에 띌 뿐이었다. 아미르칸씨(30)는 "아부다비의 지원도 시장엔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는 듯 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개발이 중단된 비즈니스베이 현장(좌측)과 고객이 적어 썰렁한 분위기의 두바이몰ⓒ장시복
↑UAE 건국 38주년을 기념하는 현수막. 두바이 쇼크 이후 두바이에서도
아부다비의 지도자 셰이크 칼리파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장시복
'두바이 쇼크' 발생 20여 일 만인 지난 14일 UAE의 '맏형 격'인 아부다비가 두바이에 대해 100억달러를 지원키로 결정했지만 현지 시장의 반응은 여전히 냉담했다. UAE 외무부 장관마저 언론에 직접 나서 "두바이 위기가 끝났다"고 공언했지만 누구하나 귀기울 이는 이가 없어 공허한 메아리로 울릴 뿐이었다.

현지 관계자들은 대부분 "부채에 의존한 과도한 부동산 개발과 수요에 비해 과잉 공급된 물량이 화를 불렀다"고 입을 모았다. 해외에서 '사막의 기적'이라는 환상을 가질 동안 이미 어느 정도 예상됐던 일이라는 것이다.

오응천 코트라 두바이KBC센터장은 "'두바이의 강북'으로 불리는 데이라(Deira)의 부동산 시세는 최고점인 지난해 2분기에 비해 50% 이상 떨어진 곳도 있다"며 "다른 지역도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두바이월드 자회사 나크힐이 개발을 주도한 인공섬 팜주메이라의 빌라촌.
입주자가 거의 없어 거리가 썰렁하다.ⓒ장시복
현지 유력 영자신문 '걸프뉴스'는 매일 부록인 '프로퍼티스(Properties)'에 무려 60페이지 분량의 두바이 및 인근 지역 분양·임대 광고를 개미 알 만한 글씨로 빼곡히 담아 발행하고 있었다. 그만큼 이 지역의 공급 물량이 과잉 됐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다.

버즈두바이의 남쪽의 비즈니스 베이는 '중동판 맨해튼'이란 청사진이 무색할 정도로 사업이 중단된 곳이 많았다. 펜스 안의 휑한 부지에는 기자재만 뒹굴고 있었다. 이곳에서 개발 사업을 진행 중인 성원건설 두바이지사 김범준 부장은 "도심은 그나마 이미 시작 된 공사는 진행이 되고 있다"면서도 "다소 동떨어진 제벨알리 항만 쪽은 타워크레인이 대부분 멈춰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

모라토리엄의 '주역'인 두바이월드의 자회사 나킬(Nakheel)이 주도하고 있는 인공섬 '팜 주메이라'(Palm Jumeirah)에선 개발이 늦춰지며 입주가 2~3년 지연되자 계약자들이 손해배상 청구와 계약 해지 요구를 하는 풍경도 연출되고 있다.

다행히 국내 건설사의 두바이 진출은 적은 편이다. 추진 중인 부동산 개발사업은 3건(총 7억달러)으로, 두바이 쇼크를 촉발시킨 두바이월드의 자회사 나킬사로부터 수주한 공사 3건(5억 달러) 중 2건(1억6000만 달러)은 이미 계약 해지가 됐다.


↑한 공사현장 25층에서 바라본 두바이 전경. 삼성물산이 시공한 버즈두바이가 우뚝 솟아있다.ⓒ장시복
한 건설사 UAE지사장은 "국내 건설사들의 개발사업은 경기가 좋던 2006년에 분양을 대부분 마쳐 직접적 피해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라며 "다만 이번 사태 여파로 도급사업의 경우 발주처의 공사대 금이 밀려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가 많고 향후 계약해지 요구에 대한 우려도 남아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도 "개별 공사가 진행되더라도 수도·도로·전기 등 공공 인프라 마련이 더뎌져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10여년 째 이곳에서 개발사업을 해 온 권탄걸씨는 이번 금융 위기를 '쓰나미'로 표현하며 "보수적인 관점에선 2~3년 내로는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가 있다"면서도 "시점을 알긴 힘들지만 두바이가 지닌 중동의 '금융·무역·관광 허브'로서의 역할과 잠재력이 있는 만큼 곧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저가 매수' 타이밍을 노리는 세력도 나오고 있다. 중국·인도·러시아 등의 부호들이 '디스트레스드 펀드'(Distressed fund)로 불리는 벌처펀드를 구성해 입질을 시작한 것이다.

두바이의 최대 부동산중개업체인 베터홈스(Better Homes)의 에이전트인 스티븐예씨는 "올 3분기 이후 바닥을 찍었다는 판단 하에 저가매수를 노리는 세력이 나오고 있다"며 "두바이 쇼크 이후 잠시 멈칫했다가 이번 아부다비 지원이 긍정적인 신호라고 보고 다시 입질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두바이월드 자회사 나크힐의 팜 주메이라 현장. 펜스만 쳐진 채 공사가 중단됐다.ⓒ장시복
한편 아부다비로의 경제 중심축 이동은 가속화 되는 양상이다. 지원이 계속 이뤄질 수록 두바이의 아부다비 종속화 현상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다수다.

실제 출근 시간인 오전 7시쯤 두바이와 아부다비 중간의 '사파(safa) 톨게이트'에선 두바이행 도로가 썰렁한데 반해 아부다비행 도로가 정체된 장면을 볼 수 있다. 파키스탄 출신 노동자 샤알렘은 "두바이에서 많은 사업장이 문을 닫자 고향 친구들이 일자리를 찾아 아부다비로 이동하고 있다"며 "금융위기 이후 아부다비의 임대료가 비싸져 두바이에서 1시간 반 거리를 출퇴근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지난 10월 두바이에서 아부다비로 둥지를 옮긴 현대건설 이해주 UAE지사장은 "예전엔 주로 유럽·미국업체들이 이곳 공사를 도맡았는데 2007년 말부터 진입한 한국 업체에 대한 인지도·선호도가 최근 많이 향상 됐다"며 "안정적이고 다양한 기회가 있는 아부다비로의 진출이 급증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삼성물산이 시공한 아부다비투자청 본사(좌측)와 아부다비 개발지역인 림아일랜드ⓒ장시복
주 아랍에미리트 한국대사관도 "국부 총 8000억 달러의 막대한 자산과 석유 등 에너지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아부다비 정부는 두바이 쇼크 영향을 충분히 관리할 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보인다"며 "내년 아부다비국영석유공사 (ADNOC), 에미리츠원전공사 (ENEC), 아부다비교통부 (DoT) 등 국내 기업들의 대형 수주 기회는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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