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나는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

최희갑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 | 2009.12.10 09:03
경제학을 업으로 삼는 덕분에 가끔 난감한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경제성장률 전망은 그나마 나은 편이고, 주가나 집값 전망을 물을 때면 당황스러워진다. 가장 곤란한 질문은 경제가 매우 불안해 질 때 나타나곤 하는 화폐개혁에 대한 전망이다.

질문은 어렵지만 답은 간단하다. 결코 그럴 일은 없다고 하는 것이 책임 있는 경제학자의 답변이다. 곤란함을 느끼는 이유는 국민들의 참담한 마음을 일순간에 느끼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한다. 개혁이라 부르지만 사실 화폐교환에 지나지 않는다. 신구화폐 교환비율이 100대 1이므로, 지난 17년간 물가가 최소 100배 이상 상승한 셈이다. 1992년에 있었던 기존 화폐개혁에서 신구화폐의 교환비율이 1대 1이었기 때문이다.

화폐개혁은 안하는 것이 최선이고, 그래도 해야 한다면 불순함이 없어야 한다. 왜 그럴까? 화폐개혁이라는 단어는 격정적이지만 화폐교환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어찌 보면 할 필요가 없다. 기존 화폐에서 0자 두 개를 지우고 거래하면 되기 때문이다. 사실 지울 필요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자고 합의하거나, 0자 두 개를 지운 뒤의 단위를 달리 부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미국식 화폐체계를 떠올리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화폐개혁은 실제 이루어질까? 화폐개혁은 통상 초인플레이션으로 말미암아 기존 화폐에 대한 신뢰가 현저히 손상되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을 때 고정환율제 도입 등의 강력한 디스인플레이션 정책과 더불어 사용된다.

아울러 인플레이션이 과거에 과도하게 발생하여 화폐를 운반하기 곤란하고, 회계 장부를 기록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화폐개혁이 시행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동서독이나 체코, 그리고 EU처럼 국가 간 통합이나 분리 등의 정치적 격변이 발생하여 신화폐 도입 필요성이 생겨날 때 화폐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다.


북한의 경우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한 것도 아니고 화폐체계가 과도한 불편을 초래하고 있는 것도 아니며 더욱이 정치적 격변이 발생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왜 일까?

이유는 과거 한국에 있었던 각각 100대 1, 10대 1의 화폐교환을 시행했던 1953년과 1962년의 두 차례 실패했던 화폐개혁을 보면 알 수 있다. 사실 우리 국민들이 경제불안시 화폐개혁을 떠올리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당시에 있었던 화폐개혁 조치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즉, 우리 정부는 두 경우 모두 시중의 과잉유동성 흡수 또는 퇴장자금의 산업자금화라는 미사여구를 사용했지만 사실 민간 자금의 강제적 국가 헌납이라는 극단적 조치를 담았다. 그러나 헌납실적은 미미하였고 오히려 상질서 마비로 경제경색이 과도하여 결국 정부 스스로 해당 조치를 포기하였다. 북한의 조치는 우리보다 더욱 극단적이지만 과거 우리가 취했던 조치와 닮은 꼴이다.

이번 조치로 북한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까? 우리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민간 자금의 강제환수는 별 성과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1953년의 환수조치는 순조롭게 이루어졌지만 막상 그 금액은 많지 않았고, 1962년에는 결국 정부에서 포기하였다. 일부에서는 화폐개혁조치가 시장 뭉게기에 있다 한다. 시장은 그리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시장 교환이 참여자에게 주는 이득들이 한결같이 크기 때문이다.

런민비제이션 등을 통해 시장은 다시 독버섯(?)처럼 번질 것이다. 한 국가를 가장 손쉽게 교란하는 방법은 화폐체계의 교란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이 북한이 잃는 것이다. 수천년의 중국 왕조사가 이를 잘 대변한다. 과도한 세금에 이은 화폐체계의 붕괴가 정권 말기의 보편적 현상이었다. 금융은 신뢰가 생명이기에 국민들은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고 되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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