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들이 아이돌 콘서트장에 간 이유는

머니위크 이정흔 기자 | 2009.10.28 10:55

[머니위크]젊은 오빠ㆍ젊은 언니로 살기/ 아줌마 팬클럽

“하이루~울 누님들~^^ 애들 학교 가자마자 열투(열심 투표. 취재 당시 코리아드라마페스티벌에서 탤런트 이민호가 인기상 후보에 올라 인기투표 중이었다)때문에 일찍 왔네요. 눈 코 뜰 새 없는 하루하루지만 조금씩 시간 내어 힘 보탤 수 있을 때까지 오늘도 파이팅! ㅋㅋ 모두 ‘KIN’(옆으로 뒤집어 보면 ‘즐’이라는 글자가 된다)건 하루 보내세요~!”

자연스러운 인터넷 용어에 까르르 웃음소리라도 들릴 듯한 톡톡 튀는 말투까지. 마치 여고생들의 수다 떠는 모습 같은 이 경쾌한 수다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다음카페의 이민호 팬클럽 ‘데이브’에 따로 마련돼 있는 ‘누님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누님 게시판'은 말 그대로 3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의 ‘누님팬’들이 집결하는 곳.

나이차만 아래로 12살에서 많게는 30살까지, 아들 같고 막내 동생 같은 스타에게 빠져있는 이들을 '아줌마의 주책'이라고만 얘기한다면 섭섭한 말씀. 바로 그 스타 한사람으로 인해 예전과는 다른 젊음을 얻었다고 말하는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자.

◆예뻐 보이고 싶어서 더 열심히 꾸미죠

초등학교 4학년 딸과 3학년 아들을 둔 주부 김정아(37) 씨. <꽃보다 남자>에서 구준표 역할을 맡았던 탤런트 이민호의 팬인 그는 이민호 팬 사인회라도 있는 날이면 3일 전부터 분주해진다. 마사지클럽에 다니며 얼굴 관리를 받고, 어떤 옷을 입을까 고민하느라 옷장 앞에서 하루 종일 고민한다. 데이트에 나서기 전, 콩닥콩닥 거리는 마음을 애써 누르며 치장을 하는 소녀의 마음이 이와 같을까.

“저랑 민호군 나이 차이가 14살이에요. 그런데도 민호군 앞에 서면 막 설레고 두근거리고. 왜,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면 더 예뻐 보이고 싶은 게 여자 마음이잖아요. 민호군 앞에서는 말도 더 예쁘게 하려고 내숭도 떨고, 옷도 조금 더 예쁘게 입으려고 신경 쓰게 되고. 하하.” 앞으로도 ‘아줌마 몸매(?)’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운동이나 몸매 관리를 더 열심히 할 거라며 다짐하는 김씨의 목소리에 애교가 넘친다.

SS501의 멤버 김현중을 좋아하는 윤도원(42) 씨 역시 과감한 패션으로 팬들 사이에서 이슈를 불러일으키곤 한다. 고등학교 2학년 아들을 둔 엄마로 개인사업을 운영하는 활동파 주부인 그는 나이답지 않게(?) 찢어진 청바지나 최신 유행 옷차림을 즐겨 입는다고.

“팬클럽 활동을 하다 보면 워낙 어린 아이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다 보니 나이를 잊고 가끔 주책(?)을 떨죠. 애들이 오히려 놀라면 제가 그래요. 더 나이 들기 전에 나도 입고 싶은 옷 마음껏 입어 보자고. 그러니 회사에서도 가끔 제 패션감각에 직원들이 놀랄 때가 많죠.”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 사춘기 소녀로 돌아간 것 같아요

누군가 예뻐 보이고 싶은 상대가 있고, 그 사람에게 예뻐 보이기 위해 자신을 꾸미는 게 행복하다는 열혈 누님들. 이들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외모를 가꾸게 된 이유는 단 하나, 이제 막 짝사랑을 시작한 사춘기 소녀 같은 설렘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윤도원 씨가 조금은 특별한 자신의 사연을 들려준다. 윤씨가 SS501의 팬이 된 것은 4년 전쯤. 척추에 대수술을 받으며 병원에 누워 있을 당시 옆 침대를 쓰던 앳된 아가씨가 좋아하는 스타라며 사진을 같이 찾아 보다 같은 팬이 된 것이다.

“병실에만 누워 있다 보니 좋아하는 사람을 직접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어요. 2년 전쯤인가 처음으로 팬클럽에 가입하고 현중 오빠, 맞다 우리는 나이 불문하고 모두 호칭을 오빠라고 통일해서 써요. 하하, 현중 오빠를 보러 갔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따라 다닐 수 있을 때 마음껏 따라다니겠다고 말했죠. 처음엔 휠체어 타고 다녔는데 지금은 걸어 다니잖아요.”

직장에서 잔뜩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어도, 가정주부로 당연히 겪어야 하는 살림 고민도 ‘현중 오빠’가 자기를 알아봐 주고 “오랜만이네요?” 간단한 인사 한마디 해주면 스르르 녹아버린다는 윤씨. 단 1분, 불과 몇마디지만 좋아하는 사람과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눌 때의 그 설렘이 윤씨의 건강 비결이자 젊음의 비결인 셈이다.

