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정두언, 엉덩이 흔들며 노래하는 이유

이승제 기자, 심재현 기자, 사진=유동일 기자 | 2009.09.30 17:45

[여의도 즐거운인생]①

편집자주 | 한국에서 정치인은 가장 인기없는 직업입니다. 국회의원은 더욱 그렇습니다. 선호도·신뢰 조사에서 의원들은 정당, 국회와 더불어 늘 최하위입니다. 하지만 실제 의원들을 만나보면 깜짝 놀랄 정도의 재주를 지닌 사람들이 많습니다.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이 되려면 무엇인가 나름의 '필살기'를 갖고 있어야 겠지요. '주특기' 없이 성공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의원들의 톡톡 튀는 재주는 답답한 정당정치, 틀에 박힌 정쟁, 보수적인 의정활동에 갇혀 있습니다. 그래서 국민들과 의원들 사이가 이렇듯 멀어져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에 머니투데이는 '여의도 즐거운인생'이란 기획 시리즈를 마련해 국회의원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철학, 삶을 담고자 합니다. '저 멀리 다른 세상'을 살아간다고 여겨지는 의원들을 '오늘 이 자리, 우리 곁으로' 불러내려는 취지입니다. 소통과 친서민, 중도실용의 정신이 유독 강조되는 지금, 의원들과 국민들이 더 가까워졌으면 합니다.

#29일 오후 8시 40분. 서울 종로구청 근처 한 건물에 자리잡은 스타벅스. 가운데 좌석에 앉은 한 남자가 주위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단청빛 목포바다 조용한 섬 하나 외롭다고 한다…바람 되어 다시 오마~'는 가락을 멋지게 뽑아내고 있다. 마이크를 잡은 듯 손을 능청스럽게 입에 가져다 놓았다. '이 남자! 천생 딴따라구나'는 느낌이다.

트로트 가수 데뷔를 앞두고 마지막 리허설 직전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재선·서대문을)을 만났다. 정 의원은 다음날 정식앨범 4집(앨범 타이틀 '희망')을 선보이며 가수 인생에 승부수를 띄운다. "공연 전날에는 목을 아껴야 하는데…"하면서도 음악 이야기가 나오자 1시간 가까이 열변을 토했다.

나는 '성대' 있는 집안 출신
'가수 정두언'이 지닌 음악관은 무엇일까. 혹시 음악을 정치에 활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멋진 남자'라는 이미지를 주기 위한 의도일까.

이는 선입견에 불과했다. 그는 가수활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 "우리 집안은 '성대' 있는 집안이다. 타고났다. 말 배우기 전부터 노래를 배웠다"고 운을 뗐다.

"중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음악가가 우리 큰 아버지뻘 되시는 고 정율성씨입니다. 일제시대에 중국으로 넘어가서 대장정에 참여했다 연안에서 팔로군 행진곡 등을 작곡했습니다. 중국 국가처럼 불리고 있죠. 미술 재능은 후천적이기도 하지만 음감은 선천적인 것입니다."

타고났다고 하지만 정치인이 굳이 음악을 하는 이유는 뭘까. 그는 "틀을 깨고 싶은 거다. 고정관념, 틀을 깨는 게 재미있다"고 말했다.

음악=공기. 정치인은 이제 똥 싼 바지 입지 말아야
"정치하는 사람들이 위선적이라고 합니다. 실은 정치인은 연예인과 같은 과입니다. 인기를 얻어야 당선되고 성장하는 것이고. 하지만 차이도 있죠. 연예인은 고객 취항에 맞춰 생각하고 활동하는데 우리나라 정치인은 자기 생각대로 합니다. 공급자 중심입니다. 정치인은 엔터테이너가 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척 하니까 이중적입니다. 정치인도 멋지게 옷을 입어야 합니다. 파란 셔츠에 빨간 넥타이, 게다가 똥 싼 바지를 입은 정치인을 보면 얼마나 칙칙합니까."(웃음)

"음악이 뭐냐"고 묻자 그는 '음악=공기론'을 폈다. "세상 번뇌를 잊는 겁니다. 힘들었던 어린 시절에 노래는 탈출구이자 상상의 나래를 펴는 도구였습니다. 상상을 자극하고 생각을 만들어 줍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교육을 못 받았습니다. 음악은 공기와 같은 것입니다. 곳곳에 음악이 있는데 대부분 사람들이 못 느낄 뿐입니다. 산문에도 운율이 있습니다. 글을 쓸 때 노래 부르는 느낌으로 씁니다."

