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시장]강호순 사건, 그 뒷 이야기

양진영 변호사 | 2009.11.30 08:01
올 초 군포 여대생 실종사건의 용의자로 강호순이 체포된 후 그가 저지른 그간의 만행이 속속 밝혀짐에 따라 우리 사회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10개월 가까이 시간이 흐르는 동안 강호순은 1.2심 재판부에서 모두 사형선고를 받아 형이 확정됐고 점차 세간의 관심도 멀어졌다. 하지만 아직도 그 여진이 그대로 남아있는 이들이 있으니 다름 아닌 피해자 가족이다.

피해자 가족들은 모두 여덟 가정인데 이들 중 일곱 가정은 공동으로 강호순을 상대로 18억원 상당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본인은 위 사건의 법률대리를 맡으면서 피해자 가족들의 깊은 내상은 이런 사건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함부로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도 쓰라린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 중에는 하나밖에 없는 딸의 장래를 위해 학비 마련 차 모국에 왔다가 변을 당한 후 시신조차 찾지 못한 중국교포의 어머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스무 살 딸을 잃고 두 다리로 어렵게 버티고 있는 어느 가장, 막내딸의 참변으로 온가족이 정신과 치료를 받던 중 설상가상으로 암이 발병한 아버지 등 사연은 너무도 기구했다.

무엇보다 안타까웠던 것은 정작 우리 사회공동체가 이들 피해자 가족들의 슬픔을 위로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그간 피해자 가족들에게는 관할 검찰청 산하 피해자지원센터를 통해 약간의 위로금과 치료비가 지급되기도 하고 사회 일각에서 관심을 보이기도 했으나 그것만으로는 이들의 슬픔을 달래기에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이런 부분을 채우기 위해 피해자 가족들에게 남아있는 사실상의 유일한 구제수단인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서둘러 진행했고 불행 중 다행으로 위 민사소송 건은 최근 모두 승소판결로 확정돼 피해자 가족들은 청구금액을 전액 받게 됐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판결확정 후 금융기관 조회 등을 통해 파악한 강호순의 재산이 초동수사 때 흘러나온 금액과 차이가 컸던 것. 처음 수사기관에서 파악한 강호순의 재산은 상가 2채와 예금채권, 거주지빌라 보증금 및 축사보증금 등을 포함해 7억5000만원 수준이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예금채권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고 집주인들은 강호순과의 임대차계약 사실을 부정하고 나섰다.


이에 예금채권에 대해서는 금융감독위원회 등을 상대로 자산조회 중에 있고 임대차보증금의 반환을 부정하는 건물주 등을 상대로는 일단 추심금청구소송을 제기해 놓은 상태지만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당초 피해자 1가정 당 최소 1억원의 손해배상은 가능할 것이라고 짐작했지만 현실은 여의치 않다.

이번 사건으로 우리는 한 가지 교훈을 얻게 됐다. '희대의 살인마'에게 사형선고를 통해 그 죄를 응징해도 이는 보복적 감정을 충족시키는데 도움이 될 뿐 정작 남겨진 피해자 가족의 구제에는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이번 사건처럼 가해자가 다소나마 재산이 있어 민사소송이라도 해볼 수 있는 것은 정말 다행이다. 가해자가 무일푼일 경우에는 그마저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조두순 사건'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시민들이 자발적 성금모금을 통해 피해자 구제에 나선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고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제 세모가 임박했고 곧 거리 곳곳에서 구세군의 종소리가 울려 퍼질 것이다. 나눔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세상에는 범죄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뿐만 아니라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들이 많다. 하지만 불가항력적인 범죄로 인해 피해를 입은 이들의 고통을 살피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의 몫이다.

강호순 사건으로 '나눔의 문화'가 보다 활성화되고 세분화돼 흉악범죄로 인한 피해자 가족들을 위한 후원성금을 따로 모아 엄격한 심사를 거쳐 이를 지원하는 민간단체의 역할과 기능이 활성화돼야 한다. 또 강호순 사건과 같은 흉악범죄의 경우 사회안전망 구축에 소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해 피해자 가족들의 최소 생계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입법적 노력과 사법부 판단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뜻하지 않은 범죄로 고통 받고 있는 이들에게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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