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던 그들, 빚쟁이로 사는 까닭

머니투데이 정영화 기자 | 2009.09.10 10:33

[머니위크]정영화의 돈 Talk!

타임머신을 타고 1990년대로 돌아가 보자.

배경은 대학가. 현금지급기(ATM) 앞에 기다랗게 줄이 서 있다. 학생들의 지갑 속에는 현금과 동전이 담겨 있다. 네모난 플라스틱으로 된 것은 자유입출금 은행카드, 공중전화카드 정도다.

부모님은 자식을 불러 앉히며 이렇게 훈계를 늘어놓고 있다. “신용카드는 만들지도 말고 쓰지도 마라. 도깨비 방망이도 아닌데 어떻게 딸랑 카드 한장으로 외상이 된단 말이냐.”

또 한쪽에서는 어떤 사람이 찾아와 신용카드를 만들어야 하니 보증을 서달라고 어떤 노부부에게 사정을 하고 있다. 직업이 뚜렷하지 않고 소득이 적어 보증인이 없이는 신용카드를 만들지 못한다고 하소연이다.

친척 한명이 오랜만에 선물을 들고 집을 방문한다. 머리를 조아리며 뭔가 애절한 부탁을 하고 있다. “이번에 뭘 해보려고 하니 500만원만 빌려 달라.” 돈을 빌리기 위해 가장 먼저 찾는 곳은 친척 등 지인이다.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지갑 속에는 신용카드가 여러장 들어가 있다. 소액이면 모를까, 대부분은 계산하면서 신용카드를 내민다.

대학가를 가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은 밖에서 친구들과 식사를 하면서 현금 대신 신용카드를 내민다. 신용카드는 미래의 소득을 끌어다 쓰는 엄밀히 말하면 외상, 즉 빚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돈을 빌리러 지인을 찾는 경우가 줄어들었다. 사람들이 굳이 지인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돈을 빌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도 있고, 비록 내 집이 없다고 하더라도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대출이 가능하다.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리볼빙(회전결제)도 있고 대부업체도 있다. 신용불량자만 아니라면 가능한 대출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소비를 권하는 사회이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사람들도 그렇고 정부도 그렇고 빚으로 소비하는 풍토에 대해 그다지 신경 쓰는 분위기가 아니다.

빚이 위험하다는 생각에 둔감해졌다. 빚이 또 빚을 낳는 구조지만 사람들은 이를 자각하지 못한다. 어떻게든 돌려막기 식으로 버티면 된다고 생각한다. 현실감각 없는 막연한 낙관주의가 판을 친다. “한탕으로 갚으면 되지, 어떻게든 갚을 수 있겠지.”

◆사람들이 빚을 지는 이유-1. 주택구입

사람들이 자신이 번 소득 내에서만 지출을 하면 될 것을, 왜 구태여 소득보다도 많은 지출을 해서 기어이 빚을 지는 것일까? 빚의 이자 때문에 빚이 계속 불어나고 있는데도 왜 그 위험성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일까?

재무컨설턴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세가지 이유를 꼽는다. 바로 주택구입비, 사교육비, 과소비다.

지금까지 부동산 불패신화가 전설처럼 여겨져 왔다. 집은 어떻게든 사두면 돈이 된다는 생각은 마치 불변의 진리 같았다. 그러다 보니 조금 더 돈을 모은 다음에 집을 사야 하거나, 대형 평수를 살 돈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빚을 내서 집을 구입한다. 대출 한도를 거의 채워가면서까지 무리한 내 집 마련을 시도한다.

세계 금융위기로 유례없는 불황을 겪었던 올해 들어 7월까지 주택담보대출이 오히려 사상최대치인 22조6000억원 급증하는 기현상을 보인 것도 이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396조원 가운데 주택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66.4%라고 한다. 사람들이 빚을 지는 대부분의 이유가 바로 부동산 구입 때문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전체 가계부채 700조원은 대부분 변동금리로 돼 있어 금리가 인상될 경우 곧바로 가계 부담으로 이어지게 된다.

◆사람들이 빚을 지는 이유-2. 사교육비

재무 컨설턴트들을 만나면 많이 이야기하는 것 중 하나가 "사람들이 아무리 살림이 쪼들려도 사교육비를 줄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유는 단 하나, 가난을 되물려주지 않고 신분상승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교육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빚을 물려주는 구조로 가고 있다는 것이 대부분의 재무컨설턴트들의 한결같은 지적이었다.

그 원리는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빚을 내서 무리하게 사교육을 시킨다. 대학에 들어갈 때쯤이면 경제적 여유가 없다. 결국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대학공부를 시킨다. 그렇게 어렵게 들어간 대학을 졸업했는데도 취업난 때문에 곧바로 취직이 되지 않는다. 또다시 빚이 늘어난다.

어렵게 취직이 되었다고 해도 학자금 대출 등 빚을 갚는데 상당 시간을 소요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결혼할 때쯤이면 또 빚을 진다. 그렇게 빚을 진 상태에서 결혼 생활에 돌입하고 다시 내 집 장만하느라 빚을 진다. 결국 평생 동안 빚더미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상담해본 컨설턴트들의 얘기다.

차라리 사교육을 시킬 돈으로 적금을 들어준다면, 남들이 빚에 절절맬 때 유용하게 쓸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빚을 지는 이유-3. 과소비

재무컨설턴트들이 상담을 하면서 놀라는 것 중 하나가 빚을 지는 주체가 반드시 가난한 사람들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의사, 변호사, 교수와 같은 고소득 전문가들도 때론 금융채무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가 돼 상담을 받으러 오는 경우도 많단다.

돈벌이 능력이 거의 없는 대학(의대, 법대 등)시절부터 미래에 전문직 종사자가 될 것을 감안해서 무분별하게 신용카드가 발급되고, 때로는 몇천만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단다.

그러다 보니 갚을 여력이 당장 없는데도 '나중에 갚으면 되지'하는 심정으로 돈을 무분별하게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결국 잘못된 소비습관으로 고착화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수입이 많아도 지출이 많으면 결국 빚은 쌓이기 마련이다. 실제로 의사나 교수의 경우 인턴, 레지던트, 대학 강사 시절에는 벌이가 생각처럼 많지 않다. 그러다 보면 결국 금융채무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가 되는 경우까지 발생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보이지 않는 '빚 권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빚을 권하기는 하지만, 갚아주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결국 빚을 갚는 주체는 부모도 아니고, 사회는 더더욱 아니고 오로지 나뿐이다. 평생 빚더미에서 살아가는 수레바퀴에서 벗어나는 길은 결국 빚을 끊겠다는 나의 의지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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