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그먼, 위기1년 진단]경제학자의 실패(3)

머니투데이 권다희 기자 | 2009.09.09 14:21
◇케인지언vs.신고전주의 ◇

유효수요이론이 지배하던 거시경제학은 40여 년 전부터 두 흐름으로 나뉘어졌다. 케인즈주의의 관점에 기댄 미 동부 연안 대학의 경제학자들과 케인즈 이론을 넌센스로 치부한 내륙지역의 경제학자들의 두 흐름이 그것이다. 내륙지역 경제학자들은 근본적으로 신고전주의의 추종자들이었다.

케인지언과 신고전주의 계열의 경제학자들은 '시장의 합리성'에 대한 근본적인 가정이 달랐기 때문에 오랫동안 평행선을 그려올 수밖에 없었다.

이들의 관점 차이는 다음의 짧은 예화를 통해 간단히 살펴볼 수 있다.

150명의 젊은 부부가 사는 공동주택이 있다. 이들은 외출을 할 때 서로 아기를 돌봐주기로 합의 하고 베이비 시팅 쿠폰을 발매했다. 쿠폰 한 장 당 30분의 베이비 시팅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각 커플은 20장의 쿠폰을 받았으며, 쿠폰을 더 받고 싶을 경우 1장 당 30분의 노동력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부들은 긴 외출을 위해 20장 이상의 쿠폰을 보유하기 원했다. 따라서 대부분의 커플들은 쿠폰을 비축해두고, 더 많은 쿠폰을 얻기 위해 노동력을 제공하길 원했다. 모두가 쿠폰을 비축하려고 하자 외출이 줄었고, 이에 따라 베이비 시팅 일자리도 줄어들었다. 이로 인해 조합원들은 더욱 외출을 꺼리게 되며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결국 공동주택은 경기침체에 빠지고 말았다.

아마 40년 이전이었다면 유효수요가 부족해 경기침체에 빠지게 된다는 이러한 이론에 모두가 공감했을 것이다.

그러나 신고전주의자들은 다르다. 그들은 가격이 항상 수요와 공급을 매치시켜주기 때문에 수요가 부족할 수 없다고 본다.

이들에 따르면 만약 사람들이 더 많은 쿠폰을 원할 경우 쿠폰의 가치가 오르게 된다. 만약 쿠폰이 한 장 당 40분의 베이비 시팅을 제공하는 것으로 바뀌게 된다면(시간당 베이비 시팅 비용이 쿠폰 2개에서 1.5개로 떨어진다면), 쿠폰의 구매력이 높아지고, 사람들은 쿠폰을 비축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 경기침체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경기침체는 현실에서 실제로 발생한다. 이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1970년대에 '합리적 기대 이론'의 루카스 교수는 경기침체가 경제주체들의 일시적인 혼란에 의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물가가 변화한 이후에도 근로자, 기업 등 경제주체가 물가 변화를 완전히 인식하기까지 시간차가 발생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루카스는 자연스러운 경기순환(business cycle)을 거스르려는 경제 정책은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라고 설명했다.

1980년대에 미네소타 대학의 에드워드 프레스콧은 '경기변동이 경제주체들의 선택에 의한 결과'라는 새로운 시각을 도입하기도 했다. 프레스콧은 물가 변동과 수요 변화가 경기순환과 아무런 관계없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근로자들은 환경이 우호적일 때는 자발적으로 노동시간을 늘리고, 그렇지 않을 경우 노동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행동을 결정한다. 프레스콧에 따르면 실업은 노동자들의 합리적인 시간 사용 결정에 의한 결과가 된다.

크루그먼은 프레스콧의 이론에 대해 '바보같은' 이론이라 평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레스콧의 실물 경기 변동 이론은 수학적 모델을 구축하는데 기여했으며, 실제 데이타를 이용한 고도의 통계적 기법을 이용한 그의 이론은 많은 대학에서 주류 거시경제학이 되었다.

케인즈 주의를 이어받은 경제학자인 그레고리 맨큐, 올리버 블랜차드, 데이비드 로머 등은 (경기침체에 대한) 케인즈의 수요 중심 관점과 신고전주의적 이론을 중재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경기침체가 수요 측면에 의해 발생한다는 증거가 너무 강력해 거부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그들은 완전 시장이나 완벽한 합리성 가정에서 벗어나 불완전함이 개입된, 경기침체에 대한 케인지언적 관점을 계승하고 싶어했다. 뉴케인지언 경제학자들은 신고전주의적 신념을 가능한 한 벗어나고자 했으나 합리적 개인과 완전시장이라는 가정을 버리지는 못했다.

