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를 믿었던 맥쿼리의 딜레마

더벨 박창현 기자 | 2009.09.18 10:23

영화산업 침체에 추가 투자 불발..문화·예술 투자 감소 우려

이 기사는 09월17일(10:29)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시점을 3년 전으로 돌려보자. 당시 한국 영화계는 1990년대 후반 '쉬리' 열풍 이후 제2의 르네상스를 맞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웰컴 투 동막골 800만 명, 왕의 남자 1230만 명, 괴물 1300만 명, 타짜 685만 명. 좀 잘 만들어졌다 싶은 영화는 최소한 500만 명의 관객을 확보했다. 왕의 남자와 괴물이 연타석으로 10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분위기는 정점에 달했다. 극장을 찾는 횟수도 늘어 국민 한명 당 평균 세 번 정도 극장을 찾아 관람료를 지불했다.

맥쿼리가 사모펀드(PEF)를 만들어 한국 극장 체인 사업에 뛰어든 게 바로 그 시점이다. 이 외국계 PE의 시도는 과감하고 대담한 것이었다. 영화관 10개를 사는 데 2800억원의 거액을 베팅했다는 것 자체가 센세이셔널 한 이슈였다.

밸류에이션을 보자.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영화 관객 증가율은 매년 5~44%의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2001년 5237억원에 불과했던 극장 매출액도 5년 만에 두 배에 가까운 1조128억원까지 늘어났다. 맥쿼리가 한국 영화 시장의 잠재력을 높이 산 것도 무리는 아니다.

투자처 선정에 깐깐하기로 정평이 난 국민연금과 행정공제회, 군인공제회도 맥쿼리를 따라 투자자(FI)로 나섰다. 이름난 외국계 PE의 투자 시나리오가 보수적인 연기금마저 움직인 셈이다.

그러나 한국 관객들의 눈높이는 만만하지 않았다. 거액 투자비를 날리고 혹평을 받는 작품들이 연이어 나타나자 관객들은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실제 2007년 전국 누적 관객 수는 전년보다 3.5% 증가한 1억5877만 명에 그쳤고 지난해 관객 수는 1억5083만명으로 그보다 수가 줄었다. 성장세가 완연히 둔화되면서 역성장(-5.0%)이 나타난 것이다. 전국 극장 매출액도 지난해 감소세를 나타내며 9794억원에 머물렀다. 확실한 다운 턴이다.


업체 간 경쟁은 더 치열해 지면서 영업 환경은 악화됐다. 시장점유율 1위인 CJ CGV와 2위 롯데시네마는 그룹의 지원을 등에 업고 공격적인 사업 확장에 나섰지만 재매각을 염두에 둔 맥쿼리는 속수무책이었다.

2006년 79개이던 CGV 극장은 2년 만에 102개까지 늘었다. 롯데도 36개에서 49개로 증가했다. 이 기간 메가박스는 오히려 한 개가 줄어 15개만 남았다. 파이가 커지면 신규 투자를 하려던 맥쿼리의 계획이 꼬이면서 나타난 문제다.

결국 투자자들은 실패한 케이스라는 결론을 내리고 조기 자금회수에 나섰다. 맥쿼리가 예상보다 2년이나 빨리 메가박스를 처분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이 매각마저도 쉽지 않다. 2800억원에 산 매물을 그에 엇비슷하게라도 살만한 인수자가 없다. 입찰에 나선 후보 중 가장 높은 가격이 2000억원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맥쿼리의 손해가 불가피한 셈이다.

걱정되는 점은 맥쿼리의 손해만이 아니다. 리스크 관리에 대한 해결방안 없이 과감하기만 했던 외국계 PE의 실패가 가져올 파장이다. 한류 사업 확대를 위해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국내 문화 산업계에 이 사례가 두고 두고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연기금들은 벌써부터 문화 컨텐츠에 대한 대체 투자를 기피하는 분위기다.

딜레마에 빠진 맥쿼리가 어떤 솔루션을 찾아낼 지 주의 깊게 지켜보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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