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재건축, 비리 사슬 못 끊나

머니위크 지영호 기자 | 2009.12.06 10:28

[머니위크]뒷거래 막을 처벌규정 절실

재건축 재개발의 검은 뒷거래가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11월15일 서울 동부지방검찰청은 잠실 재건축 단지를 두달간 기획수사하면서 인허가와 시공업체 선정 과정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조합장 등 9명을 구속기소하고 21명을 불구속기소했다. 또 구청 직원은 조합 설립을 인가해주는 조건으로 조합에서 돈을 받은 혐의로, 경찰은 브로커 역할을 하며 뒷돈을 챙긴 혐의다.

검찰에 따르면 이 아파트 재건축 조합장은 창틀제조업자로부터 6억원을 받은 혐의가 있고, 브로커 및 공무원ㆍ경찰ㆍ감사 등도 1억원 내외의 돈을 챙겼다. 이 외에도 유명 건설사 두 곳이 이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왜 재건축 재개발에는 항상 잡음이 끊이지 않는 것일까?

◆재건축 단지 비리, 피해는 조합원에게

지난해 여름 잠실의 대표적인 재건축단지인 파크리오에서는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일부 조합원이 대의원회의에 참관하려고 했지만 용역직원이 입구 곳곳에 버티고 있어 입장을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들 조합원은 당초 대의원회의에서 조합장의 독단에 반대 의사를 펼 생각이었지만 ‘법보다 가까운 주먹’ 때문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기자가 찾은 지난해 8월 조합원은 몇가지 의혹을 제기했다. 그 중 하나가 조합장과 인테리어업체간의 담합 의혹이었다. 조합원들은 '조합 대의원들이 인테리어업체를 단독으로 선정했는데 오히려 외부의 인테리어를 맡기는 경우보다 견적이 더 나온다'며 '인테리어 시공업체의 폭리에는 조합 대의원과의 뒷거래가 있기 때문'이라고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관련기사: 말 많고 탈 많은 '잠실 파크리오' 왜?>

당시 조합장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공동입찰을 통해 최저가 선정 방식으로 택했다”며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이 같은 보도가 나간 뒤 15개월이 지나서야 검찰은 재건축 조합 비리의 꼬리를 잡고 관련자를 구속 기소했다.

검찰이 추산하는 검은 돈의 규모는 약 28억원. 이 금액이 고스란히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졌을 것이라는 게 검찰의 생각이다.

오른 분양가는 고스란히 조합원들이 부담했다. 가구당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의 추가부담금 중 일부가 검은 돈의 출처다. 관련자 구속으로 상황은 일단락됐지만 피해금액이 조합원에게 환급될지는 미지수다.

◆공공관리제도 돌파구 될까?

재건축 재개발 비리를 막기 위해 서울시는 지난 7월 공공관리제도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공공관리제도는 정비사업이 투명하게 추진되도록 구청장이 지원하는 제도다. 정비사업 추진위원회와 조합, 정비ㆍ철거ㆍ설계ㆍ시공업체의 먹이사슬을 끊어 투명성을 확보하고 공사비를 절감하면서 기간단축까지 이루겠다는 것이 주요 목표다.

공공관리자인 구청장은 재개발ㆍ재건축 진행을 지휘한다. 공개경쟁을 통해 정비업체를 선정하고 주민 선거를 통해 추진위원장과 감사, 위원 선출을 감독한다.


공공관리제도의 가장 뚜렷한 변화는 비용부담 완화다. 사업시행주체에 불법자금이 유입되지 않도록 공공에서 자금을 융자하는 방식이 적용됐다. 또 이전까지는 조합설립 단계에서 내역서 등 세부설계가 작성되지 않아 향후 공사비 증가의 단초가 되기도 한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설계자를 추진위원회 구성 이후 한번만 선정하게 했다. 단순히 ‘평당 얼마’식으로 계약했다가 조합 설립 후 마땅한 근거 없이 평당 가격을 올려 받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다.

이 외에도 서울시는 재건축ㆍ재개발 비리 근절을 위해 클린업시스템을 구축해 추진위원회와 조합의 정보업무공개도 지원하고 있다. 정보공개는 기존 참여업체 선정 계약서나 회의록 등 7개 항목 외에, 월별 자금 유출입 내역, 사업비 변경내역 등 8개 추가항목이 공개돼 있다. <서울시 크린업시스템 http://cleanup.seoul.go.kr>

◆공공관리제도가 낳는 문제점

공공관리자제도는 서울시 주거환경개선정책자문단이 장고 끝에 내놓은 재건축ㆍ재개발 등 정비사업의 프로세스를 변화시킬 중요한 제도지만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도 상당하다.

지난 9월 서울시 의원회관에서 열린 ‘뉴타운 재개발 정책, 변하긴 변하나?’라는 토론회에서 강성균 전국뉴타운 재개발 비대위연합 공동대표는 “재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리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다”며 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송재영 민주노동당 민생본부장 역시 “서울시가 정비업체와 시공사 선정과정에서 사업비를 상세히 공개하겠다고 했지만 이것으로 유착을 막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국토해양부의 재건축 재개발 제도개선과 상충되면서 실효성을 거둘지도 미지수다. 지난 2월부터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으로 지자체가 정비계획 수립비용과 안전진단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주요 내용은 정비기금 및 공공의 융자범위를 확대하는 한편, 기반시설 설치비 국고지원 의무화, 정비업자 부조리 방지, 주민 대표기구 투명성 강화, 추진위 등 자료공개 의무화, 세입자 보호 강화 등이다. 공공관리자제도와 상당부분 겹치는 내용이다. 이 때문에 지자체간 부담금의 차등이 초래되면서 형평성 문제마저 제기되는 상황이다.

현장에서 역시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재개발 관계자에 따르면 이미 공공관리제도 시범구역인 성수나 한남 구역 등지에서 상당부분 로비를 통해 정비업체가 선정됐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또 서울시가 공공관리자제도를 시행했지만 기존의 정비업체를 선택할 때만 금융혜택을 주는 모순된 행동을 한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재임이 실패로 끝난다면 공공관리제도도 함께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오 시장이 지지부진한 뉴타운 사업의 성과를 위해 공공관리제도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판단이라는 해석이다.

‘뉴타운=비리’라는 공식을 깨기 위해 내세운 서울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재개발ㆍ재건축에서 흘러나오는 잡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아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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