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의 시장들, "없는 게 없다"

글ㆍ이정흔 기자, 사진ㆍ선승표 기자  | 2009.11.17 10:02

[머니위크 커버]대한민국 시장 1번지 '청계천 재테크'/르포

대한민국 시장 1번지. 서울의 한복판, 종로구와 중구를 흐르는 청계천을 따라가다 보면 세운상가며 광장시장, 평화시장 등 우리의 대표적인 재래시장들을 모두 만나게 된다.

한때 이곳에선 “인공위성도 만든다”고 했었다. 어디 인공위성뿐인가. 비행기며 탱크까지 이곳에선 못 만드는 게 없었다. 하물며 도깨비 뿔, 고양이 뿔도 이곳에선 만들어내서 팔 수 있다고 했으니 그야말로 하늘 아래 없는 게 없었다. 그러니 옷 장사든 음식 장사든 대한민국에서 장사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이곳을 찾는다. '시장을 위한 시장'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운동화 끈을 조이고 청계광장(소라 광장)에서부터 청계천을 따라가 본다. 흘러가는 물길을 따라 시장 풍경이 함께 흘러간다. 그곳에선 사람도 흐르고 시간도 흐른다.

◆‘대한민국 전자기기의 메카’ 세운상가ㆍ대림상가

갈대며 억새가 가을바람에 기분 좋게 흔들리는 청계천 길을 따라 동쪽으로 걷다 보면 처음으로 만나는 시장. 청계천 관수교와 세운교, 배오개다리까지 이어지는 길을 따라 남쪽엔 대림상가, 북쪽엔 종로세운상가가 자리 잡고 있다.

세운상가를 둘러보기 위해 청계천 다리로 올라서자 화려한 네온사인이 눈을 먼저 자극한다. 양쪽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조명가게 유리창을 통해 뿜어져 나오는 각양각색의 조명 불빛이 화려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화려한 겉모습(?) 과는 다르게 40년의 세월을 품은 상가 안쪽 골목은 어둑어둑한 모습이다. 미로와 같이 얽히고설킨 골목을 따라 가다 보면 길을 잃기 십상이지만, 그 또한 예상치 못한 물건과 만나는 재미가 쏠쏠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세운상가 내 전자상가들

대부분이 조명가게인 청계천 대로변과 달리 상가 안쪽으로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면 각종 방송 음향시설과 무대장치 등이 눈에 띈다. 완성품에서부터 작은 나사와 같은 부품까지 모든 제품을 취급한다. '위치추적장치, 도청기, 몰카 탐지기, 도박 장비' 낡은 계단마다 이와 같은 간판을 발견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가격은 물론 제품 따라, 품질 따라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소매보다는 도매업자를 주로 상대하는 이곳은 시중가보다 20~30% 저렴한 도매가격에 물건이 거래되는 것이 기본이다.

이곳에서 조명가게를 운영한 지 4년 정도 됐다는 한 사장은 “주로 인테리어 전문가들이나 무대 연출을 전공하는 학생들, 또 나이트클럽과 같은 특수조명이 필요한 업체들이 주요 손님인데 요즘엔 그마저도 손님이 30%가량 줄었다”고 한숨 섞인 얘기를 한다. 경기가 가라앉으면서 인테리어업자들조차 일이 줄어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세간에는 셀프 인테리어 등이 유행하면서 인테리어업자를 통하지 않고 직접 조명기기를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아직까지는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다”고 전했다. 그는 “가끔 소매로 물건을 찾는 손님들도 대부분 발품을 많이 팔고 오기 때문에 가격을 더 많이 받지 못한다"며 "도매업자와 똑같이 디자인을 선택하면 공장에서 물건을 주문하면 된다. 다만 시공은 별도로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포장재, 스폰지, 천 등은 방산시장ㆍ광장시장

화려한 조명이 눈부신 길을 따라 걸어 내려오면 이번에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차이는 간판에서부터 나타난다.

'행가 포리백, 큐방, 인쇄가공전문' '벨크로, 도무송' '비니루, 비닐접착제' '작크, 액세서리'

비닐에 접착제를 사용하는 비닐 포장 백은 ‘포리백’, 작은 공기 방울들로 일명 뽁뽁이라 불리는 비닐 포장재는 ‘큐방’, 박스와 같은 포장에 사용하는 기술은 ‘도무송’ 등 모두 비닐 포장재에 쓰이는 용어다.
↑방산시장

세운상가 바로 동쪽 편에 자리하고 있는 방산시장과 광장시장. 남쪽의 방산시장은 비닐, 천 등을 원자재로 하는 포장, 인쇄, 광고물 등을 주로 만날 수 있다. 카펫, 벽지, 레이스 천 등 비닐과 천으로 만든 모든 물건을 판매하는 곳이다.


방산시장을 지나 청계천 다리를 건너 광장시장으로 넘어가니 마네킹가게부터 눈에 들어온다. 한복, 커튼, 맞춤양복 등의 직물류나 의류 상품을 주로 취급하는 이곳에서는 마네킹부터 원감, 완성된 옷까지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다. 물론 가격은 마찬가지로 시가보다 20~30% 낮게 책정된 도매가다.
↑광장시장

밝은 바탕의 곱디고운 한복점을 지나가다 가격을 물어 보니 주인의 대답이 “한벌을 완성할 수 있는 원단이 재단돼서 나오는 데 도매가격이 6만원”이란다. 여기서 나간 한복 원단이 시중에서는 10만원대 정도에 팔린다고. 한복, 이불, 폐백음식 등 혼수에 필요한 물건들이 모두 여기 모여 있는 것 같다. 모두 시중가보다는 20~30% 정도 낮은 가격에 물건을 구입할 수 있다.

