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만원에 '빨간 줄' 택한 가짜 오락실 사장

머니투데이 변휘 기자 | 2009.10.04 09:00
자신의 죄를 채무자에게 덧씌우려 했던 불법오락실 업주와 생활고로 인해 가짜 범인을 택했던 채무자의 엇갈린 운명을 공판검사의 끈기 있는 수사가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부장 김학석)는 4일 채무자인 김모(37)씨를 빚 탕감을 미끼로 불법 게임장 업주로 대신 재판받게 한 혐의(범인도피교사죄) 등으로 안모(52)씨를 구속 기소했다.

공판부 소속이던 호승진 검사가 사건을 맡게 된 것은 지난 7월이다. 2008년 8월 서울 종로구에서 불법 오락실을 운영한 사건의 공소 유지를 맡은 것이다. 오락실 단속 현장에서 업주를 붙잡는 경우는 드물다. 게임기를 압수하면 나중에 업주가 출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김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호 검사는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단속 때 붙잡힌 종업원들과 김씨의 진술이 엇갈렸다. 오락기 구입 경위에 대해 김씨는 "잘 아는 안씨가 다 해줬다"고 얼버무렸고 안씨의 연락처와 소재를 묻자 "단속 이후로 연락이 끊겼다"고 버텼다.

호 검사는 가짜 범인을 수사기관에 출두시키는 이른바 '총대사범'을 의심했다. 김씨와 진범이 재판 상황을 논의할 가능성에 착안, 통화내역을 조회했고 재판일마다 통화를 나눈 전화번호의 주인 안씨를 찾아냈다.

안씨는 "김씨가 내게 빚이 있다. 앙금을 품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씨도 "내가 나빴다"며 말을 바꿨다. 수사가 난항에 빠졌다. 호 검사는 "공판 검사 신분으로 직무 외의 일을 너무 좇는 것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공판 검사는 기소 사건의 공소유지가 첫 번째 임무다.

인사이동이 호재로 작용했다. 호 검사는 8월 형사8부로 옮기며 수사를 본격화했다. 김씨에게 오락실이 있던 건물의 임대차계약서를 제출받고 건물 주인의 것과 대조했다. 임대인의 이름이 달랐다. 김씨의 계약서는 위조된 것이었다.


결국 김씨는 실토했다. 김씨는 소규모 봉제공장을 운영했지만 경기침체로 파산했고 8년째 신용불량자였다. 김씨는 "대신 재판을 받으면 안씨가 빚 120만 원을 탕감하고 추가로 300만원을 주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안씨는 집행유예 기간 단속되면 구속될 것을 우려해 김씨를 포섭, 임대차계약서까지 위조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초범이기 때문에 적발돼도 벌금형 정도"라며 설득했다.

호 검사는 "120만원 때문에 범죄자가 되겠다는 것이냐"고 다그쳤지만 김씨는 "너무 힘들었다"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김씨의 아내도 사실을 알았지만 말리지 못했다.

검찰에 따르면, 최근 경제 한파의 영향으로 총대사범은 날로 증가하고 있다. 신용불량자나 노숙자들을 모집해 총대사범으로 공급하는 조직도 성행하고 있다.

호 검사는 "생활고로 범죄자를 선택한 김씨도 안타깝지만, 몰래 웃는 진범을 용서할 수 없었다"며 "돈이면 형사처벌을 대신할 사람도 구할 수 있다는 생각에 경종을 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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