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은만큼 베풀어야 '원조 선진국'

머니투데이 여한구 기자 | 2009.12.03 09:06

[당당똑똑코리아-1부]④해외원조 '수혜국→공여국'

지난 11월 26일 새벽 프랑스 파리에서 한국의 외교·경제사에 한 획을 긋게 되는 '낭보'가 날아들었다.

이날 파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본부에서 개최된 개발원조위원회(DAC) 가입심사 특별회의에서 한국은 회원국 전원합의로 DAC 24번째 회원국으로 입성했다. 지구상에서 수혜국에서 원조국으로 전환한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한국이 해외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전환한 것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일제로부터 해방은 됐지만 지구상에서 손꼽히는 가난한 나라인데다 동족상잔의 비극까지 겪어야 했던 한국이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경제적 디딤돌은 누가 뭐래도 해외 원조의 덕이 컸다.

광복 이후 한국이 받은 원조자금은 127억 달러에 이른다. 현재 가치의 원화로 환산하면 70조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액수다. 거기에 우리나라 국민 특유의 부지런함과 "잘 살아보자"는 열정이 더해져 세계 13위의 경제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한국은 DAC 가입국 자격으로 외국으로부터 받았던 도움을 못사는 저개발 국가에 돌려주는 진정한 '공여자'의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선진국클럽'에도 한발 더 다가간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 같은 DAC 가입은 내년 11월로 예정된 세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의 한국 개최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한국 정부가 DAC 가입 신청을 한 때는 올해 1월. G20 정상회의 유치 활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한 직후다. G20 정상회의 개최국으로서의 국제적인 의무와 책임을 다하기 위한 성격이 짙었다.

G20 정상회의 개최를 계기로 국격(國格)의 업그레이드를 꾀하는 한국 정부는 국제사회 리더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충족시킬 필요가 있었다.

한국이 국가적 대사였던 88서울올림픽을 개최를 앞둔 87년에 공적개발원조(ODA) 자금을 최초로 조성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내년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 논의할 주요 의제 중 하나가 빈곤국에 대한 ODA 확대라는 점에서도 ODA 확충은 '시대적 사명'이나 마찬가지다.

정부도 국제무대에서 ODA 확대 의지를 잇달아 강조하고 있다. DAC 가입 확정 이전인 지난달 24일 서울에서 열린 '한·아프리카 포럼'에서는 2012년까지 대 아프리카 ODA 규모를 지난해 대비 2배 이상 늘리는 내용을 담은 '서울선언 2009'를 채택하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24~25일 태국에서 열린 한·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해 "대 아세안 ODA 규모를 2015년까지 지난해(1억5000만 달러)의 2배 이상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한국의 DAC 가입은 자축해야할 일이나 부담도 만만치 않아 치밀한 준비를 필요로 한다.

무엇보다도 유럽의 소국인 벨기에, 스위스 등 보다 적은 ODA 규모를 크게 확대해야 한다. 우선 2015년까지 ODA 규모를 GNI 대비 0.25%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


ODA 총액이 1억 달러 이상이거나 국민순소득(GNI) 대비 0.2%를 넘어야 하는 DAC 회원국 가입 기준에 미달하지만 DAC가 한국의 가입의 선뜻 환영한 것도 이 부분이 작용한 결과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ODA 규모는 8억 달러로 GNI 대비 0.09%에 불과하다. 국민 1인당 ODA 기여도는 DAC 가입국 평균(134달러)에 한참 못미치는 16달러 밖에 안된다.

2015년 0.25%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수출을 통해 어렵게 벌어들인 달러 중 매년 30억 달러 이상을 해외원조에 사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뒤 미국과 300억 달러 규모 통화스와프로 급한 불을 껐던 것을 생각하면 매년 30억 달러는 무시못할 액수다.

무상원조 비율을 현재 68%에서 90%까지 끌어올리고 한국의 경제적 이익과 결부시키는 '구속성 원조' 비율도 현재 75%에서 25%까지 낮춰야 한다. DAC가 강조하고 있는 '받는 나라 중심의 원조'에 부합하기 위해서다.

그렇다고 해서 빈곤국에 무조건적으로 베풀 수만은 없는 게 어쩔 수 없는 경제 현실이다. 국제사회의 리더 자격으로 베푼 만큼 최대한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논의도 그래서 나온다.

전문가들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2008년 기준 한국이 ODA를 지원한 국가는 127개국이나 된다. 국제사회의 의무를 다하면서도 국익에 플러스가 되기 위해서는 개별 국가에 대한 지원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박번순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은 "한국의 개도국 협력에서 비교우위 분야를 발굴하고 수혜의 무역창출형 분야에 특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농어촌 개발지원을 통해 저개발국의 농업분야 투자 및 무역창출 기회를 발굴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한국농어촌공사를 중심으로 탄자니아와 세네갈 등 아프리카 국가에 농지를 조성하면서 기술을 전수하는 방식의 지원도 활발히 모색되고 있기도 하다.

국민들의 '공감대' 형성도 중요하다. "우리나라에도 정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국민들이 많은데, 왜 아까운 돈을 외국에 쓰느냐"는 식의 비판적인 시선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국익 및 국격 향상을 위한 ODA 확대 필요성에 대한 정서적 공유가 뒷받침돼야만 보다 안정적인 ODA 기반 조성이 가능하다.

정부도 이런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ODA 기본법' 제정 논의가 이어져 왔지만 정부 내 이견으로 결실을 보지 못하다 최근에서야 유상원조와 무상원조를 각각 기획재정부와 외교통상부가 책임지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뒤늦은 감이 없지는 않지만 지금보다는 효율적이고 통일적인 정책 추진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G20 준비위원회 관계자는 "독특한 발전경험을 바탕으로 ODA 원조 확대 계획을 잘 활용하면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가교국으로서 G20 정상화의 의제 설정 및 이미지 개선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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