울산에서 초등학교 3학년과 7살 두 아들을 둔 주부 박미나(35) 씨는 탤런트 이민호의 팬 카페 활동을 시작하며 “신세계를 만난 것 같다”고 표현했다. 박씨는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연애를 시작한 첫사랑과 결혼에 골인, 졸업 후 1년간의 짧은 직장생활을 빼면 10년 가까이 가정주부로 살아왔다.

“고등학교 때도 스타를 좋아해서 쫓아다녀 본 적이 없어요. 팬 카페에 가입하고 사인회에 가서 직접 보는데 머리가 새하얘지고 가슴이 쿵쾅거리고. '나에게도 아직 이런 사춘기 소녀 같은 모습이 있구나'라는 게 저한텐 너무 큰 발견이었거든요. 지금은 제 모습에 주변 사람들이 더 놀래요.”


물론 처음에는 그런 박씨의 모습에 남편의 질투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남편이 더욱 적극적인 협조를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 박씨의 설명. “우리 민호 덕분에 남편에게도 좋은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는 의외의 답변이 돌아온다.

“누구 엄마, 누구 아내가 아니라 ‘박미나’라는 내 이름을 다시 찾은 것 같은 느낌이 있어요. 예전에 남편만 바라보던 때 보다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잔소리도 많이 줄고, 훨씬 활기차고 밝아지니까 남편도 그게 좋은가 봐요. 요즘엔 저 팬 사인회 마음 편하게 다녀오라고 자진해서 애들을 봐주기도 하고.”

◆처음 하는 일이 많아졌어요

박씨는 “민호군 때문에 처음 하게 된 일도 많아졌다”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가정주부 생활하면서 카페라는 걸 가입해 본 게 처음이었어요. 민호 군 예쁜 사진이 있으면 와서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싶고, 글도 쓰고 싶잖아요. 사진 편집하는 것에서부터 카페 활동하면서 새로 배운 게 많아요. 인터넷 용어도 물론이고요. 하하”

30년 넘는 인생을 살면서 처음으로 밤을 새워 줄서기 전투(?)에 나서본 것도 잊지 못할 경험이다. 요즘에는 스타의 팬 사인회가 있으면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미리 순서를 매긴 번호표를 나누어 준다. 이 번호표를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이 그야말로 치열하다. 저녁부터 와서 밤을 새는 일도 다반사다.

“똑같은 팬인데 나이 많은 누님 팬이라고 봐주는 거 아니잖아요. 우리도 똑같이 밤새고, 똑같이 기다리고 힘들게 얼굴 한번 보는 거죠. 누님 팬들이 유리한 때도 있어요. 요즘에는 화장품이나 청바지 매장 등에서 제품을 얼마치 이상 사야 사인을 받는 게 가능한 경우가 많거든요. 아무래도 누님 팬들은 경제력이 있으니까 좋아하는 사람이랑 직접 마주보는 데 물건은 얼마든지 사죠.”

김정아 씨 역시 “그만 뒀던 싸이 미니홈피를 3년 만에 다시 시작했다”고 말한다. 팬클럽 활동을 하며 팬에 대해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다시 그를 미니홈피 앞으로 끌어당긴 것이다. 최근에는 일본어도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예전에 일본어를 공부했었는데 어느새 다 잊어버리고 살았죠. 그런데 민호 군이 해외 활동이 많아지면서 요즘엔 일본에도 많이 가거든요. 일본어를 다시 공부하면 민호 군한테도 도움이 되고, 저도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들고. 아무래도 생활에 열정이 생기고 활기가 넘치니까 도전의식이 넘치는 것 같아요.”

◆10살 터울도 언니, 동생~. 나이는 상관없어요

팬클럽 활동을 하면서 새로 만나게 된 동생, 언니들도 큰 재산이다. 윤도원 씨는 “좋아하는 스타를 보는 것만큼이나 좋아하는 친구들 때문에라도 팬클럽 활동이 너무 즐겁다”고 말한다.

“정모나 사인회 같은 데 가면 일단 스타를 좋아한다는 공감대가 있으니까 말이 잘 통해요. 10살 차이나는 어린 동생들도 저에게 스스럼없이 언니라고 부르고 저도 50대 언니들한테도 마찬가지고요. 요즘에는 정모에 가면 30대 초반이면 거의 막내뻘이에요. 다 같이 모여서 사는 얘기도 하고 SS501 얘기도 하다 보면 시간도 훌쩍 가고. 가끔씩 팬 카페에서 동생들한테 들은 얘기를 하면 우리 아들도 깜짝깜짝 놀라요. 엄마가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아냐고요.”

박미나 씨는 “물론 처음에는 스타한테만 빠져서 가정일보다 팬 카페를 더 열심히 하던 때가 있었다”며 말을 잇는다. 아파트에서만 보내던 하루 일과에서 벗어나 카페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새로운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게 너무 좋았던 것이다.

“스스로도 ‘내가 이래도 되나?’ 걱정을 하기도 했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까 지금은 조절이 돼요. 오히려 팬클럽 활동을 위해서라도 아이들이나 남편에게 더 소홀히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된 것 같아요. 내 할 일 하면서 나만의 취미를 갖는 거잖아요. 무엇보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이 나에게 참 긍정적인 에너지를 많이 주는 것 같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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