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유명한 주가 조작사건인 루보 사건에 김씨도 말려든 것이다. 루보 사건은 제이유그룹 전 부회장 김모씨 형제 등이 2006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코스닥에 상장된 자동차 부품업체 루보를 대상으로 1500억원대 자금과 700여개 차명계좌를 동원해 조직적으로 주가를 조작한 사건이다. 이들이 챙긴 부당이득은 119억여원.
최근에는 '제2의 루보 사건'으로 불리는 주가 조작사건이 적발된 바 있다. 루보 사건을 교과서 삼아 범행을 모의한 작전세력들이 허위 매수주문 등을 통해 코스피업체 주가를 부풀려 시세차익을 챙긴 혐의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란 말은 주식시장의 작전세력들과 이들을 잡으려는 감독기관 간의 물고 물리는 관계를 잘 표현하는 듯하다. 감독기관이 철두철미하게 시장을 감시하며 작전세력들을 잡아내려 하지만 작전의 방식은 갈수록 교묘해져 감시망을 피하고 있다.
과연 작전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이를 진두지휘하는 세력들은 도대체 누구이기에 투자자들을 현혹시켜 큰 손실을 입히는 것일까?
◆고전적 방법 아우른 신종 작전 판쳐
우선 현실거래에 의한 시세조정은 실제로 가격에 개입해 주가를 올리는 것을 의미한다. 고가 주문을 계속 내 주가를 올리면 개인투자자들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이때 세력들은 주식을 팔아버리고 시장에서 빠지는 방식이다.
영어로는 '펌프 앤 덤프'로 표현하기도 한다. 작전의 가장 전형적인 방법이기 때문에 실패할 가능성도 크고, 감독기관에 쉽게 적발된다.
루머에 의한 시세조정은 말 그대로 소문, 공시, 뉴스 등을 이용해 주가를 올리는 방식이다. 근거가 없는 새로운 테마성 사업에 대한 소문을 퍼뜨리는 것으로, 실패한다 해도 세력들 입장에선 비용을 적게 들인다는 이점이 있다. 증거 확보도 쉽지 않은 것이 문제다.
행동에 의한 시세조정은 주가에 호재가 될 만한 기업활동을 실제로 하는 것이다. M&A와 우회상장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관련 기업은 껍데기뿐이다.
이 세가지 방식은 고전적인 작전에 해당된다. 하지만 이젠 이 세가지 방식을 모두 동원한 교묘한 작전이 행해진다는 사실이 문제다.
"최근 작전세력들은 고전적인 세가지 방식을 모두 섞는다. 거기에 인터넷이 가세해 더욱 교묘해지고 있다. 인터넷의 발달로 풍문을 유포하기 수월해졌다. 의도적으로 블로그나 카페를 개설해 활용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최욱 한국거래소 시장감시본부 팀장의 말이다. 그는 "과거에는 회사 내부자와 시세조정 세력이 별개 그룹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내부자와 작전세력이 공식적 또는 비공식적 관계를 형성하곤 한다"며 "상장 폐지 위기에 처한 부실기업에 작전세력이 직접 접근해서 머니게임을 하자고 권유하기까지 한다"고 말했다.
또 최근 횡행하고 있는 방식 중의 하나가 사기적 부정거래다. 실제 거래는 하지 않으면서 허위 공시를 하는 방식으로, 이 역시 인터넷을 통해 루머를 퍼뜨리고 애널리스트들을 매수해 허위보고서까지 작성토록 한다.
최 팀장은 "작전의 수단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개인투자 비중이 높기 때문에 시세조정과 불공정거래에 대한 유혹이 더욱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코스닥의 경우 개인들이 압도적으로 많고, 인터넷 강국인 만큼 루머도 쉽게 노출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도대체 누구냐 넌
그렇다면 거짓으로 주가를 끌어올리고 개인투자자들에게 심각한 금전적 피해를 입히는 작전세력들은 누구인가?
올해 초 개봉한 영화 <작전>을 보면 작전세력의 구성원들이 대략적으로 파악된다. 비록 영화상에는 스토리의 흥미를 높이기 위해 과장된 부분이 있지만, 현실을 반영한 내용임엔 틀림없다는 것이 증권업계 관계자의 평가다.
