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놀이, 피도 눈물도 없다

더벨 성화용 부국장 | 2009.09.15 09:02
망하고 나서야 세상 인심이 어떻다는 걸 안다. 요즘 몇몇 기업들은 그걸 뼈저리게 체감하고 있다. 10년 전의 외환위기 때는 모든 기업이 함께 망했다. 고통은 항상 상대적이다. 다 함께 겪을 때는 아무리 힘들어도 스트레스가 덜하다. 그러나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의 금융위기는 기업을 선별해 고통을 얹었다. 사업을 확장하며 큰소리 치던 일부 기업들이 급전직하의 변화에 당황하며 뒤뚱거리고 있다.

중견 재벌그룹의 재무 담당 임원 A씨. 은행과의 재무개선 약정(MOU) 체결 이후 피를 말리는 자금조달에 지쳤다. 그를 더욱 힘들게 한 건 금융회사들의 태도. 경기가 좋을 때는 그를 한번 만나기 위해 은행, 증권사의 고위 임원들은 물론이고 외국계 투자은행들까지 줄을 섰다.

지금은 그저 '옛날 얘기'일 뿐이다. 한달 전쯤 자금이 부족해 주채권 은행의 간부에게 전화를 했더니 전화를 받지 않았다. 비서에게 메시지를 남겼는데도 다음날 오전까지 답신이 없었다. 같이 밥도 먹고 운동도 하던 막역한 사이였는데 어찌 이럴 수가 있나 싶었다.

독이 오른 재무임원은 휴대전화로 '당신이 책임져야 할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그 후 시간이 흐르고 상황은 다소 호전됐는데, 은행 간부와는 아예 연락을 않고 산다.

또 다른 대기업의 재무 임원 B씨. 그 역시 은행과 MOU를 체결한 후 마음고생이 심했다. 주채권은행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출을 회수했다. 비교적 자구노력을 충실히 하고 있는데도 그 이상의 이행 스케줄을 요구했다.

재무 임원은 "한마디로 가혹행위"라고 했다. 그는 "한 번은 최고경영자가 회의석상에서 '주채권 은행을 바꿔버리고 싶다, 손해를 보더라도 보유자산을 매각해 아예 은행 빚을 다 갚아 버리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했을 정도"라고 전했다.

이렇게 모진 경험을 하고 있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 어께에 힘 깨나 주던 대기업들로서는 영 적응하기 어려운 일이다. 기업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는 "그 동안의 관계와 앞으로의 거래를 고려할 때 은행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것이다.


중견 건설사 재무임원 C씨. 작년 10월부터 올 2월까지 그는 거의 매일 거래은행의 실무자에게 자금 상황을 세밀하게 보고했다. 작년 여름까지만 해도 그의 카운터파트는 그 위의 '본부장'과 '부행장'이었다.

유동성 위기가 불거지면서 상대방의 격이 낮아졌을 뿐 아니라, 관계 설정 내용도 바뀌었다. 그래도 불평 한마디 못하고 5개월을 버텼다. 지금은 다시 옛 관계가 복원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스스로 피하고 있다. 그는 "처음 겪는 수모였다"고 분을 토했다.

그러나 이건 그들의 시각으로 하는 얘기일 뿐이다. 금융가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잠복해있던 부도 위험이 현실로 드러나기 시작하면 금융가에게 다른 모든 변수의 가치는 '제로'가 된다.

이게 바로 '돈놀이'의 속성이다. 사채업에서 은행에 이르기까지 전혀 다를 바 없는 본질이다. 돈을 떼이지 않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한다. 친구간에도 , 심지어 혈육간에도 그렇다. 피도 눈물도 없다는 건 '돈' 앞에서 가장 적절한 표현이다.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한번 당해본 사람들은 무리하게 돈을 빌리지 않는다. 사업을 키우고 싶은 욕심이 하늘을 찔러도 금융이 두려워 재고 또 잰다. 빚내서 일을 벌일 때, 기업인들이 지금의 수모와 분노를 기억한다면 그것만으로 큰 소득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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