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양민-천민=빵셔틀' 일그러진 교육현장

머니투데이 신희은 기자 | 2009.09.24 11:44
↑ 한 포털사이트 블로그에 14일 개설됐다 최근 폐쇄된 '대한민국 빵셔틀 연합회' 커뮤니티.

"학교 안에는 세 가지 계급이 있다. 싸움 잘하는 1진을 중심으로 한 귀족, 공부를 잘하고 돈 많은 양민, 공부도 못하고 소심해 괴롭힘을 당하는 천민. 특히 천민은 귀족, 양민의 매점 빵 심부름을 도맡아 '빵셔틀'이라고 불린다. 빵 조달 능력이 탁월하면 '속업셔틀', 중간에 빼앗기면 '셔틀추락'이라 부른다."

한 포털사이트 오픈사전에 등록된 신조어 '빵셔틀'의 뜻풀이다. 2009년 4월 한 학생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사전에는 실제 학교에서 쓸 법한 예문까지 올라와 있다.

최근 학교에서 폭력과 강요에 못 이겨 빵 심부름을 하는 아이들의 인터넷 커뮤니티 '대한민국 빵셔틀 연합회'가 개설되면서 '아이들만의 비밀'이 수면위로 드러났다. 이 커뮤니티에는 '일진에 잘 보이는 방법', '빵을 빨리 사오는 방법', '학교폭력과 따돌림에 대한 고민' 등 수십 건의 글이 올라왔다.

어른들은 "정말 '빵셔틀'이 존재하냐"며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을 보이는 반면 학생들은 "반마다 1~2명씩은 빵 심부름을 한다"고 폭로했다. 특히 학부모, 교육계를 중심으로는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며 우리 교육현장에 대한 자조적인 목소리가 섞여 나왔다.

중3, 고1 자녀를 둔 정은아(49·가명) 씨는 "처음 들어보는 '빵셔틀' 이라는 말이 당황스럽다"며 "커뮤니티까지 만들어 고민을 나누고 스트레스를 풀 정도면 아이들의 상황이 오죽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정 씨는 "커뮤니티 글이 모두 사실이 아닐 가능성도 있지만 '빵셔틀' 이라고 낙인찍혀 모욕적인 학교생활을 하는 아이들이 생겨난 배경과 원인을 교육 당국에 묻고 싶다"며 "자녀와 이야기를 나눠보겠다"고 덧붙였다.


교육계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다. 서울시교육청 중등교육정책과 생활지도담당 장학관은 "진상을 조사하려고 경찰청에 협조를 구해 '빵셔틀 연합회' 커뮤니티 운영자를 찾아봤지만 주소, 전화번호 등이 허위라고 나왔다"며 "게시글과 누리꾼의 제보를 확인해 일선 학교에 확인하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장학관측은 또 "교사들이 수업과 여타 행정업무로 인해 학생 생활지도에 몰두할 수 없어 학생들 간의 문제를 간파하고 해결책을 찾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게시글이 만약 사실이라면 교육적으로 정말 큰 문제이며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빵셔틀', '빵돌이'와 같이 폭력이나 강요를 통해 특정 학생에 심부름을 시키는 등의 행위는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 위배된다.

교육청은 피해 학생은 해당 학교 교사 혹은 관할 교육청 청소년 상담센터, 지역 'Wee 센터' 등을 통해 상담,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가해 학생은 학내 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통해 퇴학 등 9가지 조치에 처한다. 피해 학생은 별도의 보호조치를 받도록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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