<작전>의 주요 인물들로는 조직폭력배 두목인 배우 박희순, 증권사 직원 김무열, 방에 감금돼 매집을 담당하는 박용하, 자산관리 전문 김민정 등이다. 현실에서도 이 같은 인물들이 의기투합해 세력을 구성하곤 한다.
그렇다면 영화에서처럼 조직폭력배가 작전에 가담하는 경우도 있을까? 이에 대해 김 대표는 "물론 폭력배들이 참여하는 경우도 많고, 사채업자들과 연합하기도 한다"며 "이들은 작전이 실패해도 타격을 적게 받는다. 미리 빌려준 돈의 두배 이상 회사 주식을 담보로 잡아놓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영화에서처럼 매집을 전담하는 멤버가 있는 것도 맞다. 다만 혼자 하기보단 여러명의 아르바이트 요원들이 참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이어 "이는 IP가 추적되므로 추적을 어렵게 하기 위해서이고, 장소도 여러곳에 흩어지는 게 일반적이다"고 덧붙였다.
특히 작전세력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비밀과 의리를 끝까지 지키는 것이다. 단 한명이라도 배신하면 작전은 실패로 돌아간다.
김 대표는 "작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계획이 정해져 있고 철저하게 계획에 따라 움직인다"며 "작전은 부인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일반인들이 알았을 때는 쓰레기 정보가 된다. 특히 작전 실패의 대표적 원인은 구성원 간의 배신이다"고 설명했다.
비록 믿음을 바탕으로 조직됐지만 구성원들은 서로를 감시하기 위해 항상 상호간에 계좌를 검사할 정도다. 김 대표는 "만약 함께 모여 저녁식사를 하는 날 한명이 참석하지 않으면 배신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며 "이런 경우 한명씩 세력에서 빠져나가 배신을 하게 되고, 작전은 물거품이 된다"고 말했다.
물론 세력을 구성하는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다. 최욱 팀장은 "과거에는 학교 동문, 고향 선후배 등 인적 네트워크로 조직이 구성되곤 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인적 네트워크가 없는 사람들이 힘을 모으기도 한다"고 말했다.
◆작전세력을 잡아라
거래소와 금융감독원은 주식시장에서 활개 치는 작전세력들을 적발하기 위해 항상 감시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거래소는 공정한 가격을 형성하도록 유도하는 자율규제 기관으로 회원사의 위법 사실이 적발될 경우 공적감독기관인 금감원에 이 사실을 통보한다. 이어 금감원이 세부조사를 실시하고 증권선물위원회 의결을 거쳐 사건이 검찰에 이첩된다.
작전세력을 적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비록 거래소는 작전세력을 최종적으로 처벌할 수 없지만 규제비용의 효율성을 위해 금감원에 앞서 감시 및 1차 조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거래소의 시장감시부는 해당 종목을 찾는 역할을 맡는다. 시장심리부는 감시부에서 넘긴 종목을 심층 분석하고 인적사항 및 거래내역 등을 파악하는 게 주요 업무다.
최욱 팀장은 "작전을 감시하기 위한 시스템 MOSS를 통해 거래 의심 종목을 자동으로 적출하고 있다"며 "시스템에서 신호를 보내면 세부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금감원은 작전 제보자, 소위 '작파라치'에게 포상금을 지급하는 제도도 마련했다. 미공개정보 이용, 시세조종 등 증권불공정거래행위를 문서나 우편, 팩스, 인터넷 등을 통해 신고 내용을 입증해 제보하면 된다. 시장에 미치는 영향과 신고의 구체성 등을 감안해 최대 1억원 범위 안에서 포상금을 받을 수 있다.
다만 감독기관의 철저한 감시에도 불구하고 주식시장에는 늘 작전세력들이 존재한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투자자들 스스로 작전에 현혹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일이다.
김정환 대표는 "아무리 사전에 막고 법적으로 처벌한다 해도 작전은 끝없이 지능화 된다"며 "너무도 비밀스럽게 진행되는 작전을 100% 사전에 감시하긴 현실적으로 어려우므로 투자자들 스스로 작전주에 현혹되지 않는 게 최고의 방책이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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