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시장의 재개발 빛과 그림자

지영호 기자 | 2009.11.20 10:38

[머니위크 커버]시장1번지 '청계천 재테크'/황학동 재개발

청계천변을 물 흐르는 방향으로 따라가다 보면 휘황찬란한 동대문의 간판들을 뒤로하고 마지막 대형 상권인 황학동과 마주하게 된다.

청계천을 따라 봤던 도시경관과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면 일단 당신의 관찰능력은 합격점을 받을 만하다. 지금까지 봤던 경관이 대부분 새로운 물건들로 채워진 반면 이곳은 중고물품만 취급하기 때문에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고전하는 롯데캐슬 베네치아

자잘하고 허름한 건물들 한가운데 갑자기 메머드급 빌딩이 솟아있다. 지난해 완공한 롯데캐슬 베네치아다. 모두 1870가구와 338개 점포를 수용하는 메머드급 주상복합 건물이다. 상가 자체만으로도 13만㎡로 코엑스몰보다 넓다.

지난해 잠실 트리지움과 함께 국내 상가시장의 최대 이슈로 떠올랐던 상가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아파트 분양은 그런대로 성적을 냈지만 상가 분양은 극히 저조해 비어있는 점포가 상당하다.

대형 상권에 입점한다는 이마트마저도 이곳에서 고전 중이다. 막강한 배후세대를 뒀음에도 불구하고 별로 좋지 않은 교통환경과 상권이 형성되지 않은 탓에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공실이 많은 이유는 높은 임대료가 가장 큰 원인이다. 롯데캐슬이 상권 내 일부 상인들을 흡수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상인들은 인근 상권으로 자리를 옮기거나 값싼 지역으로 새로운 상권을 형성했다.

그나마 분양률이 좋은 아파트 역시 지역민과는 거리가 멀다. 인근 중개업소에 따르면 대다수의 아파트 주인은 임대수익을 노리는 외지사람이다. 유난히 이곳에 전세가 많다는 것이 그 증거다. 하물며 세 들어 사는 사람 역시 외지 사람이 대다수라는 것이 중개업소의 공통된 의견이다.

◆제2의 황학동 재개발을 보는 시선

25년을 끌었던 황학동 재개발사업은 롯데캐슬 베네치아의 완공으로 대세를 잡았지만 아직도 변수가 많다.

추가 개발에 대한 지역민들의 시각은 절반으로 나뉜다. 개발을 원하는 쪽과 그렇지 않은 쪽이다. 개발을 원하는 쪽은 주로 주택을 보유한 사람들이다. 재개발을 추진하는 동안 집값 상승이 기대되는 까닭이다.

반면 반대하는 쪽은 주로 건물을 가지고 있는 임대업자나 주변 상인이다. 임대업자는 중앙시장이 살아나면서 주변 건물주들은 충분히 임대수익을 내고 있는데 굳이 개발을 할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이다.

상인들 역시 재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는 것을 원치 않는다. 25년을 염원했던 재개발이 완료됐지만 유령도시의 상징과 같은 결과물이 나온 것도 재개발을 곱게 보지 않는 이유다.


현재 황학동에는 남은 지역을 두고 크게 두그룹에서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중앙시장 미곡부(쌀가게) 밀집지역 약 1만~1만3000㎡을 개발하겠다는 곳과, 시장 전체인 약 6만6000㎡를 개발하는 그룹이 서로 세를 불리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과 상인들은 황학동 재개발 선행학습 때문인지 짐짓 느긋하다. 내가 죽기 전에 되겠느냐는 입장인 셈이다.

청계천변에 위치해 사업성이 높아 보이는 롯데캐슬 서쪽의 중고시장 밀집지역은 재개발 대상에서 사실상 빠진 상태다. 측량이 불가능할 정도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송세영 황학동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은 "재개발을 하겠다고 몇곳이 달려들었지만 모두 두손 들고 나갔던 지역"이라며 "황학동 일대가 전부 상업지역이다보니 개발업자의 눈길이 다른 곳으로 쏠리는 듯하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중고 만물상, 도깨비도 있다

황학동 하면 떠오르는 것이 중고시장이다. 우리나라 중고물품시장의 원조 격인 황학동 중고시장의 다른 이름은 벼룩시장, 혹은 도깨비시장이다. 벼룩시장은 전국을 벼룩이 뛰어다니듯 돌아다니며 희귀 물건을 구해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도깨비시장은 도깨비가 나올법한 오래된 물건이 많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굳이 청계천변에서 비슷한 이미지를 찾으라면 청계5~6가의 중고 책방 정도다. 하지만 황학동이라는 이름이 갖는 강력한 냄새는 중고 분위기에 힘을 싣는다. 후줄근한 점퍼 차림이 잘 어울리는 아저씨나 목도리를 아무렇게나 둘러 멘 아주머니들이 감초처럼 거리에 더해지면 황학동의 풍경이 완성된다.

황학동에 들어서면 일단 만물상 분위기가 난다. 청계8가부터 시작되는 황학동 벼룩시장의 거리 노점에는 옛날 고향집에서나 봤을 법한 물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호롱불, 절구, 맷돌은 흔한 아이템이다. 연대를 짐작키 어려운 고풍스런 느낌의 목재 장식물이나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주인을 기다린다.

전라도에서 올라온 빨랫방망이와 강원도 학생이 쓰던 1985년도식 전자기타가 이웃으로 자리하기도 하고, 대학 연구실에서 나왔을 법한 나비 표본과 강남 아주머니가 1년도 채 쓰지 않고 내놓은 드럼 세탁기가 같은 상인에 의해 판매되기도 한다.

노점이 아닌 점포에는 전자제품이 줄을 잇는다. 수십개의 TV가 백화점 전자제품 전시장처럼 똑같은 방송을 내보내지만 보이는 색감은 제각각이다. 약간 누런 놈, 흐린 놈, 선명한 놈 등 살아온 세월에 따라 다른 색을 쏘아낸다. 지금은 쓰지 않는 호출기나 필름카메라, 구식 전화기 등이 자기들도 가전제품이랍시고 TV와 마주한 채 힘을 겨룬다.

당초 황학동 벼룩시장은 삼일아파트를 따라 청계8가까지 이어졌다. 재개발이 결정 된 뒤로는 숭인동 벼룩시장 등지로 흩어지며 꼬리가 끊어졌다. 이 때문인지 주변 상권은 웅크린 모양새다. 그나마 골목으로 주방용품 등 식기자재용품과 곱창집이 예전의 명성을 잇고 있을 뿐이다.

골목 남쪽 끝자락으로는 황학동의 명물 서울중앙시장이 버티고 있다. 재래시장이지만 이곳의 분위기는 상당히 활기차다. 재래시장 활성화대책의 일환으로 현대화사업이 추진되면서 상권이 다시 살아났다.

방향을 틀어 다시 곱창골목 동쪽으로 진입하면 고지대가 나온다. 슬럼화된 주택가다. 두사람이 나란히 걷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좁은 골목길을 지나다 보면 아까 마주했던 거대한 롯데캐슬이 시야를 가린다. 인근에서 높이를 견줄만한 건물은 멀리 동묘역에 위치한 롯데캐슬 천지인뿐이다. 절묘하게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고 있는 롯데의 위력 앞에 누군가에겐 꿈이자 누군가에겐 절망인 재개발이라는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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