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와 경제학자들의 실패(1)

머니투데이 권다희 기자 | 2009.09.09 13:31

크루그먼, 금융위기 1년 진단

편집자주 | “주류경제학의 이론적 토대가 붕괴했다(intellectual collapse)” 지난해 10월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전 의장이 남긴 말은 이번 금융 위기가 경제학자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을 남겼는지를 실감케 한다. 지난해 9월 15일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경제 지표들은 대공황 이후 최악의 수준을 기록하며 경제는 계속해서 깊은 침체를 향해 갔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최근의 경제위기를 예측하지도,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도 못했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리먼브러더스 사태 1주년을 맞아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게재한 기고문 'How Did Economists Get It So Wrong?'에서 위기 예방도, 대응도 미흡했던 기존의 경제학계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크루그먼은 경제학자들이 ‘모든 사람은 합리적이다’, ‘시장은 완벽하다’는 가정에 매몰 돼 금융위기의 발생 가능성을 간과해 버렸다고 지적했다. 그의 기고문을 4회에 걸쳐 요약한다.

◇ 금융위기와 경제학자들의 실패◇

경제학자들은 최근까지 이론과 실제 양쪽 모두에서 자신들의 성공을 자축해 왔다. 올리버 블랜차드 MIT 교수는 지난해 발표한 글 '거시경제학의 위상'(The State of Macro)에서 "거시경제학의 상황은 좋다"(The State of Macro is good)고 언급했다. 지난날의 학파 간 분쟁은 종결됐으며, 거시 경제 이론이 커다란 수렴을 달성했다는 것이다.

또한 경제학자들은 상아탑을 벗어난 현실에서도 자신들이 세계를 통제하고 있다고 믿어왔다.

시카고 대학의 로버트 루카스 교수는 2003년 미국경제학회(American Economic Association) 연설에서 "경제공황을 막기 위한 핵심적인 문제는 이미 해결됐다"라고 선언한 바 있다. 2004년 당시 프린스턴 대 교수였던 벤 버냉키 FRB 의장은 지난 20년 간 경제 정책이 달성했던 낮은 인플레이션 등의 경제성과를 ‘대안정(Great Moderation)'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경제상황이 좋았던 지난 수십 년 동안 금융 경제학자들은 주식과 기타 자산들이 항상 적절한 가격으로 거래된다고 여겼으며, 시장의 본질을 안정적인 것으로 봤다.

대공황 이전 까지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를 완벽한 시스템으로 간주했다. 물론 대공황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으며 시장에 대한 이러한 믿음이 잠시 흔들렸던 시기도 있다. 그러나 대공황이 마무리되면서 경제학자들은 ‘합리적 개인’과 ‘완전 시장’을 상정하는 이상화된 경제학에 다시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상화’된 경제학 속에서 경제학자들은 버블과 파산을 초래할 수 있는 인간의 합리성의 한계에 눈을 감아 버렸다. 금융기관들이 비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가능성과 시장(금융시장)의 불완전성 역시 간과했다. 크루그먼은 여기에 보태 화려한 수학실력을 뽐내야만 하는 경제학의 방법론이 경제학의 실패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거시경제학자들의 주류적인 시각은 크게 두 축 사이에 있었다. 한 축은 자유 시장 경제가 절대로 잘못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시장주의자들이었고 다른 한 축은 경제가 때때로 잘못된 길로 빠져들 수는 있지만 FRB의 통화정책으로 일시적 침체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최근 경제위기처럼 FRB가 최선의 노력을 쏟았음에도 정상적인 상황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 상황을 다루는 데에는 양 측 어느 쪽도 마땅한 방책을 내놓지 못했다.

◇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지난해 엄습한 경제위기는 예측될 수 있었고 예측됐어야 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몇몇 경제학자들은 실제로 예측하기도 했다.

로버트 실러 교수가 그 예다. 그는 버블을 규명하고, 버블이 붕괴할 경우의 고통스러운 결과를 경고했다.

그러나 정책가들은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는 데 실패했다. 앨런 그린스펀 당시 FRB의장은 2004년에 집값 버블에 대해 이야기하며 "전국적인 가격 왜곡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버냉키는 2005년에 "주택 가격인상은 강력한 펀더멘털의 반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의 단호한 신념에도 불구하고 버블은 점점 불어났다. 그린스펀과 버냉키는 2001년의 경기침체에서 경제를 건져 올린 FRB의 성공을 축하하고 싶었을 것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두 FRB 의장들이 당시 저금리를 오래 유지한 것은 버블 확산의 원인이 됐다.

그러나 두 의장이 버블을 놓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버블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일반적인 신념이다. 그린스펀의 주장을 다시 한번 살펴본다면 그의 확신이 어떤 특별한 증거에 근거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의 근거는 단지 '주택 가격에 버블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앞선 주장들일 뿐이었다.

이러한 신념에 근거를 제공했던 효율적 시장이론(efficient-market theory)은 버블을 발생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효율적 시장이론의 창시자 유진 파머는 2007년 인터뷰에서 "버블이란 말은 나를 짜증나게 만든다"(drives me nuts)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왜 우리가 부동산 시장을 신뢰할 수 있는 가를 설명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부동산 시장은 유동성이 작기 때문에 사람들은 주택을 구입할 때 매우 조심스러우며, 가격을 매우 신중하게 비교한 뒤 구입하므로 집값에는 버블이 발생할 수 없다. 이것이 그의 요지였다.

그러나 과소평가됐던 버블은 부풀어 올랐고, 부동산 등 안전자산의 진짜 위험이 드러나며 금융시스템의 취약성이 증명됐다. 미국 가계의 13조달러에 달하는 부가 증발해 버렸다. 600만 명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졌으며 실업률은 1940년 이래 최고수준으로 치달았다. 경제학자들이 실패했음이 명백히 드러난 것이다.
(2편으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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