먹자골목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명물 거리다. 오후 6시면 문을 닫는 다른 곳과 달리 이곳은 새벽 2시까지 환하게 불을 밝힌다. 때로는 가이드도 되어 주고 말벗도 되어주는 식당 아줌마들의 환한 웃음에 정이 담뿍 묻어나는 곳이다.

◆패션의 중심 동대문시장ㆍ평화시장

↑평화시장 초입에 있는 전태일 동상
먹자골목에서 배를 두둑하게 채우고 다시 길을 나서면 전태일 동상이 있는 버들다리(전태일 다리)를 중심으로 북쪽 편엔 단추, 레이스 장식, 원단 등을 판매하는 동대문종합시장상가와 갖가지 신발을 싼값에 만날 수 있는 동대문종합신발상가, 또 남쪽 편으로는 평화시장, 신평화, 청평화, 동평화시장이 펼쳐진다. 그 뒤쪽으로는 덕운상가, 광희시장, 책방 골목으로 유명한 평창시장 등 재래시장이 밀집돼 있어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디자이너들, 소규모의 옷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까지 대한민국에서 패션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어야 하는 곳 인만큼 이곳에 들어서면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진다. 멋쟁이 아가씨들이 한손 가득 짐을 들고 바쁜 걸음으로 총총 거리는 모습이 곧잘 눈에 띄고, 액세서리와 원단에 쓰이는 화려한 장식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A, B, C, D동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패션 쇼핑몰인 동대문종합상가에서는 국내에 있는 모든 종류의 원단과 최신 패션 상품을 만날 수 있다. 도매로 거래되는 이곳 원단 가격은 시중가의 절반 정도. 쇼핑을 하다 비즈나 목걸이 장식품 등을 그 자리에서 직접 골라 싼값에 개성 있는 액세서리를 얻는 것도 가능하다.

1979년 문을 연 이후 줄곧 패션의 메카를 지켜 온 평화시장은 청계천을 따라 길게 흐르듯 건물이 서 있다. 2~3층은 여성복을 주로 취급하는 데 아줌마 패션의 모든 것이 집결된 듯한 느낌. 남성복을 주로 취급하는 3층은 경기 탓인지 문을 닫은 곳이 많고 썰렁한 모습이다. 신평화시장 1층에는 속옷가게, 동평화시장에는 국내 유명브랜드의 덤핑매장들이 많다. 광희시장은 가죽 전문시장으로 유명해 일본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

◆'음식 장사하려면 이곳에서 원스톱 서비스' 황학시장ㆍ중앙시장

동대문신발상가를 지나 동쪽으로 내려가면 예상치 못한 품목이 나온다. 청계천 북쪽 편 길가에 수족관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큰 도로 변으로는 수족관에 다양한 수족어류를 판매하는 가게들이 보이고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수족관에 필요한 설치 기구와 해수어 등의 희귀 품종을 취급하는 곳도 간간이 눈에 띈다. 그 뒤쪽으로는 문구시장이 형성돼 있다. 문구점을 운영하는 이들이 도매로 물건을 떼러 오는 이곳은 각종 학용품과 장난감 등이 판매된다.

이곳에서 조금 더 동쪽으로 길을 잡으면 다양한 중고 물품과 골동품 등을 판매하는 동묘 벼룩시장이 나온다. 이곳에선 1000원으로도 호사를 누릴 수 있다. 길거리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물건들을 구경하다 운만 좋으면 꽤 괜찮은 장식품, 기타, 옷, 신발 등을 단돈 1000원 안팎의 가격에 건질 수 있다.

롯데캐슬베네치아 근처의 숭인상가에서는 파이프, 배관 시설 등을 싼값에 구입할 수 있고, 그 아래쪽으로 한참 걷다 보면 서울풍물시장이 이어진다. 각종 특산물과 골동품을 거래하는 이곳은 마치 전시장에라도 온 듯한 느낌이다. 각각의 부스마다 타임머신을 타고 건너온 듯한 70~80년대의 낡은 재봉틀에서부터 세월이 고스란히 묻은 부처 불상까지, 다양한 소품들을 싼 가격에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동묘 벼룩시장에서 청계천 다리를 건너 롯데캐슬 뒤편으로는 각종 가구와 냉장고, 조리대 등 외식 기기 등을 판매한다. 식당을 개업하거나 음식장사를 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기기들을 이곳에서 찾을 수 있다.
↑중앙시장

동남쪽으로 길을 따라 조금 더 걷다 보면 깊숙이 들어간 곳에 서울 중앙시장이 보인다. '포장마자 맞춤 주문' '싱크대' '뚝배기, 냄비' 등의 주방전문상가들을 따라 들어가면 각종 먹거리들을 판매하는 시장의 중심지를 만난다. 여느 재래시장의 풍경처럼 장바구니를 잔뜩 든 아주머니들이 흥정하는 모습이 보이고, 식당을 운영하는 이들은 한짐 가득 장을 봐서 돌아가는 모습도 눈에 띈다. 큰길 사이사이에 보이는 골목길은 순대, 곱창 등의 원부자재를 취급하는 곳이다. 조금은 살풍경한 모습이 펼쳐지는 거리지만 대한민국의 식당들이 이곳에서 나온 음식을 재료로 삼아 식탁에 내놓는다고 생각하니 그 또한 달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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