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신종플루와 제약특허권

류병운 홍익대 교수(국제통상법) | 2009.09.03 12:16
1917년 서품되자마자 신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첫 임지인 행주성당에 부임한 33세의 김휘중 신부는 부임 1년 만에 스페인독감으로 선종(善終)했다. 쉽게 전염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독감으로 죽어가는 신자들에게 종부성사를 주다가 감염된 것이다.

행주에서 김 신부가 사망한 바로 그때 1918년 11월12일 마침내 1차 세계대전 휴전협정이 조인됐다. 스페인독감으로 수많은 젊은이, 군인이 사망함으로써 전쟁을 지속할 수 없었던 것이다.
 
김 신부의 장례는 전염성을 몹시 염려하던 당시 교구장 뮈텔 주교의 지시로 그의 부친이 강원도에서 도착하기도 전에 신속히 치러졌다. 장지도 천주교 성직자 묘지(당시 용산)가 아닌 마을 공동묘지인 행주산성 한강변 기슭이었다(김 신부 유해는 1년 뒤 용산 성직자 묘지로 이장된다). 아버지가 외아들 장례도 보지 못한 것이다.
 
전세계에서 5000만명 이상이 죽은 것으로 추산되고 한국에서만도 742만2113명이 감염돼 이중 13만9128명이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는 1918년 스페인독감은 최근에 와서야 AI(조류인플루엔자·H5N1)와 흡사한 H1N1형 바이러스로 확인됐다.
 
희생자 상당수는 20대와 30대 초로 건장하던 젊은이가 하루 정도 감기증세로 심하게 앓고 다음날은 다소 증세가 회복된 듯하다가 곧 다시 악화되어 발병 3∼4일 내에 사망하고 만다.
 
1918년 가을 '매일신보'는 각급 학교가 일제히 휴교하고 회사들은 휴업했으며, 농촌 들녘의 익은 벼는 거두지도 못한 채 반복되는 장사, 끊이지 않는 상여소리에 조선팔도 민심이 흉흉하다고 보도하고 있다.
 
요즘 급속히 확산되고 신종플루도 스페인독감과 같은 H1N1형이고 빠른 전파속도도 매우 흡사하다. 다른 점은 스페인독감보다 치사율, 특히 20∼30대 젊은이들의 치사율이 낮다는 점이다. 그러나 매우 강한 독성을 갖는 신종플루 변종 바이러스의 출현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전파가 매우 빠른 신종플루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전국민에 대한 백신 접종과 '타미플루'와 같은 항바이러스제, 면역강화제의 충분한 공급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는 글락소스미스클라인사의 항원보강제로 4배 희석해서 양을 늘린 1000만명분 백신을 그것도 12월 이후에나 접종이 가능하다고 한다.

국내 모제약사가 곧 중국산 백신을 독점 수입한다는 것을 보면 혹독한 사스(SARS)를 경험한 중국은 한발 앞서 대책을 세운 모양이다. 항바이러스제도 외국 제약사의 특허문제에 걸려 대량 복제를 통한 공급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외국(다국적)제약사의 특허는 세계무역기구(WTO)의 '무역관련지식재산권협정'(TRIPs)의 보호를 받는다. 예컨대 요즘 인도산 가짜 '타미플루'의 유통처럼 불법복제를 하거나 방임하는 국가는 TRIPs 위반으로 WTO에 피소될 수 있다. 다국적제약사들은 특허권의 국제적 보호가 미흡하다면 막대한 개발비가 투입되는 에이즈, 에볼라, (울트라) 슈퍼바이러스에 대한 신약이 개발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으로 국민 상당수가 에이즈, 말라리아 등으로 고통받는 개도국들로서는 치료약 판매로 막대한 수입을 올리는 다국적제약사들에 분통을 터트려왔다.

이런 갈등은 '2001 WTO 도하각료회의 선언'에서 국민보건에 관해서는 TRIPs 적용의 '융통성'을 두기로 의결함으로써 일단락됐고 이에 따라 창궐하는 질병에 대처하기 위해 국가가 제약사의 특허를 수용해 복제약을 제조하는, 이른바 '강제 실시'(compulsory licence) 시행이 보다 용이하도록 TRIPs에 '제31조의 2'를 신설했다.
 
현재 우리의 제약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면 정부는 다국적제약사의 특허에 대해 강제실시권을 행사해 충분한 양의 백신, 항바이러스제, 면역강화제를 보다 신속히 확보해야 한다.
 
사스 때처럼 우리 김치의 효능을 과신한 나머지 안일하게 대처하다가는 많은 국민을 큰 불행에 빠뜨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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