그는 3집까지 시쳇말로 재미를 못 봤다. 마음고생도 많았을 텐데, 굳이 4집까지 낸 이유가 뭘까. 그는 "실패가 아니라 성공을 못한 것일 뿐"이라며 장난섞인 눈빛으로 질문을 고쳐줬다.

"2003년부터 지금까지 '세이브 더 칠드런(Save the Children)'에 음반 및 공연 수익금을 보내고 있는데, 12명밖에 수술을 못했습니다. 100명은 수술해야 착한 일 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의 수익금 전액은 어린이자선재단인 세이브 더 칠드런에 기부돼 심장병 어린이를 돕는 데 쓰인다)


웃는 게 제일 힘들어
정 의원은 4집으로 '대박'을 꿈꾸고 있다. '희망'이란 앨범 타이틀이 이를 말해준다.

"이번에는 프로모션까지 제대로 했습니다. 락이나 발라드에서 트로트로 바꾼 것도 성공하기 위해서입니다. 김정구씨는 '두만강'으로 평생 먹고 살았습니다. 내 노래를 정치인 정두언이 아닌 가수 정두언이 부른 것으로 받아줬으면 합니다. 음반 냈을 때 어떤 기자는 '정 선배, 보내준 음반 잘 봤어요'라고 하더군요. ('들었어요'가 아니라) 그래서 이번에 예명을 쓸까도 고민했습니다."

전업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래서 창작의 고통도 컸을 것이다. "4집을 내면서 후회도 많이 했습니다. 도망가고 싶기도 했구요. 하지만 젊은 친구들과 같이 하니까 좋고 보람과 성취감이 큽니다. 요즘 음반을 내면 불법 복제하기 바쁜데, 나쁜 것이긴 하지만 내 노래를 많이 불법 복제했으면 좋겠습니다. 하하"

정 의원은 "요즘 노래 부르며 가장 힘든 게 웃는 것"이라고 했다. "발라드를 부르다 보니 밝은 노래가 없어 인상 쓰고 부르는 게 버릇이 됐습니다. 이번에 쇼트케이스 준비하며 안무하는 선생이 계속 웃으라고 질책하더군요. 찍어서 보여주는데 정말 인상 쓰고 있더군요. 그러고 보니 난 참 인상 쓰며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집이 계획대로 대박 나면 또 도전할까. "이번 앨범으로 노래방에서 내 노래 눌러 부르는 사람들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승부를 걸었습니다. 안 되면 주제파악하고 그만둘까 생각중입니다."

#30일 오후 2시 30분 서울 광화문 KT아트홀. 4집 가수의 앨범 쇼트케이스 현장. 중년 남자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어제까지만해도 "웃으며 노래 부르는 게 힘들다"고 툴툴거리던 그 남자가 맞나.

트렌드트렌치코트에 선글라스를 끼고 어깨를 들썩이는 모습에 4집 가수의 노련함이 엿보인다. 트로트곡 '바람 되어 다시 오마'를 부를 때는 엉덩이를 흔들어댔고 타이틀 곡 '희망'에선 자연스런 손짓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200여명의 관객은 가수 정두언의 노래와 손짓에 웃고 즐기며 연신 박수를 쳤다. 이덕화 최수종 이훈 이민우 등 연예계 '선배'들은 이날 정 의원의 앨범을 축하했다. 가수 박상민, 그룹 티아라, 수와진의 안상수는 축하공연으로 흥을 돋웠다.

정 의원은 공연을 마친 뒤 "국민가수까진 아니더라도 국회의원 가수라는 말을 이제 안 들었으면 좋겠다. 명색이 4집 가수인데…"라고 말했다. 가수 정두언. 그의 노래 인생은 '희망'을 타고 활짝 나래를 펴려 한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베스트 클릭

  1. 1 '낙태 논란' 허웅, 방송계 이어 광고계도 지우기…동생 허훈만 남았다
  2. 2 손흥민 돈 170억 날리나…'체벌 논란' 손웅정 아카데미, 문 닫을 판
  3. 3 "네가 낙태시켰잖아" 전 여친에 허웅 "무슨 소리야"…녹취록 논란
  4. 4 아편전쟁에 빼앗긴 섬, 155년만에 중국 품으로[뉴스속오늘]
  5. 5 "손흥민 신화에 가려진 폭력"…시민단체, 손웅정 감독 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