합리성 가정을 포기하지 못했다는 것은 주류경제학 내에서 버블이나 은행 시스템 붕괴 등에 관한 일반적인 모델을 구축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1997-1998 아시아 금융위기나 2002년 아르헨티나에서 발생한 공황 수준의 경기침체 등 실제 세계에서는 버블도 은행시스템 붕괴도 지속되고 있었지만 이에 대한 연구는 뉴 케인지언의 주류적인 흐름에서는 거의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게다가 1985년과 2007년 사이에 두 학파 간 논쟁은 오로지 이론에 관한 것이었다. 크루그먼에 따르면 뉴 케인지언들이 오리지널 케인지언들과 다르게 재정정책이 경기침체를 막는데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책에서 두 학파 간 분쟁이 발생하지 않았다.

이들 모두 FRB의 화폐정책만 있으면 공황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프리드먼의 90세 생일 축하 자리에서 (케인지언에 가까운) 벤 버냉키가 프리드먼에게 "대공황에 대해서 당신이 옳았다"고 말한 일화는 이를 잘 드러낸다.

◇ 경기부양책을 둘러싼 논쟁◇

이들의 이견은 경제위기 이후 오바마 정부가 시행한 케인즈 식의 대규모 경기부양책 이후에 첨예하게 드러난다.

1985년부터 2007년 사이 거시경제학계는 '가짜 평화'가 지배하고 있었다. 오랜 기간 동안 인플레이션이 안정된 상태로 유지되고, 경기침체가 완화되면서 케인지언 역시 FRB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신고전주의 측 학자들은 FRB 정책의 유효성을 그다지 인정하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문제를 악화시키지는 않는다는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경제 위기는 가짜 평화를 깨트려 버렸다. 경기침체가 더 강력한 정부의 정책을 필요로 하게 되자 두 학파 간 오래된 갈등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루카스는 오바마 정부의 경기부양책에 대해 "싸구려(schlock) 경제학"이라고 비판했다. 시카고 동료인 존 코그란 역시 정부 정책이 의심스러운 동화(케인즈 이론을 일컬음)에 근거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브래드 드롱 UC 버클리 교수는 시카고학파가 이론적으로 무너졌다(intellectual collapse)고 맞섰으며, 크루그먼 역시 시카고학파의 학문이 거시경제학 암흑시대(Dark Age)의 산물이라고 비꼬았다.

크루그먼이 재정정책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근거는 기존의 통화정책, 즉 금리를 낮추는 방식만으로는 현 상황을 더 이상 개선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경기침체 동안 FRB는 은행으로부터 단기국채를 매입함으로써 이에 대응했다. 정부의 단기국채 매입은 국채 이자율을 낮췄다. 국채 이자율이 낮아지면 투자자들이 더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다른 자산으로 눈을 돌리면서 다른 자산의 이자율도 하락한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이러한 낮은 이자율은 경제 회생으로 이어진다.

FRB는 1990대 초반 이러한 방식으로 단기국채 금리를 9%에서 3%까지 낮췄으며, 2001년에는 6.5%에서 1%까지 내렸다. 최근의 경제침체에 맞서기 위해 국채 금리는 5.25%에서 제로금리로 떨어진 상태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에서는 제로금리도 경기침체를 끝내기에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판명됐다. 제로금리 근처에서 투자자들이 대출을 꺼리고 현금을 축적하려하는 이른바 유동성 함정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2008년 말 이자율은 실질적으로 제로보다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음에도 침체는 더욱 깊어졌고, 전통적인 통화정책은 영향력을 잃게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공공부문에 대한 지출을 늘림으로써 경기를 부양하는 케인즈 식 경기부양책은 오바마 정부 경제정책의 기반이 됐다.

반 케인즈주의 학자들을 최근 미국 정부의 경기부양책에 분노했다. 1980년 루카스는 케인즈 경제학에 대해 “경제학 세미나에서 사람들은 케인지언 이론을 더 이상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주류 경제학에서 케인즈가 대체로 맞다고 시인하는 것이 치욕적인 분위기에서 케인즈의 정책이 다시 부활하자 이들은 당황한 것이다.
(4편으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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