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盧 틀 속 치고받는 與與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 2009.11.05 15:30
세종시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작품이다. 2002년 9월 민주당 대선 후보 공약으로 발표했다. 국토균형발전이란 대의에 실리로는 충청민심을 뀄다. 같은 해 12월 대선,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에 앞선 57만표 가운데 25만표가 충청도에서 갈렸다. 세종시가 노 전 대통령의 표현대로 '대못'이 된 순간이다.

한나라당이 받은 충격은 컸다. 대선 당시 한나라당은 현실성 없는 방안이라고 반대했다. 승리를 확신했던 탓도 적잖았다. 충청표심에 대한 우려는 이듬해 수도이전특별법 국회 합의 통과로 나타났다. 당 지도부는 반대 의원을 만나 일일이 설득했다. 찬성 167표, 반대 13표, 기권 14표. 총선을 4개월여 앞둔 때였다.

수도이전특별법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으로 결정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서둘러 지금의 세종시 원안을 내자 박근혜 전 대표 등 한나라당 지도부는 2005년 2월 법안 처리에 합의했다. 다시 1년 뒤엔 지방선거가 있었다. 법은 찬성 158표, 반대 15표, 기권 4표로 통과됐다.

한나라당이 친이(친이명박)·친박(친박근혜)으로 갈리기 시작한 게 이 무렵이었다. 당 지도부의 세종시법 처리 합의 결정에 수도권 의원들과 비주류가 반발했다. 안상수·이재오·전재희 의원이 농성에 들어갔다. 중심엔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명박 대통령이 있었다. 언론에선 같은 해 여름이 지나면서 '친이·친박'이란 용어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막상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자 세종시는 큰 현안이 못 됐다. 이슈는 한반도 대운하와 BBK 의혹으로 넘어갔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고도 세종시 문제는 잠잠한 편이었다.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은 지난 7월 국회 행정안전위 법안소위에서 세종시를 특별자치시로 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논란에 다시 불을 붙인 이는 정운찬 국무총리였다. 정 총리는 지난 9월 총리 지명을 수락하며 수정론을 폈다. 정치권은 "세종시가 유령도시가 되지 않게 하려면 교육·과학·기업 등 자족기능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정 총리의 발언에 주목했다. 이 대통령이 4년 전 세종시법 처리에 반대하며 낸 대안과 닮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대통령은 지난 4일 정 총리로부터 세종시 수정안 로드맵을 보고받으며 수정 불가피론을 공식화했다.

친이계의 고민은 역시 충청민심이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참패하면 대통령 임기 후반 조기 레임덕에 시달릴 수 있다. 노무현 정부가 그랬다. "세종시가 안 되면 혁신도시도 좌초될 것"이란 비판도 날카롭다. 10개 혁신도시는 전국 지방민심이 달린 문제다. 충청도에 국한된 세종시에 비할 게 아니다. 국토균형발전이란 대의와도 맞닿아 있다. 모두 노 전 대통령이 엮어놓은 틀이다.

친박계는 이 점을 파고든다. 박 전 대표는 "국민과의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원칙도 더한다. 친박 유정복 의원은 4일 라디오 방송에서 "여권 일각에서 세종시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치자는 것은 법과 약속을 지키는 것이 좋은가 안 지키는 것이 좋은가를 묻는 투표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야당과의 승부 이전에 집안 교통정리부터 마쳐야 할 한나라당이다. 충청민심이 등을 돌리면 당내 승부도 장담하기 어렵다. 일단 꺼내든 '칼'을 성과 없이 집어넣을 수도 없다. 친이계 일각에서 "노무현 프레임에 갇혔다"는 하소연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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