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사태 직후 은행이 아찔했던 순간

머니투데이 반준환 기자 | 2009.09.09 09:11

[글로벌 금융위기 1년] (3) 구원투수된 은행

지난해 10월17일 토요일 저녁, 여의도 금융감독원 회의실에 국민·신한·우리·하나·산업·기업 등 주요 은행의 자금부장들이 소집됐다.

정부가 은행의 외화차입을 3년간 지급보증하고, 300억달러의 외화유동성을 추가로 공급하는 '국가보증'을 추진하기 위한 자리였다. 정부가 은행에 지급보증을 하는 건 사상 처음으로 그만큼 은행권의 사정은 급박했다.

회의는 일요일까지 연이어 열렸고 금융당국과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등의 협의 끝에 지급보증의 범위와 규모가 정해졌다. 이는 이틀 뒤 국무회의를 거쳐 곧바로 확정됐다.

은행권의 외화유동성 악화는 앞서 7월 금감원이 "국내 은행의 외화차입 여건이 어려워졌으나 자금조달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밝힌 지 3개월 만에 일어난 현상이다. 그 무렵만 해도 은행의 기간물 차환율은 100%에 달하고, 18개 은행의 3개월 외화유동성 비율도 103%로 낮지 않았다.

상황을 180도 바꿔놓은 것은 리먼브러더스 사태였다. 세계 3대 투자은행(IB) 가운데 한 곳이 파산에 직면하니 일순간에 자금순환이 막힌 것이다.

"리먼사태가 터진 게 추석 연휴 마지막날이었다. 다음날 출근해서도 그렇게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갈 줄 몰랐다. 오후가 되니 오버나이트(1일짜리 차입)가 안되고, 단기자금 차입이 막히기 시작했다."

"평소 100%였던 롤오버(만기연장)가 이때 50% 미만으로 줄었다. 피가 말랐다. 매일 밤 우호적인 기관 등에 연락을 해 통사정까지 했는데도 제대로 되는 게 없었다. 세계 어느 곳에도 돈이 없었다." 은행 자금담당 임원들의 회고다.


은행들은 보유 외화자산과 부채를 정리하면 문제가 없지만 수출입이 많은 국내 기업들에는 외화가 제대로 공급돼야 한다. 이들 기업이 쓰러지면 은행에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고, 이는 곧 국가경제적인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

정부는 은행들이 외화유동성 애로를 호소하자 한때 "외환위기 때처럼 단기외채에 너무 의존한 게 아니냐"며 냉랭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세계적인 유동성 경색국면인데다 우량기업들이 고사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 정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후 대처는 기민했다. 당국은 주말 밤 10시 이후에도 수시로 은행 자금부장들과 만나 대책을 협의했고, 10월 말에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최대 3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 계약을 성사시켰다.

세계 각국이 금융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한 대규모 유동성 공급에 나서자 자금조달 여건도 급속도로 개선됐다.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을 선두로 시중은행들도 수억달러씩 해외차입에 성공했고 우리은행은 투자자들에게 거꾸로 외화차입을 제안받기도 했다.

은행들은 현재 10억달러 이상의 여유자금을 확보한 상태다. 은행들이 기업 구조조정에 전념할 수 있게 된 것은 외화유동성의 급한 불을 예상보다 빨리 끈 것도 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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